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았을땐 근심이 먹고, 죽으면 벌레가 먹는다” (탈무드 격언)
염려로 가득 찬 삶은 결코 승리하는 삶일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한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으면 우리의 삶은 활력을 잃게 됩니다. 염려의 원인은 대개 어떤 주어진 상황을 제대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느낄 때 발생하게 됩니다.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일을 수도 없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처지와 형편에 있던 하나님을 찾으면 평강의 하나님이(빌 4:9)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두번째 본문에서 사사 기드온은 죽을까봐 마음이 슬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2-23절). 이 일로 인해 기드온은 단을 쌓고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를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살롬!” (24절)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실 때,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27).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 한 가운데에 나타나시어 참 평강을 주셨습니다 (요 20:19). 얼마나 두려웠으면 제자들이 문들 닫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겠습니까?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한 평생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여전히 두려워 문닫고 문고리 잡고 주여! 주여! 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두려워 하고 있는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성령님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엡 4:3; 롬 14:17).
이러한 평강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이 늘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심령과 삶에, 환경에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본문 빌 4:6의 '염려하다'(헬, 메림난)로 번역된 동사는 '불안하고 괴롭히는 근심', '미래의 짐을 짊어지려고' 시도하는 것, 특히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부당한 걱정'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걱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 있었고, 빌립보 교인들은 박해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 1:28). 그러므로 그는 허구적인 불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 모든 괴로움들보다 더 크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특히 기도에 의해 염려를 평강으로 바꿀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세 개의 동의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기도(프로슈케, proseuche, 37회 사용)는 "소망과 바램을 하나님께 일반적으로 아뢰는 것" 입니다. 기도하다(프로슈코마이, 87회 사용).
-간구하다 (데오마이 (행 10:2))는 “결핍하다, 모자라다, 기도하다, 간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낱말로써 부족할 때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참고: 데에시스 (눅 1:13) 명사) 라는 말은 특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기도에는 항상 감사가 따라야 한다 (빌 1:3~11; 딤전 2:1)).
-그리고 구할 것을 아뢰라 (아이테마타) 용어를 사용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많은 기도를 통해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을 발견하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말도 안 되는 수치와 불신하는 겸양을 갖고 감추고 억누르고 억제하는 사람들은 염려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얽매이지 않고 확신을 갖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은 사람들은 염려의 괴로움을 덜게 됩니다. 시편에는 그와 같은 고백들이 풍부합니다 (특히 다윗의 109편 저주시편).
우리 모두 먼저 염려가 생기면 걱정거리 목록을 작성하십시오. 청구서, 직장, 자녀 또는 손자손녀, 건강, 장래일 등 당신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어 내려가십시오. 다음에는 걱정목록을 기도목록으로 바꾸십시오. 여러분이 걱정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드리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기도제목으로 정한 것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7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은 결과로 얻은 하나님과의 평강을 지칭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평강은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혼의 내적 평강', 즉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에 그 근거를 둔 평강만을 언급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자신의 본성 자체의 고요한 평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 바로 이어서 9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지켜줄 것을 확신했습니다. 동사 프루레인은 하나님의 평강을, 어떤 도시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초를 서는'(참조, 고후11:32) 군인들로 묘사한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바울 시대에 빌립보에는 로마의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군인들의 수비대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켜주실 것이며, 따라서 요새와 같이 걱정과 두려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와 간구, 구할 것을 아룀으로써 모든 염려와 걱정, 근심, 불안, 초조, 공포 등에서부터 자유하게 되어 “여호와 살롬”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조지 뮬러 목사는 “염려는 기도의 끝이고 기도는 염려의 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렵지만 기도하면 평안이 생기고, 걱정근심이 있지만 기도하면 평안해지며, 환난 시험 당하나 기도하면 평안하여집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맡아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기도는 축복이요 하나님의 은혜 주시는 방편이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주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절대로 성도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짐도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드리는 새벽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식사 때마다 잠깐이라도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틈나는 대로 하나님을 부르며 찾는 것입니다.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 드리는 철야 기도와 음식을 먹지 않고 드리는 금식기도와 모여서 기도하는 합심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쉬지말고 기도하십시다.
무시로 기도하고, 깨어 기도하십시다.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어떠한 환경이던 염려를 내려 놓고, 여호와 살롬! 하나님의 진정한 평강을 누리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