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나 1:1-16
제목:끊임없는 하나님의 포용
어떤 일이나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감정이나 선입견이 작용을 합니다. 이로 인해 감정과 말씀이 대립을 합니다. 말씀이 옳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분노나 미움, 불쾌감이 말씀을 뒷전으로 밀어 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했습니다. 어느날 니느웨로 가서 사악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에 대한 선입견이 아주 좋지 못합니다. 악한 인간들..저런 사악한 인간들은 그냥 폭삭 망해야해.. 무슨 구원의 메세지를 선포해.. 라고 혼자 중얼 거리면서 가야할 길고 반대편으로 갑니다.
이런 내적 갈등 속에서 요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런 인간들은 싹쓸이 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반항이라도 하듯이 니느웨로 가지 않고 도망쳐 다시니스로 향하는 배를 탑니다.
그리고 배 가장 밑 에 있는 곳으로 내려가 잠이 듭니다.
첫째, 하나님을 피해 도망친 요나는 에이 잠이나 자자..
3절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 잠자고 있는 요나를 본다
잠이라는 것은 육체의 피로를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시 127:2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도망쳐온 요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입니다 ..보통 고민 거리나 머리가 복잡하면 잠을 청해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눕자마자 잠이 듭니다.
하나님은 깊은 잠을 통해서 머리를 맑게 합니다. 하나님은 때론 잠을 잘 자게 함으로써 사리판단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잠은 새로운 생각을 전환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잠을 자기는 전에는 포기, 불안.. 그런데 잠을 이룬 후에 요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나요?
둘째, 폭풍 속에서 깨어나는 요나
10절이다. 폭풍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요나를 본다.
폭풍으로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있다. 그런데 코를 드러렁 골며 잠이나 쿨쿨 자고 있는 한 사람을 누군가 본다.
선장은 그를 깨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지 아느냐 ..넌 누구냐..
요나는 아주 정확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 합니다.
잠을 이룬 후에 조금도 거짓되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 살겠다고 거짓으로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배 밖에서는 거센 폭랑으로 점점 더 흉용해 졌다고 합니다.
밖은 풍랑으로 배 안을 온통 두렵게 합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장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많은 경험을 해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장은 요나에게 질문 합니다. 해결점이 뭔가?11절을 보라.
여기 요나의 멋진 답변을 보라
지금 우리에겐 이런 답변이 필요 한 때다
요나는 고통 속에 있는 뱃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모든 것이 나의 불순종 때문이다. 요나의 멋진 고함을 보라. 12절에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는 자신을 던진다. 내 생각을 던진다. 내 감정을 바다 속으로 던진다.
달라진 요나의 모습은 전체를 살리는 계기가 된다.
이방인들이 보여주는 신앙을 보라. 16절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문제들도 해결점을 제시해 주실 분은 오직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아멘 .
마지막,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철든 요나
자기 논리에 빠져 살았던 요나다. 어떤 면에선 아주 계산이 빠른 사람이 바로 요나다. 그런데 철이 들었다. 철이 들었다는 말은 사리를 분별하는 힘이다.
사리를 분별하는 힘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힘이 되어야 한다.
시무 라는 단어가 화제다. 시무 라는 의미는 시급하게 힘을 써야 할때 라는 의미다. 이것은 우선순위와 관련이 있다. 지금 현 상황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야 하는지 지혜가 필요하다. 분별력이 필요 하다는 의미다.
누가 성숙한 자인가?
감정, 특별히 분노를 조절하며, 우선순위를 감정없이 처리할 수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늘 걸림돌이 감정의 변화입니다. 감정이 믿음을 방해 합니다. 감정이 신앙을 잡아 당깁니다. 감정이라는 게 나쁜게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 보다 신앙보다 앞서서 기준을 결정하게 한다면 그것은 고쳐야 합니다 .
요나는 반항적인 잠에서 깨어나 위기의 순간으로 접하게 합니다.
요나는 항복한다.
철든 요나다. 마치 탕자처럼 되돌아 온다.
요나는 앞으로 자신의 행동은 하나임을 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다.
나를 죽이는 일 밖에 없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은 나를 살려 내신다.
말로만 끝나면 안된다. 직접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15절을 보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를 죽이시는 것 같다 .얼마나 힘들게 하시는지.. 욥이 그런 고백을 합니다. 욥 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무슨 말입니까? 그는 부수지만 또한 묶고, 그는 치지만 그의 손은 치유한다 ..
요나는 뱃 사람들에게 자신을 던져 버림으로 살게 한다.
하나님은 요나를 죽게 하시지 않으신다. 물고기를 준비하시어 살려 내신다.
여전히 감정과 선입견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려라.
내 안에 가득차 있던 불필요한 것들은 다 버려라.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하라.
잘못된 것에 빠져 진정 중요한 것을 놓쳐 버려서는 안된다.
탕자인 나..
나를 살려내신 주님. 내 삶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고통 속에서 나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나 4장 전체를 통해서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하나님의 말슴.. 이방인들의 반응이 요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물고기를 통해서 은혜, 이방인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요나는 박넝쿨을 통해서 반복된 구조 속에 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요나를 향해 보여주시는 태도는 끊임없는 포용이다.
하나님의 포용
코로나 시대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넓은 포용은 나를 결코 내팽겨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포용 속에서 진정 성도의 참된 길을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