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누가복음 19장 1-10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9.10 07:45

제목 : 아름다운 도전

본문 : 눅 19:1-10

 

도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입니다. 자신의 안락한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겁니다. 사실 도전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목표라 할지라도 용기가 없으면 도전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용기만 갖고는 안됩니다. 용기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더 힘차게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있거나 방해가 있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속할 수 있습니다.  

 

때론 아쉽게도 생각은 누구보다 엄청나게 많이 하는데, 믿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쉽게도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아름다운 도전의 연속입니다 .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날마다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고 디모데에게 당부하지 않았습니까? 옛 성품을 버리고 새로운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야말로 멋진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조그만한 도전도 성취했을 때에 그 기쁨과 감격은 엄청납니다. 하물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도전적인 삶이야 말로 그 어떤 도전보다 보람과 기쁨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도전을 즐거워 할 때에 성장과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각자의 삶에 충실히 임하던 사람들을 향해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도전하는 데 있어서 쉬운 것도 있습니다. 유익한 것도 있습니다. 즐거운 것도 있습니다. 반면에 바울처럼 자기를 죽여야만 가능한 도전도 있습니다. 자기의 것을 배설물로 버려야 하는 힘든 결정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삭개오의 이야기 입니다. 왜 삭개오는 그렇게도 예수 만나기를 갈망했을까요?

우리는 삭개오의 결단을 보면서.. 아무리 많은 돈을 움켜 쥔다 할지라도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면 목마름 속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많은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부자지만 마치 물 없어 메마른 땅에서 사는 자와 꼭 같습니다. 주머니는 돈으로 흘러 넘치는데  내면은 공허 합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세요.. 주로 어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나요? 부자들이 많습니다. 박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문인들이 많습니다. 왜 많은 소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에 빠질까요..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의 교묘한 말에 넘어가 패가망신 합니다.

 

삭개오는 오직 예수만이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확신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바로 삭개오의 아름다운 영적 도전 입니다. 

 

어느날 삭개오는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삭개오는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삶의 분주함과 바쁨이 결정적 기회를 놓치게 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기회를 결코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삭개오의 아름다운 도전은 보고자 하는 강력한 열정 입니다. 예수를 만나야겠다는 강력한 도전의 시작은 예수를 향해 움직임입니다. 결코 생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내 속에 꿈틀 걸리게 하는 마음이 작동할때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상태 속에서 돈이냐 예수냐.. 갈림길 속에서 갈등하지 않습니다. 

 

첫째, 목마른 삶을 해결하기 위해 유일한 길은 예수 밖에 없음을 알고 달려가는 도전입니다

4절에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지금이야 말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포착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합니다 .하지만 걸림돌이 많습니다.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앞을 봅니다. 돌무화과나무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 옵니다.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니.. 멈추지 않으려는 강렬한 열망을 보여 줍니다, 그래 .. 내가 무슨 낮짝으로 예수라는 양반을 만나..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지은 죄가 엄청난데.. 포기를 모르는 삭개오..스스로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한 문이 닫힐 때마다 다른 문을 열어 제칩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실천하면서 막힐때마다 더 적극적인 생각을 합니다. 키가 작아 보이지 않네. 그러면 저 나무에 올라가면 되겠지.. ..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에 막힘이 없습니다. 자존심이 목표를 향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삭개오가 선택한 방법은 나무에 올라가는 일이었습니다. 나무에 끙끙 대며 올라가다 보면 땀이 흠뻑히 등을 적실 수 있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모습이 타인들의 눈에는 우습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잇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밖에 없다는 확신이 도전을 포기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 삶에도 기회라는 게 매일 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기회를 포착하는 지헤가 있어야 합니다. 덜 중요한 것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니다.삭개오와 같은 굳은 의지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정말 필요 합니다.

 

둘째, 움켜짐에서 나눠 줌으로 발빠르게 결단하는 아름 다운 도전입니다. 

8절에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는 엄청난 약속에 도전을 합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향해 빨리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고 말씀 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당할 수 있는 수치를 제거해 주기 위함입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덕 거림니다. 

사울을 향한 수군덕 거림, 삭개오를 향한 수군덕 거리, 세리 마태를 향한 수군덕 거림,, 모두가 당사자들을 향해 쏟아 뱉는 말들은 가시돋힌 말들 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말들이 계속되면 괴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

 

삭개오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 보여주는 영적 도전은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라고 고백 합니다.

 

삭개오의 입에서 나오는 결단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달라지는게 있습니다. 바로 삶의 목표 입니다.

 

사실 삭개오는 고의적 무지를 주장하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같은 동족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모른척 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욕망의 소리를 뛰어넘게 합니다.

고의적 무지 혹은 선택적 무지속에서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나 사랑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살던 자를 공동체를 향해서 눈을 뜨게 합니다 .

내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다면 갑절이나 갚겠다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 줍니다. 마치 나의 목표에서 주님이 지향하는 목표로의 도전 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도전은 자기의 이익과 손해를 결코 먼저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 하는 자에게 그가 해야 할 일을 속히 알려 주십니다. 

 

누가 삭개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모두가 삭개오가 전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거  또 술수 쓰는 것 아냐”, “저거 또 거짓말 하는 것 아냐” .. 라는 식으로 쉽게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성한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재 빨리 움직이며 자신이 말한 대로 실천 합니다. 

늘 손에 움켜 쥐고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욕심을 내려놓게 합니다. 은혜는 움켜 잡는 게 아니라 손을 펴는 일에 늘 도전 합니다. 

전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동족도 없었습니다. 그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잔인함에 익숙해져 있던 삭개오 입니다 .

 

그런데 이제는 자기의 이익이나 손해는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

내 주머니에 있다고 내 것이 아님을 압니다 . 그 동안은 자신이 만든 신인 돈에 묶여 있었습니다. 돈에 노예가 되다 보니까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못된 짓도 많이 했습니다 .대화 중에 삭개오란 이름이 언급 되기만 해도 치를 떨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움켜 쥐고 있던 돈을 사람들을 위해 나눠 줍니다. 

 

토색한 것을 네 배나 갚겠다는 결단은 마치 사도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겠다는 각오와 같습니다. 

토색한 것이 전부 인데 .. 네 배나 갚겠다는 것은 빚진자의 심정으로 살겠다는 결단 입니다 .

빚진자의 마음은 빚을 갚는 마음입니다. 

 

이건 삭개오에게 어색한 마음 입니다. 그동안 삭개오는 갑질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빚을 독촉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지.. 빚을 갚는 자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세금이 밀리거나 납부 기일을 맞추지 않으면 폭언을 합니다. 폭력을 행사 합니다. 얼마나 으르렁 거렸을까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당당하겠습니까?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낮아짐입니다. 엎드림입니다. 

토색한 것을 네 배나 갚겠다는 것은 철저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도전 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장을 냅니다. 

토색한 자들을 찾아 나서는 삭개오의 발걸음은 결코 무겁지 않습니다 .

 

삭개오의 이런 아름다운 도전은 능욕 받을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도전은 숨은 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말만 앞선 제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행 5:41 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 했습니다. 

 

한 때는 로마와 결탁하여 권세를 누리며 떵떵 거리며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 세상을 누비며 삽니다. 넓혀진 영의 시야를 갖고 세상을 향해 도전을 성취해 갑니다. 

결코 바꿀 수 없는 내적 평안을 누리며 가난한 자들, 토색한 자들과 만남을 이뤄 갑니다. 처음에는 오해도 사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가시처럼 날카롭게 찌릅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은 피 묻은 손으로 삭개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예수님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따라가겠다는 굳은 결단을 보여 줍니다 .

 

마지막, 다시 복음 앞에 서는 도전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해 구원을 받은 자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 을 듣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도전을 어떻게 반응하느냐 입니다.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새로운 삶에 도전 받습니다 .

 

구원 받은 자 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살아가야 함을 알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의 눈을 갖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귀를 갖고 살아갑니다. 믿음을 방패 삼고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삶은 철저한 복음에 근거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신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만든 신에 대해 빠지지 않고 사는 겁니다 .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려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더라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신주 모시듯 살았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히브리적 이름의 의미는 “의로운” 또는 “순수한”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의롭거나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패한 피라미드의 꼭대기인 세리장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갖고 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 부동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겉은 경건한 데 속은 더러운 생각과 더러운 마음을 갖고 삽니다. 

 

다시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진 곳이 성경에 보면 안디옥 교회라고 말씀 합니다. 어떻게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워졌을까요? 이들의 삶은 참으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경건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내가 만든 신으로 사는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나라,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멀리뛰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첫걸음은 경청 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대로 순종할 때에 아름다운 도전의 삶은 지속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니라..

믿음의 경청을 강조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리석은 결과만 낳을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또 다른 미래 길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가는 삶입니다.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님은 삭개오에게 앞으로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 주십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삭개오 스스로가 가난한 자들을 탈취하고 빼앗고 상처 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삭개오의 폭력과 폭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입게 했습니다. 신앙을 잃어버리게 했던 삭개오 입니다.

 

삭개오에게 영적 도전을 줍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나서는 심정으로 찾아가 라는 명령입니다. 

 

삭개오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로 다니는 삶은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말을 안듣거나 기분이 나쁘면 권력으로 해결했습니다. 폭언과 폭력이 무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폭언과 폭력이 무기가 아닙니다. 

 

이제 삭개오가 보여주는 무기는 아름다운 성품 입니다. 

섬김 입니다. 배려 입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섬김과 배려는 기질대로 하다보면 평생 적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참고 또 참는 인내의 삶이 필요 합니다 .

삶의 변화는 그동안 익숙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은 불편함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오늘도 남과 함께 하는 하루를 통해서 마음에 기쁨이 넘쳐 납니다. 토색하며 남의 것을 빼앗던 기분과는 전혀 다릅니다. 

 

골 3;16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대들 사이에 풍성하게 있도록 하십시오” 라는 말씀을 되새기면 삭개오는 자신의 것을 나눠 주기 위해 많은 발걸음은 피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치지 않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이게 예수믿는 삶의 기쁨이구나 .. 라는 그 무엇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나눔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오늘도 하루의 삶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에 하나님을 향해 오늘도 주님을 닮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즐거운 영적 행진을 시작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삭개오의 아름다운 도전이 타인들의 눈에 비춰질때.. 저 인간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러는 거야 라는 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함없는 삶은 원수로 여겼던 삭개오를 반갑게도 환영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과 빼앗긴 자들의 마음속에 넘쳐 납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삭개오..같은 인생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까?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아름다운 도전을 고의적 무시속에서 삽니다. 세상이 좋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때가 가까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길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전하는 용기있는 성도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영적 도전은 삶의 내용을 바꾸는 겁니다.자아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꾸는 겁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바꾸는 겁니다. 내 속에 주인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주인 삼고 살아가는 겁니다 . 익숙해진 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가면서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이게 도전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덤으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나 스스로가 결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합니다. 

예수가 필요한 나 라면 지금 여기서 예수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갖고 도전하는 인생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 매일 예수님을 만나요. 위대한 만남은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내 속에서 강렬하게 작동하는 가르침에 머뭇거리지 맙시다. 주저 하지 맙시다.  용기를 갖고 날마다 1mm 씩 자라가는 아름다운 도전 을 멈추지 않는 주님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 합니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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