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요한복음 8장 1-1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1.11.20 08:53

 

제목 : 독백으로 살지 말고 대화로 살라

본문 : 요한복음 8:1-11

 

팬더믹 기간 중에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가 생겨 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 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저마다 생각들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다릅니다. 자연히 갈등이 생기고 다툼의 소지는 여전합니다. 서로 조심한다고 하지만 깨지는 소리가 요란 하기만 합니다. 갈등과 다툼의 발단은 바로 말 한마디가 문제의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사실 대화의 첫 걸음은 굉장히 중요 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는 첫 마디는 대화가 물 흘러 가듯이 잘 진행되게 합니다. 하지만 배려나 이해하는 마음이 없이 무턱대고 화를 내고 신경질적인 첫마디는 혼자 떠드는 격이 될 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고 조롱받는 죄인들도 많았습니다. 만약 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목격 되면 똑같이 죄인 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죄인 취급 받는 이들은 이웃과 말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저 함부로 뿜어대는 독백에 무시 당하고 살뿐이다. 세상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 조차 아주 싫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바라보시는 관점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상대방을 향한 대화의 첫걸음은 굉장히 온유 합니다. 예수님은 죄는 미워 하시지만 죄인을 향해서는 긍휼로 품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간음하다 들킨 여인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질질 끌려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간음하다 적발해서 붙잡아 왔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진정한 숄루션을 얻기 위해 질문한 게 아니다.  한 여인을 미끼로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악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사악한 심중을 아시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 합니다. 

그랬더니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슬그머니 하나씩 쏜살같이 사라집니다. 

저런 인간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웅성 거리며 떠들석했던 순간은 지나 갑니다. 어느새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

 

예수께서 여인에게 질문을 합니다. 너를 고발하려고 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 여인이 대답을 합니다.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집고 넘어 갑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향한 용서의 마음은 풍성합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 이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아름다운 대화를 보면서 몇 가지 교훈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대화의 첫 걸음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꺼 번에 몰려와서 한 여인을 난도질을 합니다. 여럿이 몰려와서 한 사람에 대해서 온갖 비난과 정죄를 쏟아 붓는다.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왔을 당시에 이 여성에게 몸을 씻거나 몸을 가릴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여인을 앞에 세워 두고 온갖 모욕을 줍니다. 예수님에게 그녀의 수치를 드러내게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당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고발할 건덕지를 얻기 위해서라면 한 여인의 수치와 모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위배가 되는 큰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현장 한 복판에 버젓이 세워두고 독백만 할 뿐이다. 독백이라면 상대방을 앞에 세워 두고 혼자 지껄이는 말투 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인을 앞에 세워 둔 채.. 예수께 질문 합니다. 

이런 자는 모세의 율법에 의해 돌려 쳐 죽어야 한다. 공식대로 산다. 여기엔 은혜는 없다. 공식대로 간음한 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지배적이다. 이들에게서 긍휼의 냄세는 전무 하다. 그저 잔인할 뿐이다. 

 

여인을 향해 마구 쏟아 붓는 말들을 모습을 보면서 욥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욥이 까닭없이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때에 친구들이 우르르 찾아와 무슨 말을 하나요.. 하나님은 욥에게 까닭없는 고난을 주셨건만.. 친구들은 너가 죄를 범해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친구들이 얼마나 욥의 가슴을 후벼 팠으면 욥이 뭐라고 말하나요..욥 19:2에 “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욥은 친구들을 향해 짓부수기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얼마나 후벼 팠으면 이런 말을 할까? 계속해서 욥은 말합니다.  욥 19:22에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욥이 친구들에게 한 말이 뭔가요? 제발 하나님 노릇좀 하지 말라.

 

예를 들어 친구 셋 이 와서 누가 심한 말을 하면, 상식적으로 좀 말리거나 해야 하는데 같이 덩달아 욥에게  칼로 상처난 곳을 후벼 파내는 겁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도 보세요.우리도 하나님 노릇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좀 잘못이라도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온갖 말들로 더 힘들게 합니다 . 박살을 냅니다. 비단 한 아이가 잘못이라도 하면 부모는 한 가지 대답만 듣고 싶어 온갖 부질없는 말을 쏟아 붓습니다. 그 한 가지 답변을 얻기 위해 “왜 그랬어” 윽박 지르고 난리를 칩니다. 

 

대화로 어떻게 되었는지 자초지종 물어 볼 인내는 없다. 그저 온갖 욕설과 비난의 말을 쏟아 부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합니다. 그럴수록 당사자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다.

 

오늘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들었던 돌을 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먼저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과 대화에서 보여준 ABC 를 보라. 

우선 간음한 여인을 멀리하지 않는다. 결코 간음한 여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간음한 여인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은 향해서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죄인을 비난하러 오시지 않으시고 죄인 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알 수 있다. 마 12:20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니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그리고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용서하시면서 새로운 가르침을 부여해 주십니다 .요 8:11에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대화의 abc는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지침이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익숙한 말투의 습관을 보라. 상대방을 향한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고 있나요? 나는 대화로 시작한다고 하지만 내 안에 바리새인적인 생각이 가득차 있지는 않는지! 어느새 내 자신은 상대방을 더 코너로 몰아 붙이는 독백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독백의 말들을 한번 나열해 보자. 

“너 이리와 바”.. 벌써부터 우리의 시작은 강압적이다. 

어느 누구에나 “야 임마 넌 맨날 그 모양 그 꼴이냐”.. “내가 그럴줄 알았지”.. “넌 잘하는 게 뭐야” 상대방을 향해 인격적으로 모드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 상대방을 버젓이 세워 놓고 독백만 한다. 

 

그렇게 당당했던 바리새인들..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당당했던 자들이 어른 들로부터 얼른 그 자리를 피합니다. 어른들.. 오랫동안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어른들이 쏜살같이 사라져 버린다.그 순간 자신이 돌을 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린다.  겉은 노련미 넘치게 보이지만 자신들이 들고 있었던 돌을 순간 남몰래 감추거나 누가 볼까봐 서둘러 버린다. 

 

여기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양심이 워킹한다. 말씀이 내 안에 없을때는 양심이고 뭐고 없다. 그저 자기 욕망과 탐욕에 허덕일뿐이다. 그런데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니까.. 양심이 나를 못 견디게 한다. 

 

왜 이들은 그렇게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도망쳐 버렸을까?

우선 먼저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토대로 해서 답을 얻어 보자.

표리 부동한 사람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정죄하는 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십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사는 사람들을 향해 지칭하는 용어 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며 삽니다. 소위 내로남불 이라는 말이 있지요. 자신을 위해서는 아주 좋게 해석 합니다 .하지만 남을 향해서는 너무나 날카로운 칼을 들이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라는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와 반대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고 남을 정죄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무시 하며 깔보는 사람, 늘 부정적인 말, 비아냥 거리는 말, 남의 의견을 짓밟아 버리기를 밥먹듯이 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실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너무 의로운 척 했습니다. 자신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의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평가 하고 계십니다 .이들은 얼마나 챙피했을까요? 스스로 의로운척 하고 말로 자신의 존재감은 드러내려고 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독사의 자식들아 ..

 

둘째, 아무리 돌에 맞아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자라 할지라도 인격적으로 말문을 열라 

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다독인다. 질타로 시작하지 않는다. 다독이는 이유는 하나다. 넌 내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죄 짓고 산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는 닫혀 있던 여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신호탄이 됩니다 .대화는 닫혀진 마음을 열게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독백하며 간음한 여인을 무턱대고 정죄합니다. 그럴수록 마음의 빗장을 더더욱 단단하게 채울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뭐라고 말씀 하시나요?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 대화는 분노와 억울함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나는 정죄하고 돌로 치려고 하는데 주님은 정죄하지 않고 돌을 내려 놓으라고 합니다 .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예수님과 때론 부닥칩니다. 예수님을 향해 왜 저런 인간을 가만히 나 두시는지 의아해 한다. 

 

나는 너무 성급한 말투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무턱대고 야단과 질타 보다는 다독이면서 대화의 첫걸음을 열면 어떨까? 소리 친다고 아이의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니다. 난리 친다고 배우자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난리치고 화를 낸다고 대화를 무르익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에게 화병만 쌓여갈 뿐이다. 

 

고개를 숙였던 여인.. 그런데 이제는 얼굴을 든다 그리고 예수님께 주여 라고 답을 한다. 

우리는 한 가지 틀에 너무 매여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공의와 법으로만 처리하지 않으신다. 사랑과 은혜로 대하신다. 빌 4;5에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인은 입을 연다. 

여인이 생각하는 예수님.여인은 이 분은 날 존중해 주는 구나..나 같은 쓰레기같은 인간조차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으니까 마음의 문을 활짝엽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태도는 많은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면에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을까요?죄인들이 예수님께 이끌렸다는 점입니다 .죄는 미워 하지만 죄인을 향한 끌어 안음입니다. 그들의 죄가 사람들의 눈에는 돌에 맞아 죽을 정도로 심각한 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엄청난 죄를 용서 하십니다 . 

 

주님은 죄인들에게 다가 갑니다. 무턱대고 야단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아픈 심정, 그들이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왜 예수님은 죄인들의 마음을 열수 있었을까? 아무리 내가 죄인들의 친구로 왔다고 말을 하지만 쉽게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분명 죄인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비결은 먼저 이해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이해가 앞설 때에 상대방의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우리는 이렇게 살지 못했다. 우리 안에 있는 생각들이 너무 강하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들, 상대방을 향한 배려나 이해심이 너무 낮다. 그런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방만 나무란다. 그러다 보면 독백만 할 뿐, 대화는 없다.

 

독백은 자기 앞에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얘기만 계속할 뿐이다. 

조금이라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상대방이 왜 이렇게 했는지 에 대해 들으려는 태도는 안중에 없다 . 내 생각에 어긋난 것, 내 뜻대로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분풀이만 할 뿐이다. 상대방이 그런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없다. 

관계 속에서 일방 통행만 주장하는 독백에 머문다면 관계는 더욱더 악화될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만 쌓여갈 것입니다. 아픈 상처를 더 곪게 할 뿐입니다 .

 

예수님을 통해서 보자. 

우리는 이런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자

외형적인 것만 보다 보면 더 중요한 내면을 무시하기 쉽다. 죄에 눈이 멀면 죄인을 함부로 대하기가 쉽다. 스스로 의로운 척 하면 공의만 강조할 뿐 은혜의 깊은 맛을 맛보기 어렵다. 좀더 자신에 대해서 솔직해 지자. 난 공의만 알았지 은혜는 몰랐음을 인정해 보라. 

죄만 보았지 죄인을 향한 이해나 배려가 턱 없이 부족했음을 인정해 보라. 

 

무턱대고 소리 친다고 소리 지른다고 상대방이 입을 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입을 닫을 뿐이다. 마음의 문은 더 깊게 닫을 뿐이다. 

 

마지막, 독백으로 살지 말고 대화로 관계를 만들어 가라

독백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하지만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합니다. 

 

자신의 대화 습관은 어떠했나.. 어느새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럭남 버력녀..라고 씁쓸한 별명이 붙여지지는 않았는지요..조금만 참고 먼저 들어 주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먼저 화부터 낸다. 남들은 이미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다. 혼자 독백하며 온갖 주워 담지 못할 말들을 마구 쏟아 부었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누구나 죄가 죄인보다 앞서면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툭하면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돌부터 먼저 든다. 돌을 든 채 남을 비판 평가해 버린다. 

 

예수님처럼 대화를 시작해요.

수치와 모멸감에 지쳐 있던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엽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 그 동안 한 마디의 말도 없었던 여인이다. 

그런데 예수의 질문 앞에 여인은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님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은 너무나 짠 합니다 .

 

여인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뭘 느꼈을까요?이 사람이 날 존중해 주는 구나 .

예수님은 죄는 미워 하십니다. 하지만 죄인을 향한 마음은 너무나 부드럽기만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게 바꿔 질 수는 없다. 여인은 죄사함받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불편함을 받아 들인다. 

 

 예수님의 대화는 결코 독백이 아니라 대화였다.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 경고 하지 않으신다. 혼자 일인 다역을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분처럼 온유하셨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묵과 하시지 않으셨다.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진정한 격려로 그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세상의 떡으로 기준 삼고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시선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지금 살아야 한다. 

 

요즘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메타는 초월이란 뜻이고, 버스는 세계(유니버설)란 의미로 즉 초월 세계라는 의미다. 메타 버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순간성이다. 순간을 놓치면 지금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잃어버리기 쉽다. 순간성을 맛보는 맛.. 세상의 떡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그 순간에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맛..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맛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 순간에 얻는 기쁨, 예수의 삶을 맛보는 참 맛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때다.

 

이것이 오늘 대화는 끊어 지고 독백으로 사는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지금 나의 삶의 처지가 어떠한가?

주님은 한 여인을 버젓이 세워 놓고 독백하는 바리새인들은 향해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주님은 오늘도 부단히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내면의 바리새인/서기관을 자각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 이중적이고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독백에 머물 뿐이지 진정한 대화를 만들어 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내 말을 줄여야 할때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올바른 말을 선택하도록 하나님께 영감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 모습 속에서 간음하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었다면 이들을 향해 주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앞에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내딛자.

 

너무나 익숙한 독백을 멀리하고 대화를 시작하라.

엡 4:29을 보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사람을 앞에두고 혼자 화내고 열내고 분노하고 열받아 했던 모습들..독백의 돌을 내려 놓으라

독백은 상대방을 향해 더러운 말만 무성하게 할 겁니다. 더러운 말로 인해 상대방을 더 수치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더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 것입니다. 

 

대화는 덕을 세우는 말을 할 것입니다. 경청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해로 인한 끄덕임과 안전성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은 독백으로 살지 않으시고 대화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깐부로 사셨다. 

예수님의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대화로 친구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깐부다.

 

오늘 우리도 내 안에 독백은 사라지고 대화로 어떤 사람일지라도 품고 안을 수 있는 깐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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