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 기도

 

창세기 4장 25-26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복음뉴스 0 2022.04.09 14:01

 

제목 : 내 삶의 방향을 바꾼 계기

본문 : 창세기 4:25-26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됐지.. 달라도 너무 달라졌네” 큰 일을 겪고 나더니 더 좋아 졌네..저번 일로 인해서 너무 충격이 큰 것 같아.. “너무 힘들어 하네” . 빨리 회복되어야 할텐데.. 

 

우리들의 삶은 늘 예측 되지 못했던 일들이 계기가 되어 상처를 받습니다 .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다 훌훌 털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이 계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날 욥에게 불어닥친 영적 재난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뜻밖의 시험을 당한 계기로 인해서 욥은 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합니다.욥은 전에는 귀로만 들었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본다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욕심이 계기가 되어 추방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된 계기가 뭔가요? 마귀가 주는 유혹에 홀딱 빠져 하나님과 멀어진 경우 입니다. 욕심이 계기가 되어 이후로 벌어지는 일들은 부부간에 서로 책임 전가를 합니다. 극기야 동산에서 쫓겨나는 일들이 벌어 집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한 아이의 출생을 계기로 엄청난 삶의 변화를 보여 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에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부부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낳은 아들이 바로 셋입니다.  셋이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습니다. 이름을 에노스 라고 지었습니다. 

 

에노스의 의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라는 의미 입니다 .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이 살던 시대상을 보면 한마디로 죄악의 극치를 달렸던 시대 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셋에게 에노스 라는 이름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선 셋이 살던 시대를 보자.

첫째, 여호와 앞을 떠나 죄악의 극치를 보여주는 라멕의 사람들

창 4:19에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쎌라였더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기 멋대로 삽니다. 자기 기분 대로 삽니다. 자기의 욕망에 빠져 삽니다. 온통 영적 결함 속에서 살 뿐입니다. 

 

라멕은 최초로 두 아내를 얻었던 인물 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두 여자와 결혼한 라멕의 선택을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에 묘사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노골적인 반항과 반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라멕이 하나님의 뜻을 범하고 난 이후의 삶을 보라

창 4:23에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무슨 말입니까? 라멕은 뻔뻔하게도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을 자랑합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소년도 죽였다고 합니다. 손으로 쳐서 죽인 것이 아니라 무기를 가지고 창이나 칼로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을 보면 잔인성이 어떠한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라멕의 이런 자랑은 어떤 위협을 의미하고 있나요? “나의 길을 가로막는 놈은 남녀 노소 막론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보라” 는 무시 무시한 말로 엄포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셋은 하나님 앞을 떠난 악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두 눈으로 똑똑히 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온통 자기 자랑에 푹빠져 살 뿐입니다. 

자랑할 게 없어 살인을 자랑합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세요.. 아내를 향한 부드러운 말은 전혀 없고 폭력적인 말로 위협합니다. 사랑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잔인한 인간성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디 한 구석에 선한 모습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또 하나, 라멕이 미쳐 깨닫지 못했던 것은 바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에노스임을 알지 못하면 자기 정욕과 자기 욕망에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라멕의 파워, 세력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위치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허무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라멕의 후손들이 이렇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나중에 노아를 통해서 방주를 짓습니다. 그런 구원의 계획도 무시 합니다 .결국 물에 빠져 죽는 비참한 인생을 겪게 됩니다.

시편 1:5에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도다” 라고 말씀 합니다. 

 

자신이 에노스 임을 아는 사람들은 라멕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전히 자신들이 에노스 임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혼탁한 세상 속에서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둘째,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은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요?

하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순종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순종입니다. 반항 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엄숙함입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옳바른 삶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예배 하는 삶입니다.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수칙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오아시스를 만날때마다 들렸다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 문제 없다고 그냥 지나치면 얼마 가지 못해서 쓰러지고 맙니다. 오아시스에 들려서 충분히 생수를 마시고 쉬었다 가는 사람이 더 빨리 광야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한 오아시스 마시는 삶을 소홀히 할 때에 내적 삶은 공허하고 메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세상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이 계기가 되어 예배가 주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금 상실해 버렸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분주하다는 이유로.. 예배가 뒷전으로 밀려 나고 있습니다 .

 

토저는 “예배를 잃어버린 보화” 라고 말을 합니다. 예배가 너무나 중요한데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아시스와 같은 예배를 더 소중히 여기면 여길 수록 삶은 더 생동감 넘칠 것입니다. 여호와 앞을 떠난 사람들은 이런 참 맛을 알 지 못합니다. 그러나 셋의 후손들은 압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이 지금 필요 한 때 입니다 .

많은 경우에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인정받는 것에 중독이 된 사람도 많습니다.사람에게 좋게 하라는 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정 받지 못하면 혼자 분노 하고 어쩔줄 몰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은 나의 인생의 주인은 여호와 이심을 선포 하는 겁니다.

여호와여 당신은 나의 주인 이십니다. 내 삶의 여정 속에서 나를 이끌어 가실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어느 쪽인지 분명하게 우리의 주인을 정해야 합니다. 양다리 걸치거나 중간 지대에 살겠다는 생각은 금물 입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산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셋,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지금 도움이 필요함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나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내가 뭘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그 다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 합니다. 

 

넷,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검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스스로 자를 수 없는 일들을 여호와의 이름을 통해서 가지치기 하겠다는 결단 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영적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날카롭게 살아있어요 합니다. 그래야 세상적인 정욕과 욕심이  틈탈 때마다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기분이나 감정은 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면 과감하게 잘라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 신앙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주님과 영적 소통이 이뤄지며,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주님 나는 당신의 명령에 언제든지 복종과 순종을 즐겨 하겠다는 각오가 곁들여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깨달은 것을 실천하며 살 때에 느끼는 영적 즐거움

셋의 후손들이 에노스 임을 알고 난 후에 보여준 삶의 모습은 하나는 동행입니다 에녹을 통한 하나님과 동행의 삶입니다. 

 

창 5:21-22 에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드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여기 에녹의 인생의 엄청난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뭔가요?

바로 에녹이 65세에 므드셀라를 낳고 난 후 하나님 과 동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에녹이 65에 므드셀라를 낳고 삼백 년간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바로 깨달음입니다.  

 

므드셀라의 이름의 의미는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 하나님과 매 순간마다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물로 심판하는 계획을 말씀 합니다 .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에 단순한 믿음을 보여 줍니다. 노아가 보여준 믿음을 보십시오. 

노아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에도 여호와 앞을 떠난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불순종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세상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을 보라. 창 6:5 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에 가득함으로.. 꽉차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반대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뿐입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는 어떤 곳입니까? 

자신이 에노스 임을 알고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의 길 위에서 걸어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호와 앞을 떠나 죄악이 내 마음에 가득찬 상태 속에서 불의 불신 원망 속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코로나팬더믹이 계기가 되어 삶의 리듬과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일들을 지금까지 잘 견뎌 왔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성도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에노스의 탄생을 보면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봅니다.

에노스를 통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는 우리들에게 다가오시는 소망이요 빛입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속에서 부닥치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계보에서 두 가지 길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에서 가인으로 이어지는 삶의 흐름 입니다. 가인은 미움과 시기로 살인한 이후에 성을 쌓고 거짓, 방황, 폭력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반면에 아담에서 셋으로 이어지는 삶은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는 계기가 되어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삶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면서 어떤 일들이 계기가 되어 처신하고 판단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억울한 상황, 자기 입장에서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결정 할 수없는 상황에서는 길이 없고, 답이 없고, 막막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안에서 길을 내시고, 답을 준비해 주십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선택하는 겁니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는 겁니다. 

그럴때마다 가인의 길을 선택 하느냐 아니면 셋의 길을 선택 하느냐 에 따라 내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라는 큰 일을 앞에 두시고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고백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오심은.. 죄인의 길에서 살던 우리에게 “다시” 라는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다양한 계기들이 끊임없이 예수 방향으로의 선택과 결단이 있기를 기대 합니다.  지금은 몰라요. 안개낀 것처럼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의 밧줄을 잡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끌고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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