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Only faith is credited as righteousness)
본문: 롬 4:1-8
왕의 옷을 입은 거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지는 아무런 한일이 없지만 왕의 불쌍함을 얻어 왕궁으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지는 자신이 왕궁으로 들어갈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습니다. 그 때 왕은 절망하는 거지에게 자신의 옷을 보내 주었습니다. 거지는 그 왕의 옷을 입고 왕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죽어서 하늘나라로 성문을 통해 들어 가려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네가 왜 하늘나라로 들어 오려 하느냐? 그 때 우리들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옷을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런 공로 없지만, 다만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여기에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일평생 붙들고 신앙생활 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가 말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이신칭의’ justification by the faith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진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진리가 왜 중요할까요? 또한 믿는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은택을 줄까요?
1.자신을 자랑하며 영광받도록 하지 않게 합니다 (본문 1-3절)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인이 된 때가 할례를 받기 전이요, 율법을 지키기 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할례나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진리임을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롬4:10-12).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의 혈통과 업적을 자랑하면 아니 됩니다. 겸손해야 되지 자신이 영광을 취하려 하면 아니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높아져 영광을 받으려다가 음부 맨 밑에 빠치우게 되었습니다 (사 14:13-15; 겔 28:17).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진리로 충만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다만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고백 가운데 늘 생활하시길 축원합니다.
2. “이신칭의”는 우리 자신의 죄를 볼 수 있게 합니다 (본문 7-8절; 시편 32:1-2)
여기서 죄를 가리움을 받았다는 말은 헬라어 (원형: 에피칼립토, to cover)로 ‘위를 덮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앞에서 이야기한 왕의 옷을 입은 거지처럼 더럽고 죄된 모습이 덮어지고, 가리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의인들은, 의의 옷 안에 있는 자신들의 죄를 계속 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주를 믿거나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면 죄가 없는 상태가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가 완전해 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해탈을 통해 무념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도교에서는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이렇게 우리를 속입니다. “너는 죄와 싸울 필요가 없다, 너는 의인이 되었다.” 이는 마치 왕의 옷을 입고 궁궐에 들어가는 거지에게 “너의 겉모습을 봐라 얼마나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느냐? 너의 속도 이렇게 깨끗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거짓말에 속으면 어떻게 됩니까? 죄와 싸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 겉모양의 무늬만 화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은 유대인들처럼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는 여전히 죄짓는 죄인이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의 옷을 입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의인된 죄인!”
성화를 위해 우리 모두 죄를 짓지 않으려 늘 힘쓰시길 소망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히 12:4).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죄성으로 인한 죄들은 바로 바로 발견하여 회개하며, 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마지막으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진리는, 우리로 복된 축복 속에 살게 합니다 (본문 5-6절)
돈은 결코 아무리 많아도 사람을 만족하게, 행복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물받으면 어떻습니까? 좋지요? 행복하지요? 왜? 예상치 않았는데 ... 아무 한 것 없는데 생기니까요. 부부 사이에도 자신이 남편자격이 없는데, 부인자격이 없는데 상대방이 잘해줘 보세요. 행복해지잖아요. 맞습니다. 자신이 자격이 없음에도 뭔가 얻게 되면 사람은 기뻐하며 행복해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자격이 차고 넘치는데 안해준다 생각해 보세요. 부부가 서로 사이가 안좋고 원수가 따로 없게 되잖아요.
칭의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자신은 죄 때문에 도무지 의롭게 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죄를 가려주며 죄값 갚지 않아도 되고, 의롭다고 하니 정말 행복한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행복(복됨 the blessedness, 마카리스모스)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으로 인한 복됨(the blessedness / 본문은 ‘행복’)과 세상의 위로로 말미암는 거짓된 행복(happiness=happen에서 유래됨)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세상의 위로는 상황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것이다.’ 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저질렀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내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복됨(happy)을 안겨 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곤고한 사람임을 탄식하며 고백합니다 (롬 7:21-25). 자신의 곤고함을 깨달은 사람만이 자신의 곤고한 처지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노예가 쇠사슬에서 풀려 나듯이, 새가 새장에서 풀려나는 것처럼 죄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 구가”를 통해 진정한 복됨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같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잘 붙드시길 축원합니다. 자신이 “왕의 옷을 입은 거지” 같은 신앙인임을 늘 명심하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자랑하며 영광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시길 축원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 늘 회개하며 죄와 싸워 범죄치 않으려 힘쓰시길 축원합니다.
곤고한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게 되어 자유를 구가하는 진정한 복됨의 축복 속에 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