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 내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나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6:25)
But Abraham said, Son, remember that thou in thy
lifetime receivedst thy good things and likewise
Lazarus evil things: but now he is comforted
and thou art tormented.(Luke 16:25)]
어리석은 사람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합니다.
후회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렸으면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고
길은 가다가 잘못 갔으면 돌이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한번 지나가면 지울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방통행과 같습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야 합니다.
서울 양화진에 가면 25세의 생을 마감한
여자 선교사 '루비 켄드릭'의 비석이 있습니다.
루비 켄드릭의 묘비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다 바치겠노라."
켄드릭은 미국 텍사스 남감리회 소속으로
1907년 9월에 조선땅에 왔고 8개월 만에
급성맹장염으로 2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앞으로 텍사스 청년회에
10명, 20명, 50명씩 조선 선교를 위해
오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유언을 들은 20여 명의 청년들이
선교사로 오게 하는 동기가 됐습니다.
다음은 그녀가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이곳 조선 땅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제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유언을 남기고
25세의 젊은 나이로 조선 땅에 묻혔습니다.
예수의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은혜가
뼈 속까지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천만 기독교인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이런 순교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복음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명령을 따라
한 영혼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천국과 지옥의
실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것을
얻어먹다가 죽은 나사로가 나옵니다.
부자도 죽었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죽음 후에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하며
후회하는 모습으로 나오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음부에서 고통하는 부자의 고백이 24절에 나옵니다.
너무 괴로워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
손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를 보여줍니다.
더 괴로운 것은, 고통 속에 몸부림 치고 있는
부자에게 평안하게 안식하고 있는
나사로의 모습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환경과 상대적인 비교가 되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부자가 고통 속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아브라함의 대답을 보세요.(26절)
“큰 구렁텅이 있어서 내가 갈 수도 없고,
네가 올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 땅에서 결정이 됩니다.
부자는 자신의 고통과 나사로의 행복을 보면서
이 땅에 남은 가족을 생각했습니다.
지옥으로 올 남은 5형제가 생각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지옥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내 형제들에게 전해줘서 지옥을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애원하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만 구원 받았다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는 아직 예수 믿지 않고
남아있는 가족들이 생각나야 합니다.
지금은 한 지붕 아래서 살지만
언젠가 이 땅을 떠나는 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영적 이산가족이 됩니다.
영적인 이산가족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분명한 실존을 알려줍니다.
1.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19-22절)
1)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22절)
죽는다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성도라고 장수하는 것 아닙니다.
성도도 죽고 불신자도 죽습니다.
젊어서 죽기도 하고 늙어 죽기도 합니다.
병들어 죽기도 하고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죽는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조금 먼저 갈 수도 있고 조금 뒤에 갈 수도 있습니다.
순서도 없이 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1) 그러나 성도와 불신자는 죽음부터 달라집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보세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는 이 땅에서 비록
어렵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살았습니다.
천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안식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자의 죽음을 보세요.
이 땅에서 호화롭게 살았지만 방탕하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를 기다린 곳은 지옥입니다.
음부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식하고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23절)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서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24절)
타들어 가는 혀에 물 한 컵도 아닌
물 한 방울로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얼마나 고통스런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물 한 방울이 무슨 혀를 서늘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상상할 수 없이 고통스런 곳이 지옥입니다.
2) 분명한 사실은 사후 세계는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25절)
(1) 천국과 지옥도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예수 믿고 살았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믿지 않다가 죽었으면 지옥가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2) 상과 벌도 이 땅에서 결정됩니다.
충성스럽게 살았으면 장차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을 받을 것이고, 악하고 게으르고 불신앙으로
살았으면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과 충성도 이 땅에서 하는 것이고
믿음생활도 이 땅에서 잘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죽음 후 삶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죽음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상과 벌로 나타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고 했습니다.(계 21:4)
(1)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닦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애통하는 것도 없는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위로자가 되시기 때문에
애통하는 일이 없습니다.
(3)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름 모를 질병들,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수없이 인생을 무너트립니다.
그러나 천국은 질병이 없는 곳입니다.
(4)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도 쓸데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계 22:5)
저는 고전 13:12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주님의 얼굴을 맞대면하고 보리라.”
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살지만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날, 저 천국에서
주님의 얼굴을 맞대면 하고 볼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 살면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빌 3:20)
성경은 우리 인생을 나그네와,
외국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외국인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차길 축복합니다.
유명한 피터 마셸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셸 목사님의 임종시간이 가까이 올 때 부인이 울면서,
"나 혼자 이 땅을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하니
그때에 목사님이 손을 잡으면서
"여보,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내일 아침에.”
그리고 돌아가셨답니다.
부인은 여기서 믿음을 얻고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 라는 책을 써서
Best seller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모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천국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자기 남편의 죽음을 보면서 하늘나라에 확신을 얻게 되었고
그때 받은 영감과 감격이 그로 하여금
좋은 글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마셸 목사님은 죽을 때도 보통 때처럼 또 만나자.
잠깐의 이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결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만나기 때문에, 천국 환송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나사로처럼 하나님을 믿고 죽느냐? 하나님을 떠나 죽느냐?
뜻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다가 죽느냐?
헛된 일에 쫓기다가 죽느냐?
이 땅에서 선택하는 일입니다.
2)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23절)
(1) 지옥을 음부라고 했습니다.
음부란?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를 말합니다.
음부가 얼마나 고통스런 곳인지
불꽃 가운데서 울부짖는 모습이 나옵니다.
(2) 지옥은 영원히 괴로움만 있는 곳입니다.(24절하)
괴로움이란? 아픔을 느끼다. 고통하다.
슬프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지옥은 괴로움과 고통과 슬픔만 있는 곳입니다.
기쁨도, 위로도, 소망도 없고,
영원히 불꽃이 타는 곳이 지옥입니다.
평소에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많아
하나님을 버린 부자가 지옥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3) 그리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계 21:8)
불의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롬 2:8)
범죄한 천사들이 가는 곳이고(벧후 2:4)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고 했습니다.(마 10:15)
오늘 본문에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오히려 범죄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남보다 좋은 조건이 있습니까?
그것이 죄악의 도구가 되고 있다면 축복이 아닙니다.
남보다 더 건강이 있는데 정욕으로 쓰고 있다면
그 건강도 복이 아닙니다.
남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악으로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도 축복이 아니다.
본문의 부자라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남보다 더 좋은 조건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남보다 좋은 조건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시길 축복합니다.
3. 지옥에서 고통하는 부자는 구원받지 못한
5형제를 생각하며 괴로워 했습니다.(27-28절)
1) 자기처럼 지옥에서 당할 고통을 생각했습니다.(28절)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던 부자에게 마지막 생각난 것이
구원받지 못하고 자기처럼 지옥에 올
다섯 형제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도 믿지 않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친척과, 우리 주변의 영혼이 생각나야 합니다.
지옥으로 떨어져 가며 나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는데 알고 있던 사람이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세요.
지옥으로 가는 영혼이 보이지 않습니까?
건져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그 영혼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매일 만나는 가족이요, 친구요, 이웃이요,
직장의 동료들이고, 사업을 같이하는 동업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영생의 소식을 전하지 않아서 지옥에 갔다면
그 영혼의 피 값을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2) 이들에게 지옥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요 14:6)
(1) 예수 안에 길이 있습니다.(요 14:6)
(2) 예수 안에 평안이 있습니다.(요 14:27)
(3) 예수 안에 안식이 있습니다.(마 11:28)
(4) 예수 안에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행 4:12)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무당,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운명 철학원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답도 없고, 길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운명이나 팔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길도 있고,
평안도 있고 인생의 해답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영적 이산가족들이 생각나야 합니다.
저들이 지옥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을 보는 눈도 열려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영혼이 우리 주변에 더 많습니다.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담대하게 입을 열고
구원의 손을 내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