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세요

김경열 목사 0 06.10 06:46
본문말씀 : 롬 8:26-28
제 목 :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세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Likewise the Spirit also helpeth our infirmities;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itself maketh intercession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Romans 8:26)]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큰 혼란기를 맞았습니다.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세습, 암몬사상,
이단들은 득세하고 있고, 종교 편향이라며
종교적인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인도해 줄 지도자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교회들의 여러가지 문제들로
한국교회를 대표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을 염려했는데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세상이니
초대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우리의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에 한 곳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행 1:4)

오순절 날이 임하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온 집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사건이 일어나므로
교회가 탄생하게 된 성령강림 주일입니다(행 2:2-4)

성령은 바로 우리의 안내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시고
성령은 그 길을 확실하게 인도할
안내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 길을 물어야 합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길은 가장 안전한 길이며
평안한 길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은 확신이 생기고
담대해지고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의 임재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성령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소리 없이 입술만 동했는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의 임재가 없는 고백이
얼마나 고통과 두려움이 있는가를
사울왕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막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을 때
사울은 너무 괴롭고 답답해서 왕이 평복으로 변장을 하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길을 물었을 때
부끄러움과 수취만 당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려야
감동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말 1장)
중심이 없는 예배(사 1장)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를 드리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란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는
예배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깊이 할수록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깊어지고 은혜가 깊어질수록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때 영적 방황이 끝나고
인생의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이 되시고
성령은 그 길에 안내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께 길을 물으세요.
성령의 임재를 통해 가장 안전한 길로
인생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신앙생활은 내 힘이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날 ‘믿음으로 살아보자’고
수없이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언행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과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오는 죄악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모습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 다 배신해도
나만큼은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고백했건만
주님이 법정에 서던 날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후회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 전
늘 넘어짐의 반복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니
(1)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2) 또 신앙생활을 승리했고 사명에 붙들렸습니다.
(3) 내 것인 줄 알았던 모든 시간과 소유와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4) 또한, 은혜의 눈물, 기도의 눈물, 영혼을
사랑하는 눈물이 회복되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미지의 길을 가는 나그네입니다.
미지의 길을 가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좋은 안내자인데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길을 물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안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입니다.(26절)

1) 연약함은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사람마다 연약함이 있습니다. 
연약함이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요소들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감정에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인입니다.
마음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왕도 시기와 질투심으로
평생 다윗만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스스로 자결해 죽었습니다.

또 이성에 연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축복을 받은 자가 하찮은 이방 여자
들릴라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가 두 눈을 빼앗기고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삶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미투 운동으로 돈 잃고 명예 잃고
가정과 직장 잃은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또한 물질에 연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그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마음에 괴로워 몸부림치다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도 무언가 해보고 싶어도 건강이 허락지 않는 등
연약한 부분은 모두 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내 것 만들려는 도벽이 심한 사람도 있는데
백화점에서 물건이 자꾸 없어져 CCTV 설치해서
잡고 보니 집이 세 채나 있는 사람이더랍니다.

연약함이란 모든 부분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치명적으로 연약한 곳이 있습니다.
사람이 병이 들 때 온 몸이 약해서 병이 드는 것이 아니라
치명적으로 연약한 한 부분 때문에
몸 전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하다가 한 가지 연약한 것 때문에
인생의 전부가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마귀 사탄은 그 연약한 부분을
집중 공격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과 말씀으로 전심 갑주를 입고(엡 6:13-17)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엡 4:27)

2) 신앙은 연약한 부분을 성령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을 하나님께 고백하세요.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세요.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혜사’(parakletos)라고 했습니다.
이는 파라(옆에)와 클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
보혜사라는 말은 대언자, 중보자, 위로자,
변호자 라는 뜻입니다.(요 14:26)

즉, 성령은 우리의 약함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 주십니다.

때로는 너무 어려운 일을 만나
큰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재난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 기도할 바를 모를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힘들어 한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마땅히 내가 빌어야 할 것을 모르고 있을 때에
성령님이 중보기도 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노라면
때 아닌 위급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성령은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중보 기도를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도움을 구하세요.
성령은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자요,
위로자가 되십니다.

2.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27절)

1) 성도가 바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녀가 바로 사는 것은
부모의 바람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도가 바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내 맘대로 월권할 때
실패의 치명적인 원인이 됩니다.

요나의 풍랑도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 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입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것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리고
집을 떠난 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군가 인도해 주는 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성경에 축복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갈대아 우르
고향땅을 떠나갔습니다.(창 12:4)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까지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음의 자리까지 순종하며 갔습니다.

어리석은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삭은 축복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합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120년 동안
변함없이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 방주가 훗날에 자기 가족과 자신을 구원하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보혜사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너희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요 14:26)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리 죄악의 자리에 있을 때
그 자리를 벗어나도록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줄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2) 성령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감찰한다는 말은 '꿰뚫어 본다'는 뜻입니다.(27절)

즉, 성령은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책망할 때도
마음을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아,
너희 속은 열린 무덤 같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무덤이 무엇입니까?
겉모습은 아름다운 공원처럼 잔디로 깔려 있는데
그 속은 썩은 송장이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절기를 따라 금식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마치 송장이 들어 있는 것 같이
부패하고 썩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특히 성령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친밀한 교제가 이뤄집니다.

육체의 건강보다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의 건강을 잃으면 정신이 병들고,
사회가 병들고, 행동이 병듭니다.

요즘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느낄 수가 있습니다.

범죄할 때에 손발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입니다.
마음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병들어 있기 때문에
부패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탄식도 하시고, 기뻐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성령이 주관하시도록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3. 성령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28절)

1)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세요.

우리나라가 참 좋은 것이 많은데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표현력이 부족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꼭 일어나면서
굿 모닝 인사를 합니다.
조금만 떠나도 떠나면서 사랑을 고백을 합니다.

매일하는 것도 지겨울 텐데, 꼭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말을 잘못 합니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는? 밥 먹었나? 자자.
세 마디만 한 답니다.
그들은 사랑은 속으로 하는 거랍니다.

속으로 사랑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표현하면 더욱 맛이 납니다.

진짜 사랑하면 사랑이 얼굴에서 나타나고,
눈빛에서, 언어에서,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장구한 재물도 부귀도 다 내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만나 주시고
교제하십니다.(잠언 8:17-18)

부귀와 재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의 우선순위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 분은 절대자입니다.
우리를 창조한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2) 또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함부로 현실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기준과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다 보면
잘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안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고난 속에 실패 같지만
축복으로 가는 통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환경만 보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갈 때,
오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끝장 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불 속에 던져지고, 사자굴 속에 던져질 때,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맹인이 지팡이 없이 한걸음도 온전히 걸어갈 수 없는 것처럼
진정한 신앙의 길은 반드시 보혜사 성령의 인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안내가 없이는
연약한 우리가 똑바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네비게이션도 안내판도 없는
타지에서 길을 헤메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강림 주간에 성령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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