느헤미야 1장 1-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제목 : 코로나 19으로 인해 무너진 성벽을 회복하라
본문 : 느 1:1-11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 19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아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은 많은 부분들을 무너트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무너진 성벽들.. 한 때는 견고한 성벽이었습니다. 견고한 성벽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사업체가 부도가 나고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충격으로 쓰러진 사람도 있습니다. 확진자가 되어 너무나 허무하게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경제적 타격은 많은 가정들에게 생활을 힘들게 했습니다.
현실적인 삶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벽들 또한 무너졌습니다. 코로나 펜더믹으로 인해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예배, 기도, 선교, 섬김이 무너졌습니다.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가장 큰 아픔은 예배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예배는 삶의 중심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삶이 살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져버린 현실은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자꾸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기도를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는 전도를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평상시는 잘 몰랐는데 다 빼앗기고 난 후에야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
영적 성벽들이 무너지면서 세상적 방식들은 발전해 갑니다. 예배에 있어서 색다른 풍습들이 생겨 났습니다. 바로 미디어의 등장입니다. 줌이나 유트브를 활용한 예배 방식 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집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집에서 예배 드리니까 너무 편하다, 너무 좋다 는 말들을 아주 쉽게 말합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문화는 투고 문화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투고 문화는 앱 문화로 발전되어 전화만 하면 배달이 척척 됩니다. 음식 배달이 됩니다. 세탁소 빨래 할 것을 배달합니다. 지역적으로 투고 가 발달해 간다면 글로벌로는 운송업체들(아마존, 페덱스 유피에스) 의 약진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업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반해 이들 운송업체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19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무너진 성벽들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미친 생명 위협이었습니다. 전염과 확진에 대한 불안감이 교제와 만남을 꺼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재도 자연스럽게 게을러졌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결과들을 보면 어느새 신앙의 편안함이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재림 신앙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게 합니다.
재림의 핵심은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재림의 신앙을 사는 것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안일한 생각을 보여준 미련한 다섯 처녀들을 보십시오..
이들이 보여준 맹점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자기가 때를 결정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습니다. 때는 하나님만이 정하실 수 있습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자기 위주로 결정하는 행동을 낳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고물(배 뒷편)에 주무시는 동안 갑자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허겁지겁 예수님을 깨웁니다 .우리게 죽게 되었나이다 라고 호들갑 스럽게 말을 합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뭔가요?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풍랑에 쉽게 흔들리는 믿음 없는 모습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인간이 사는 목적이 달라지면 안됨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사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바사 왕국 시대에 느헤미야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수산궁이라는 궁궐에서 왕의 술맡은 관원으로서 왕의 총애를 받던 사람입니다. 어느날 예루살렘으로부터 친구인 하나니가 수산궁에 방문을 합니다.
그를 통해서 예루살렘 형편을 묻습니다. 느 1:3에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붙탔다 하는지라”
멀리 이방땅에 살면서 고국 소식을 듣습니다. 모든 것이 붙타 없어져 버렸다는 소식은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민 생활을 하면서 고국서 기쁜 소식이 들려 오면 힘이 납니다. 하지만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식을 듣게 되면 힘이 쭉쭉 빠집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현실을 봅니다
하나님은 때론 성벽들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중요한 것은 무너진 성벽을 느헤미야로 하여금 듣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라면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시 재건을 기대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 무너진 성벽을 듣게 하셨을까?세워진 성벽안에서 예배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예배는 죽고 온 갖 범죄의 소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무너뜨리심은 다시 세우시고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함이 분명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다시 성벽을 재건하도록 시작하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이 뭔가요?
느 1:4에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라고 말씀 합니다 .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회개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뭔가요?
6절 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는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라고 기도 합니다.
느헤미야가 드리는 회개 기도를 보면 자신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6절에 보면 우리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다고 기도 합니다.
우리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포함해서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고백 합니다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고국을 위해서 관심도 없고 자기 일에 온통 바빴음을 고백 합니다 .
느헤미야는 남탓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성벽이 무너지게한 장본인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건축하는데 우선순위를 둔다는 점입니다
느 1;11에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자신의 자리에 마음을 빼앗겨 지금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기회를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 그리고 지금 주어진 자리를 무너진 성벽을 재건 하는 일에 이용하는 기회로 사용합니다.
느헤미야를 보면서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간에 지금 하나님을 위해서 삶을 건축해야 한다면 헌신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결코 자리에 연연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면서 얻은 결과들이 뭔가요?
하나, 왕이라는 엄청난 인적 자원을 얻는 지혜와 담대함을 얻습니다
기도 한 후에 느헤미야는 왕앞에 나아갑니다. 수심에 찬 얼굴을 보고 왕이 질문을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 고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주시는 통찰력이 뭔가요? 바로 묘실에 대한 언급입니다. 바사는 관습상 묘실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라 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에게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황폐되고 불탔다는 표현을 통해서 왕으로부터
동정심을 유발케 합니다. 그러면서 묘실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느 2:5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기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일을 추진해 가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진행이 되다가 마지막에 브레이크를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일로 인해 걸리는 것들이 많다가 마지막 순간에 반전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로 인해서 모든 일들이 그르칠 수도 있고, 날개를 단듯 결정적 한 방으로 쾌재를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어서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놀랍게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로부터 성벽 재건에 대한 허락뿐 아니라 자원과 지원까지 얻어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그는 재건 사업에 동참할 주요 인물들을 선별하여 접촉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간절히 기도할 때에 도와 주십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에 사용했던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기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느헤미야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많은 준비 작업을 거쳤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평신도 리더라도 그처럼 철저한 계획이 없었다면 성벽은 재건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함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둘, 무너진 자들에게 다시금 재건할 수 있도록 영적 힘을 북돋워 주는 느헤미야
느 2;17-18에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이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혜미야는 백성들에게 몇 가지 케취 프레이즈로 영적 도전을 줍니다.
하나, 하나님의 손을 거치지 않는 우연은 하나도 없다
느헤미야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돕도록 간구하는 겁니다 .
둘,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라고 제안을 합니다.
수치는 하나님 없이 일을 추진할 때에 겪을 수 있는 결과입니다.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라는 느헤미야의 제안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철저하게 순종하자는 촉구 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런 말을 합니다 .느 1:8에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이것은 수치 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요 개인의 수치입니다.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말자. 더 이상 아픔을 겪는 일이 없도록 힘쓰자는 결단을 촉구 합니다.
셋,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더욱 힘을 내어 함께 회복을 만들어 가자 라고 촉구 합니다
느 2:18에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무너진 성벽 앞에 모두가 힘을 잃어버린 상태 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등장은 새로운 영적 동력을 불어 일으킵니다. 어떤 반응이 일어났나요..한 목소리로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자고 합창을 합니다.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 모두가 힘을 내어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방해군들이 등장합니다. 산발랏, 도비야, 그리고 게셈이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느헤미야가 오기 전까지 총독 행세를 하면서 온갖 탐욕과 비리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느혜미야의 등장은 못마땅하게 여길게 분명합니다.
느헤미야는 분명하게 이들에게 말을 합니다.
느 2:20에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이니까 너희들이 끼여들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못을 박습니다.
방해군들은 인간적인 계획을 갖고 방해를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계획을 갖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언제든 반대가 심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반대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싸워 가야 합니다.
마지막, 재건과 함께 다시 시작된 영적 삶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느헤미야가 보여주는 일하는 태도를 보면 굉장히 집중적입니다. 그는 될 대로 되라고 일을 내버려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노동력을 제공하셨고,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재건을 멈추고자 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개입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4:14). 느헤미야 4:20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그 분의 땅에 되돌리셔서 다시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건된 도시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백성들에게 모세 율법을 이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인 에스라는 회중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율법을 읽으면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바라심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 8:18은 모든 신자의 생활이 되어야 할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에 대해 기록합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느헤미야 전체를 읽어보면 느헤미야는 내적 성벽의 회복을 위해서 결단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나가 바로 안식일의 거룩함을 회복시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 13:17에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안식일에 예배는 없고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조치를 취합니다. 다시한번 이런 시도를 할 경우에는 엄벌을 처할 것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둘, 이방인들과 결혼을 하지 말라(가정의 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느 13;25에 말씀 합니다. 이유는 뭘까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을 읽어야 하는 데 히브리어를 모르다 보니까 말씀을 읽지 못하는 겁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율법을 접해도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읽지도 못합니다. 느헤미야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느 13:27)
셋, 예배에 대한 규칙을 새롭게 정립 합니다 .
성 안에 방해군이었던 도비야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성전 봉사를 하는 레위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없다 보니까 성전을 떠나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도비야를 내 쫓고 다시금 성전 안에서 제대로 된 예배가 진행 될 수 있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회복을 강조 합니다 .
느 13:22에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기도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열심을 통해서 다시금 무너진 것들이 다시금 회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금 무너진 예배, 무너진 가정, 무너진 안식일을 새롭게 하도록 다시금 불태워 합니다.
왜 무너진 성벽 재건이 중요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입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도 중요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재림 신앙입니다.
이 시대는 느헤미야같은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 합니다 .
느헤미야처럼 살려면..
하나, 느헤미야의 열심은 자신의 이중 목표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늘 집중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좋은 자리, 편안한 미래의 삶을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자기 영혼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늘 하나님 앞에서 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느헤미야 12장까지보면 그가 가졌던 관심은 시종일관 하나님 영광이었습니다 .
그리고 느헤미야는 기도한 대로 행동으로 나타내는 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일을 이루어냈다고 자만하지 않습니다. 느 6;16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 이루셨다고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금 영을 부어 주셨고 어떻게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무너진 것들로 침체되어 있습니까?
이제 다시 우리 안에 잠든 열심을 발휘해야 할 때 입니다. 무너진 성벽들 앞에서 다시금 열심을 갖고 행동으로 회복해야 할 때 입니다 . 무너진 것으로 인해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사역을 위한 우리의 열심이 어떤 식으로든 감소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무슨 일을 지금 겪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우선 순위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이런 열심을 갖고 세상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명랑하고 관용적이고 유순한 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직하고 열심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무너진 성벽들 앞에.. 우리 기도 합시다
하나님 우리에게 열심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자 열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무너진 성벽들을 회복하여 하나님 영광을 돌리는 미래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바울이 말한 로마서 12;11에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라고 한 말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기길 기도 드립니다.
때론 방해군들의 집요한 반대에 부닥칠 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다시금 힘을 얻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무너진 성벽들은 분명 당신을 근심하게 할 것입니다 .
그러나 느헤미야는 8:10에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를 근심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서 기도합시다.
설령 우리의 열심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알게 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하나님의 지극하신 성실하신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덧 입혀 주실 것입니다.
코러나 19으로 무너진 성벽들 앞에서 다시금 회복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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