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27-31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
제목 : 감정에 휘둘림 없이..십자가 길로
본문 : 마태복음 27:27-31
종종 “이 사람들이 날 갖고 노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기 마음 대로 사람을 취급 합니다. 절제 되지 않는 입을 마구 사용합니다. 생각없이 떠들어 되는 말들이 당사자들에겐 기분을 언짢게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남들이 어떤 심정인지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군병들이 예수님을 향해 자기 멋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담담합니다. 옷을 벗기고 침을 뱉고 채찍질을 합니다. 갈대로 머리를 칩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은 다 합니다. 그런데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주변에서 바라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 지시고 가시는 주님을 옆에서 보면서 뭘 느끼는가? 뭘 깨닫게 되나요?
왕이신 그리스도가 가장 비참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는 걸 보면서 우리는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군병들이 주님을 향해 채찍질 합니다. 군병들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자기를 창조하신 이를 향해 채찍과 험한 말로 마구 지껄이는 모습을 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굴욕적인 십자가를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 집니다.
주님은 마지막 운명하실때까지 십자가 지심을 순종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마지막 종착역은 분명 합니다.
우리가 지고가는 십자가의 끝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입니다 .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사실 주님을 따라 가기 보다는 헤멜 때가 더 많습니다. 자기 감정과 기분에 따라 살아 갑니다. 진정한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은 ‘나의 길’을 떠나 ‘예수의 길’에 들어서는 겁니다.
첫째,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은 온통 수치와 조롱의 길입니다
29,31절에 보면 희롱을 시작하여 희롱을 다한 후에.. 희롱을 자기들 기분에 따라 하고 안하고 합니다.
희롱을 한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처사 입니다. 어떤 것을 조롱하는 걸까요? 예수의 유대인의 왕 되심을 조롱하는 겁니다. 구원자 라는 것을 무시하는 겁니다.
수치와 굴욕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라.
여기 옷을 벗겼다고 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 시대의 유대인은 공개적으로 벌거 벗은 것보다 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생각 할 수 없습니다. 그 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공개적으로 수치스럽게 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겁니다. 사실 악랄한 생각을 하는 자들입니다.
자주색 옷을 입혔다는 것은 왕족의 상징으로 채찍질을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일개 군병이 왕족을 어찌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그럼 군병이 자주색 옷을 입고 있는 자를 향해 침 뱉고 채찍질 하는 것은 엄청난 조롱입니다. 무시 입니다 .
마태는 “그분께 침을 뱉으며”(마 27:30)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그들은 가야바의 집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마 26:67). 이것은 가장 깊은 경멸과 모욕의 표시 입니다. 우리도 누군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다. 그것만큼 분노케 하는 일도 없습니다.
가시관을 씌우고 하는 일들은 모욕뿐만 아니라 잔인함까지 보여 줍니다.
십자가 지심에 앞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보면.. 잔인함과 무례한 조롱섞인 행동과 말들속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참고 견뎌내십니다.
사 53:4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질병과 고통]를 지고 우리의 슬픔[간고, 고난]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신 것은 아버지께 대한 순종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자기 목숨조차 드린 이유는 분명 합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십자가의 길에서 이뤄지는 고통 속에서 이 잔을 나에게서 치워 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거기가 기도의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 잔을 내게서 치워 주옵소서 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조롱과 핍박 앞에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런데 곧이어 이어지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보라.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러나 내 뜻 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참고 견뎌내신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은 양같이 그릇 행하여 살던 자를 위해서 잠잠한 양이 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이 사는 자가 아니라, 참된 목자처럼 양이 되어 사는 것이 중요 합니다.
마지막, 예수님처럼 어떤 굴욕과 조롱 속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굳건히 나의 십자가 지고 죽는 날까지 순종하며 살겠다는 도전..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욕과 굴욕을 당하셨습니다. 끝까지 참고 견뎌내신 십자가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진 고난속에서도 조롱 섞인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견뎌냅니다. 이유는 분명 합니다 타인을 살려내시기 위함 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 보면 조롱과 비방섞인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너나 잘 믿어라. 예수만 종교나.. 다른 종교의 가르침은 다 쓰레기냐.. 조롱 섞인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끌려 가시는 예수님을 보라.
31절에 하반절에..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질질 끌려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승리 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입니다. 타인에 의해 채찍질에 맞습니다. 그런데 패배가 아니라 승리 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질질 끌려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온갖 손해는 다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싫은 소리 듣습니다. 언짢게 하는 말을 듣습니다.
남들은 싫은 소리 잘 하는 데 본인은 정작 타인에게 싫은 소리 도 못합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때론 타인들이 던지는 무수한 말로 채찍을 당하기도 합니다 .
그런데 누가 승리하나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을 향해 채찍질 했던 사람이 승리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두들겨 맞고 조롱을 받지만 십자가를 진 사람이 종국에는 승리합니다.
어느 저자가 쓴 출근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공하는 삶을 좇기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출근한 직장, 출근한 일터 속에서 부닥치는 일들.. 조롱, 굴욕.. 감정을 뒤 흔들어 놓는 일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쪽을 선택하는 겁니다 . 십자가를 진 자를 향해 채찍질 하는 위치에 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반응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자기 감정을 조절해 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조롱섞인 말도 들었습니다. 수도 없이 외치되는 조롱의 합창소리에도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간을 뚫고 지나 가셨습니다 .
살면서 조롱 섞인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쁜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역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즉흥적이고 무턱대고 반응하는 자가 아니라,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주여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 이런 태도가 중요할까요?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3:24-26 말씀에는 분명한 대조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으로 인해서 우리는 신분이 달라진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
옛날의 나 가 아닙니다. 옛날에 옹졸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나 가 아닙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옛날의 나로 생각하는 수준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감정을 앞세운 십자가 지고 가는 삶이 아닙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어떤 조롱섞인 말에도 휘둘림 당하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가나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다시 광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시 가나안에서 광야로 되돌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면 우리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전 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받는 자들에게 영적 그늘이 되어 줄 겁니다. 십자가는 불안과 염려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영적 순간이 될 것입니다 .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속도로 볼 때에 굉장히 느립니다.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쉽게 지치지 않는 삶이 중요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해결되고 싶어 하고 빨리 뭔가 얻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느려 보입니다. 그런데 승리합니다.
조롱 섞인 말을 들을 때 결코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화평은 그 고통을 받아 들일때 옵니다. 자신을 향해 조롱과 굴욕을 주는 말과 행위속에서도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굳은 의지가 필요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마귀는 틈을 노립니다. 인간적 감정이 툭툭 튀어 나오게 할 것입니다. 그럴때마다 더욱 성령을 의지하는 겁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
그럴때마다 보람과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며 사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참고 견뎌내는 황홀감을 이제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에게는 절대 패배란 없습니다.
십자가라는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부활의 가나안을 맛볼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분명 수치와 조롱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정이 아닌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감정으로 끝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갑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진정한 십자가 길로 걸어가시면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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