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장 9-25절 말씀 묵상 [김경열 목사]본문말씀: 행27:9-25
제 목: 사명이 있는 한 지켜주십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다 믿더라.(행27:10-11) And said unto them, Sirs, I perceive this voyage will hurt and much damage, not only of the lading and ship, but also of our lives. Nevertheless the centurion believed the master and the owner of the lading and ship, but also of our lives. (Act 27:10-11)
인생을 사는 동안 365일 늘 맑고 청명한 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늘 다니시던 갈릴리 바다에도 가끔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중에 바람이 일어날 때가 있고, 재난을 만날 때도 있고, 실패를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오래도록 흐린 날이고, 긴 터널을 헤메고 있는 사람들 보면 속상할 적이 많습니다.
요즘 사회 곳곳에 들려오는 소리가 ‘위기’ 라고 말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어느 곳에, 무엇을 선택했느냐? 에 따라 결정되는 게 많습니다.
우선은 옳은 것 같은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옳은 선택이었는데, 잘못된 판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위기도 기회로 만들어 줍니다.
항상 문제 속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의 충돌로 체포되었는데 로마의 시민권을 이용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로마로 이송되어 가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 이때는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음으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9절)
금식하는 절기란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한번 전 국민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일로 지켰습니다.(7월10일)
이날에 대제사장은 자기와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지성소에서 속죄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이날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본토인뿐 아니라, 우거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하며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본 절에 금식하는 절기는 바로 속죄일을 뜻합니다.
칠월 십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너희 심령을 괴롭게 하며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민29:7)
바울의 죄는 그 다지 중한 벌이 아니었습니다.
행26:32절에 만일 이 사람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 하였더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훈방조치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라도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소원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형을 받고, 로마의 시민권으로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에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출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배가 출발을 하면 우리 생명도 위협하리 만큼, 타격과 손해를 입게 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10절 하)
선장과 선주는 일기 예보나 경험을 통해 때가 괜찮다고 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남풍이 선하게 불매, 저의가 득의 한줄 알아 닻을 감아 출항을 하였다는 것입니다(13절)
백부장이 선장과 전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더라.(11절)
배가 항구를 떠나 순하게 가다가 별안간 광풍을 만났습니다.
얼마 못 되어 ‘유라굴로’ 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동에서 불었다, 서에서 불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오는 광풍에, 짐을 다 버리고,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마주 치어 갈수 없어 가는대로 좇겨 가다가 (15절)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광풍이 그대로 있었다고 했습니다(20절)
바울이 한마디로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했습니다.(21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랑을 만날 때 우리 힘으로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하늘의 뜻을 모르니, 자연재해(自然災害) 라 합니다.
자연재해는 없습니다. 하늘이 내리는 재앙(災殃)입니다.
우리는 이를 천재지변 (天災地變) 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피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농부가 계절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계절의 변화를 알고 대처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풍랑은 언제라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싸인을 알게 모르게 주십니다.
10절에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고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싸인을 알려줬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백부장이 선주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출항을 했습니다.
이것이 풍랑을 피하지 못한 원인입니다.
선주와 선장이 하는 말은 경륜과 경험을 말합니다.
바울이 하는 말은,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인을 말합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갈 것이냐? 아니면 경험과 경륜을 따라 갈 것이냐?
하나님을 더 믿을 것인가? 경험을 더 믿을 것인가?
이런 갈림길에서 선택이 요구됩니다.
1.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더라.(11절)
1) 선장과 선주의 말은 경륜과 경험입니다.
백부장은 경륜과 경험에서 나온 말을 더 믿고, 그레데항구를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오므로 득의한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복병 같은 돌풍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광풍입니다.
이 광풍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어야할 하나님이 주신 싸인을 믿지 않고, 선장의 경험을 더 믿고 떠난 것이 풍랑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더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사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삼상13장에 사울 왕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는 제사장만 집례 할 수 있는 의식입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불레셋이 쳐들어올 때, 군사들이 두려워 하나 둘 흩어졌습니다.
불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사무엘은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고, 적군은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백성은 흩어지기 시작 하니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13:12)
사울은 조급한 나머지 자기 손으로 제사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사무엘이 왔습니다. (10절)
사울 왕이 선지자여! 당신은 오지 않고, 불레셋은 국경을 넘었고, 백성은 흩어짐으로 부득이 하여 내손으로 제사를 드렸나이다.
(삼상13:11-12)
인간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이여! 망령된 일을 행하였나이다.(13절)
전쟁이 이기고 지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왕이 알지 못하나이까? 왕이 하나님을 거역했기에 하나님도 왕을 버리셨나이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경솔히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 위가 폐하게 되었습니다.(13절)
웃시야 왕이 강성하여 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는데, 제사장이 노할 때에 제사장 앞에서 문둥병이 발한지라.(대하26:16-19)
여러분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날 때, 인생의 경험과 믿음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의사가 끝이라 해도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살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실패를 했어도 하나님이 일으켜 주시면 일어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더 의지 하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연세대학 세브란스 병원 로비에 ‘우리는 치료하나 하나님은 낫게 하신다.’ 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치료를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설교 할 때마다 “제가 말씀을 준비했지만, 은혜는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심 같이 하나님의 영이 예배가운데, 설교 가운데 임재하소서.(창1:2)
교회는 성령이 임재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성전에 가득히 임하도록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언어, 오락을 자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끊어야 합니다.
선주와 선장의 말보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싸인을 더 믿어야 합니다.
2) 풍랑으로 인한 고통을 보세요.(13-20절)
(1) 정신적 고통입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15절)
노를 저을 수도 없고, 돛을 내릴 수도 없고, 배가 풍랑에 밀려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속수무책입니다.
죽음이 어른거리는 불안과 두려움과 정신적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찾아온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육체적 고통입니다.
(17절)에 “배를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가더니”....
정신적인 고통뿐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젯트 엔진이 아닙니다.
안간힘을 다 해도 배는 전진이 되지 않습니다.
(3) 그 뿐 아니라, 물질적 손해입니다.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 버리니라.”(18-19절)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안에 짐을 바다에 모두 버렸습니다.
모든 방법을 다 간구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돌풍 앞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배안에 있는 짐을 다 바다에 던져 버리는 물질적 손해입니다.
(4) 또한, 소망을 다 잃었습니다.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구원의 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여기에 광풍으로 여러 날 동안 해도 보이지 않고, 밤에 별빛마저 보이지 않고, 폭풍에서 구원할 기미가 보이지 앉아 극도로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환경에서 구원 뿐 아니라, 물질에서도 구원받으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게, 희망의 끈을 놓치는 것입니다.
병들었어도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있을 때, 병마와 싸워서 이기게 됩니다.
실패했어도 희망이 있을 때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모든 소망을 잃었습니다.
2. 그러면, 풍랑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었을까요?
1) 풍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1-23절)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21절)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싸인을 믿고, 그레데 항구를 떠나지 않았으면 풍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은 것이 풍랑의 원인이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하나님을 더 믿고, 하나님 편에 굳게 서야 합니다.
주의 종의 권유를 잘 따르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설교를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축복입니다.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2) 바울의 확신 있는 신앙고백을 보세요.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23절)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란 확실한 신앙 고백입니다.
현대를 불확실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불확실하고,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신앙의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 할 때 삶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신앙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목적입니다.(출3:1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전12: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소속이 분명해야 됩니다.
성경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사 내 잔을 넘치게 하시니라(시23:5)
다니엘이 그러했습니다.
왕이 내린 산해진미라도 우상 제물에 드려진 음식이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단1:10-20)
그리고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 채식을 먹게 한 후 나를 시험해 보세요.
열흘 후 비교해 보니 15절에 산해진미를 먹은 저들보다 다니엘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했습니다.
어떻게 풀을 먹은 사람이 갈비 뜯은 자들보다 윤택하겠습니까?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숨 걸고 신앙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다니엘을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이런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더해 주셨습니다.
훗날 바벨론의 2인자로 세우셨습니다.
3. 우리도 바울처럼 사명에 붙잡혀 살아야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 (24-25절)
1) 사명이 생명보다 귀합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성도야! 두려워 말라.
교회여! 두려워 말라. 는 음성을 들으세요.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약속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성도(교회)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불쌍해서 살려준 게 아닙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땅에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한, 두려워할게 없습니다.
그 시간 까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합니다.
제가 늘 고백 하는 것이, 시간이 많아서 주의 일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일 하라고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습니다.
소유가 많아서 드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라고 소유를 주셨습니다.
재능이 있어서 주의 일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일하라고 재능도, 건강도, 은혜도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시대일수록 확신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선주와 선장의 경험보다, 하나님의 싸인을 받은 바울의 말을 더 믿어야 합니다.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믿어야 하십니다.
리빙스턴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길 원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처럼 사명에 붙잡혀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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