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13-17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선언
본문 : 마 3:13-17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좋은 관계가 만들어 집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는 변함없이 지속됩니다. 반면에 왜 그렇게 적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 사람 주변을 보면 하나같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 누가 문제인가? 당사자가 문제인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문제인가.. 적들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지금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고 살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 본다면 자기 기준으로 세상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늘 주인은 숨어 있는 자아 입니다. 뭔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굉장히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연히 외골수적이고, 남을 이해 하려는 마음은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나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본문에서 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5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세례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언급하셨습니다 .바로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모든 의 라는 의미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들을 살려내시는 일 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즉 삶의 모습들을 보면 소위 연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 굶주린 자들, 병든 자들을 귀중히 여기셨습니다. 그 길은 마치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여리고로 내려 가면서 벗기고 상처 받고 거반 죽은 자를 살려 내시는 긍휼의 하나님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 줍니다 .
첫째, 예수님처럼 먼저 자신을 낮추라
13절을 볼까요.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가서 세례 받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요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14절에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여기 “말려” 라는 단어 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이렇게 하시면 안된다고 거부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락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시면서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남들이 와서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보여주시는 삶은 먼저 스스로 낮아지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낮아짐의 모습들을 보면 …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을 볼 수 있습니다. 수건과 대야를 볼 수 있습니다. 빌려온 작은 나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먼저 낮아지심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먼저 낮아지심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알고 빌 2:6-8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 합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배우면서 관계의 법칙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이런 놀라운 관계의 법칙을 깨닫기 전에는 교만 했습니다. 스스로 자기 자랑에 빠져 살다 보니까 늘 외톨이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남한테 굽신거리거나 낮아지고 항복하는 것을 패배자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는 친구들 보다는 적들이 수두룩 할 뿐입니다. 반면에 끊임없이 스스로 낮아짐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 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하니까..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낮아짐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방해군이 자존심입니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두둔합니다. 내가 옳다는 것만 강조 합니다. 자연히 상대방이 옳은데도 불구하고 자기 고집이 결국은 파괴와 분열을 가져오게 할 뿐입니다.자기 스스로 자존심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사탄이 좋아하는 일만 할 뿐입니다.
반면에 겸손은 수긍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제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었군요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멋진 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끊임없이 자아를 낮추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스스로 낮아짐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합니다. 낮아짐을 실천해 보세요. 마음이 편안 합니다. 반면에 높아지려고 해 보세요.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고 살 뿐입니다. 뭐야.. 저 인간이 나를 아주 우습게 아네,, 아니 날 뭘로 알고 날 이렇게 대하다니.. 남 위에 서려고 하면 할수록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거슬리게 합니다. 그러면 속에서 불이 납니다. 평안을 잃어버리면 그 안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은 거칠고 상처주는 말들 뿐입니다.
내 삶이 행복해 지는 비결은 숨은 자아를 낮추는 겁니다. 낮아지면 질수록 관계를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일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의 뻔뻔함과 소위 열받게 하는 일들을 참아내심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자기 항복의 시간 이었습니다. 우리도 관계를 맺다 보면 꼴불견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연습 곧 항복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 합니다.
낮아짐은 세상을 변혁시키는 영적 씨뿌림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습이 길가나 가시떨기나 돌짝밭에 뿌리지는 태도를 취한다면 결코 열매는 없습니다. 좋은 밭에 뿌리지는 씨앗은 나의 삶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
예수님께서 세레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로 나오심은 분명 낮아짐 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함에 있어서 보여주어야 할 태도는 스스로 낮아짐으로 일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는 성도의 삶은 먼저 낮아짐으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일이라면 낮아지는 선택과 결정이 굉장히 중요 합니다.
둘째, 내가 늘 누구인지를 인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7절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난 후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행복한 관계를 보여 줍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알려 주십니다
여기에 보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살려 내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의미 이기도 합니다.
이 아들을 향한 절대적 사랑 또한 언급합니다. 결코 이 사랑이 아들인 그리스도께 그치지 않을 것을 약속 합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을때 조차도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한다는 의미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철회될 수 없다는 사실 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임마누엘로 함께 하십니다 .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에 죽는 일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삶은 나의 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을 통해서 이뤄 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식을 갖고 지금 세례를 받는 겁니다.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를 기뻐하셨습니다.아들의 순종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받는자, 내 기뻐하는 자로서 사셨음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하나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라는 의미는 너무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 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바울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롬 8’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바울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은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임을 확신있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입니다. 죽기전까지.. 어떤 사람은 돈도 많고 소유도 많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삽니다. 그런데 결과는 허망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 라는 사실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철회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은 분명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전에 지은 죄 입니다.전에 지은 죄가 어떠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못할 죄가 없습니다.
또 하나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을 이해 헌신과 희생을 기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의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삶은 철저한 예수님처럼 사는 겁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업에 자신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의 삶입니다. 희생적 삶입니다.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아는 겁니다 .때로는 자기만 수고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태도 입니다 .
우리는 살면서 갈등과 기로에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삶을 보시고 기뻐하셨다면 우리 또한 기로에 설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나를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선택인가? 나의 욕망을 위한 결정인가, 타인의 도움을 위한 나의 희생인가?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할만 하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기도 합니다.
우리도 수동적으로 직면하는 나의 어정쩡한 상황들, 내가 왜 그 사람들을 따라야 해, 내가 왜 저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해.. 우리는 신앙 생활 하면서도 나의 능동적 생각 보다는 수동적으로 질질 끌려 가는 기분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는 통큰 결정이 필요 합니다 .
나의 알량한 자존심, 나의 기분이 좀 나쁘다는 감정의 순간을 확 뛰어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대로 복종하는 삶..
삶의 어떤 순간에도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삶을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인.. 지금 이 때가 바로 그 때 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가로 나오시면서 엄청난 영적 무기를 얻습니다.
16절 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해 일하심을 보시더니”
세례를 받으시고 물가로 나오시는 주님의 마음은 분명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뜻을 이루기 위해 이제 난 죽었다는 확신 입니다. 이런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기뻐하는 자 라고 천사들을 통해서 환호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라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들어가시어 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나요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계시다는 강력한 확인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일하셨다는 점입니다.
이 광경을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진정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
성도가 사는 길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난 죽었다는 의미 입니다. 난 이제 더 이상 내 기준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님을 천명하는 겁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바울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
또 하나는 우리는 결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아님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비둘기 같이 내려 왔다는 말은 성령의 가시적인 의미도 있지만 삶을 만들어 가는 방식 입니다. 성령은 평화를 만들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목표에 내 삶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추구하라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 세상속으로 침입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의를 이루시고 삶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표가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물론 목표를 달성해 가는 데 있어서 엄청난 아픔과 고난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치워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 이루었다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 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누구인지 ..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각자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되도록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것은 때로는 나를 죽이는 일도 서슴치 말아야 합니다. 나를 낮추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 합니다.
예수님처럼.. 필요하다면 끝까지 나를 작게 하는 낮아짐의 삶..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일에 쓰임받는 작은 모자이크인 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좌지 우지 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 친다 할지라도 성도가 보여주어야 할 영적 제스처 가 중요 합니다
우리 삶에는 늘 잡초가 있습니다. 그걸 뽑아내지 않으면 그것이 열매 맺는 일에 화근이 됩니다.
제거할 것을 제거하는 타이밍이 필요 합니다. 에너지가 필요 합니다 .
잘 가꾸어진 정원은 보기가 참 좋습니다. 잡초 하나 없이 반듯이 줄지어 늘어선 초목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정원사의 힘든 수고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창 3:18-9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늘 기억하라
예수님은 가장 처절한 십자가의 수치 속에서도 이렇게 고백 합니다 .요 16:33에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여정속에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히 13;5에..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말씀 합니다.
코로나 팬더믹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의 삶은 그냥 아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코로나 팬더믹으로 무너진 현실 앞에 마음이 빼앗겨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사랑 선언을 하십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란다. 너의 삶이 나를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될 것을 확신 한단다..라는 선언 속에서 다시금 영적으로 무장하여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마치 여리고 가는길처럼 비탈지고 안전하지 않는 인생길 입니다. 늘 위험이 뒤따르고 때로는 세상에 의해 무너지고 쓰러지는 인생길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를 돌보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시작된 주님의 공생애는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그 어떤 것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때로는 내가 선한 사마리안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다시 회복된 인생이었습니까?
이제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쓰러지고 넘어진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선언이
내 삶을 만들어 가는 영적 전략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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