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니엘서 1장 7절 말씀 묵상 [한삼현 목사]제목 :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본문 : 다니엘서 1:7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환관장이 그들, 곧 유다의 포로인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을 이렇게 고쳤습니다)
1. 다니엘은 본래 “엘(God)은 나의 재판관 이시다”하는 뜻이었는데, 벨드사살로 “벨(바벨론 수호신)이여, 왕(차르)을 보호하소서”하는 뜻으로 새로 지었다.
2.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하는 뜻이었는데, 사드락으로 “아쿠(바벨론 달신)의 명령”이라고 지었다.
3.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랴?”이었는데, 메삭으로 “누가 아쿠(달신)와 같으랴?”라고 지었다.
4.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이었지만, 아벳느고로 “느고(바벨론 신)의 종”이라고 지었습니다.
역사적인 격동과 급변하는 사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사람이 취하는 자세는 두 가지 일 겁니다. 부러지더라도 끝까지 굽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하는 자세일 겁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여말선초(고려말 조선초 격동기)에 있었던 2가지 태도를 기억할 것이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떠올릴 겁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신사참배와 창시개명에 대해서 어떻하였는지(반대와 찬성)를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날 말세지말을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여러 방면에서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동성애, 잰더 파괴, 쉬운 낙태, 잔인한 테러와 전쟁, 유전자 변형과 그 식품들, 환경파괴, 생화학 핵무기의 위협…). 그러나 사실상 이미 로마시대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훨씬 더 사방으로 욱겨쌈을 당하였습니다. 연중 매일 사용하는 열두 달의 명칭(calendar)이나 요일의 명칭에서 그러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서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게 사용하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입니다. 대개 신앙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처럼 구약의 신앙인들은 이방 나라에 포로 되는 것은 물론이었고 개명에 이르기까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이런 위협으로부터 결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신앙전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의 경우, 그 이름이 바벨론 방식으로 바뀌어졌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삶과 여호와 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 세계에서 우뚝 세워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능히 감당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삶을 넘어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항상 우리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1)
ⓒ 복음뉴스(BogEum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