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눅 17:17)
And Jesus answering said, were there not
ten cleansed? but where are the nine?(Luke 17:17)]
숲이 우거진 밀림 속에서 유숙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원숭이들이 많았는데
매일 아침에 바나나를 한 바구니 들고 가면서
원숭이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듯이 가로채서 도망을 갔습니다.
‘왜 저럴까?’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동물은 평생 바나나를 주어도 감사를 모른답니다.
왜 저렇게 도망가느냐? 물었더니
그것은 '불신' 때문이랍니다.
감사를 모를수록 불신이 많습니다.
그때 귀중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감사를 모르고 사는 것’ 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감사를 깨닫고 사는데 있습니다.
감사를 느끼는 곳에 행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감사가 마음에 있는 사람은
입을 열면 감사를 말합니다.
감사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고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들어오는
불행의 통로가 됩니다.
1) 은혜는 감사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위에 감사를 깨닫는 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2019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감사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서니
한센병자 열 명이 나와서 예수를 보고도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리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한센병이 지금은 치유가 거의 완치되었지만
그 당시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1) 한센병은 피부병입니다.
속에서부터 시작하여 처음에는 모르고 있다가
점점 피부 밖으로 나와 피부가 문드러져 내리기도 합니다.
(2) 또한, 신경 감각이 마비가 되어서 운동장애가 일어납니다.
얼굴 손발에 변형 후유증이 나타나
뼈마디가 오그라들기도 합니다.
(3) 전염이 되기도 합니다.
한센병이라 진단을 받는 시간부터 집을 떠나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을 하고 이웃과 격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데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를 불렀습니다.
소리를 높여서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절)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14절)
당시 제사장들은 판결권과 사면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던 도중에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로 가던 중에
열 사람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명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16절)
이때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습니다.(17절)
주님이 찾으신 아홉은 누구인가요?
감사를 망각한 자들입니다.
고쳐주신 이에 대한 감사를 망각하고 집으로 돌아간 자들입니다.
이해는 갑니다.
병들어 격리되어 살다가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빨리 알리고 싶었겠지요?
빨리 돌아가서 건강해진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2) 그러나, 우선순위를 망각했습니다.
이들은 믿음은 있었으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고쳐주신 이에 대한 감사를 망각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를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감사를 망각한 아홉을 몹시 섭섭하게 찾으셨습니다.(18절)
아홉은 믿음은 있었으나 감사를 모르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 일수록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부모를 잃고 있던 아이를 데려다가 호적에 올리고
같이 살면서 교육을 시켜주고
결혼까지 시켜준 장로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상속을 달라고
장로님을 상대로 소송을 했답니다.
그를 키워준 장로님이 몹시 허탈해 하며
섭섭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일수록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믿음으로 달려온 성도 여러분!
믿음 위에 감사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에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10명의 한센병자들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볼 수 있습니다.
1. 공통점은 열 명 모두 믿음이 있었습니다.(12-14절)
1) 문제 앞에서 모두 주님을 찾았습니다.(13절)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불렀다는 말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주님이 멈춰 섰습니다.
(1) 주님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이들의 믿음입니다.
주님을 찾는 이들을 '보시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14절)
(2) 이것은 단순히 문제만 보신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신 주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라고 할 때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도중에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무엇인가요? 믿음입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이들은 비록 주님께 가까이 할 수도 없는 한센병자였지만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질병을 만나고 실패를 만나고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처럼 믿음으로 주님을 부르시길 바랍니다.
이들의 부르짖음에 주님이 걸음을 멈췄듯이
여러분의 부르짖음 속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걸음이 멈추고
주님의 시선이 멈추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주님의 걸음이 멈추고 주님의 시선이 멈추는 곳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14절)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고 말씀하실 때는
이미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할 때 풍랑이 잔잔해졌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실패한 자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수많은 기적들이 믿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1) 주님을 믿음으로 부르면 걸음을 멈추십니다.
(2) 주님과 접촉점이 이뤄집니다.
그곳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혈하던 여인이 주님의 옷 가에 손만 닿아도
나을 것을 믿고 손을 내밀 때 손이 닫는 순간
12년을 괴롭히던 혈루병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주님과 믿음의 접촉점이 이뤄지는 시간,
주님이 걸음을 멈추시면서 내 몸에 손을 댄 자에게
능력이 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구원해 주셨던 유월절을 지키며 감사하듯이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사실 구원받은 은혜를
고백하면서 드린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1620년 11월 20일, 영국의 청교도인들
102명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함께 출발했던
여러 명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인디언들에게 얻은 씨앗으로 한해 농사를 지었고
먼저 떠난 동료들의 무덤 곁에서 처음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께 눈물로 드리면서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했던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믿는 성도로서
교회의 일원으로 감사를 고백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무엇보다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고백이 있길 바랍니다.
(2)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한 해 동안도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더
건강했던 사람들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때로는 질병으로 앞서간 이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통계자료를 보니 당뇨병 환자가 2,863,797명,
평생 살면서 암이 걸릴 확률은 36.2%입니다.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암에 걸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오늘도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의 조건이 없는 게 아니라
감사를 깨닫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며칠 전 친구 목사가 저를 붙잡고 울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아내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건강을 잃고 난 후에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수술을 하고 퇴원한 집사님은 30년 동안
주일 한번 범하지 않고 믿음 생활했습니다.
이것이 내 의지, 결심, 노력인 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주일새벽에 갑자기 응급실로 들어갔답니다.
그곳에서는 설교도 들을 수도 방송으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퇴원하고 나서 깨닫고 보니 지금까지 주일성수 한 것이
하나님이 건강을 지켜주신 은혜였다는
고백입니다.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