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겸손의 왕 예수님과 백성들
본문: 마 21:1-11
예수님은 최후의 예루살렘 방문을 위하여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날 예수님은 곧 있을 죽음을 위해 마리아로부터 비싼 향유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요 12:1-11). 약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며 유월절 어린양(요 1:29)으로서 곧 죽으실 것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동안 간간히 말씀하시던 “내 때” (요 7:6), 즉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대속의 날'이 바로 다음 주의 '유월절'이며 장소는 '예루살렘'인 것을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날이 밝아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어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본문 2-3절). 드디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까? 또한 예수님을 제자들과 사람들은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1.예수님은 왕이심에도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본문 6-7절).
말은 전쟁과 용맹을 상징하나 나귀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새끼 나귀를 타신 것은 예언을 성취함이였습니다 (슥 9:9). 왜 어린 나귀가 선택되었습니까? 볼품없는 짐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짐승을 '메시아의 입성'에 동원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나귀의 이미지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멸시와 간고를 겪으시고 질고를 짊어지신 '메시아'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사 53:2). 또 어려서 아무도 타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막 11:2). 구약시대에 제물로 드려지는 암송아지는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민 19:2). 법궤를 실은 수레도 다른 데 사용한 일이 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삼상 6:7). 예수님은 이 모든 의미를 취하시기 합당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원래 첫 새끼와 첫 열매, 첫 소산은 하나님의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출 13:2; 23:19). 이처럼 예수님은 왕이셨지만 볼품없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겸손히 입성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겸손을 배우시길 축원합니다.
2. 제자들은 겉옷을 나귀 위에 얹고, 군중들은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았습니다 (본문 7-8절).
겉옷을 까는 행위는 왕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예우였습니다. 예후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때 신하들이 자기들의 옷을 벗어 깔았습니다 (왕하 9:13). 또한 환영과 복종을 뜻했습니다. 오랫동안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입성은 곧 메시아의 입성이었으며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의 왕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사 2:3). 또한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에 깔았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의 은혜를 기념하는 초막절에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를 독립시킨 마카비가 예루살렘성으로 승리의 입성을 할 때에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았었습니다.
나아가 군중들은 예수님의 앞뒤를 따르며 환호했습니다 (본문 9절). 그들의 손에는 창검 대신에 종려나무 가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새끼 나귀를 타신 왕과 종려나무 가지를 든 그의 백성들, 이것이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군마에 높이 탄 왕과 창검과 깃발을 펄럭이며 위풍당당한 군대를 거느리고 입성하는 세상의 왕의 행렬과 얼마나 대조되는 모습입니까? 전자는 평화의 행렬입니다. 대신에 후자는 전쟁의 행렬입니다. 전자는 생명의 행렬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죽음의 행렬입니다. 전자는 겸손의 극치입니다. 반면에 후자는 교만의 전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의 본뜻은 '지금 구원하소서'이며 때로는 '만세'의 뜻이었습니다. 마태 복음의 본문 외에 다른 복음서들에도 각각 '메시아'에 대한 감격의 칭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나라여'(막 11:10),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눅 19:38),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요 12:13). 드디어 대망의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이 환호성은 역사적인 환영이며 감격이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과 모든 백성들은 왕이신 예수님, 그러나 겸손히 어린 나귀타고 행차하신 예수님, 메시야를 겸손히 인정하고 최고로 존중해 드렸습니다.
할렐루야!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그리고 겸손히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제자들과 백성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 말세지말에는 이같은 겸손이, 특히 영적 겸손이 (spiritual humility) 필수적 덕목으로 요청됩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영적 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