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장 12-18절, 마태복음 19장 16-22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제목 : 우리 안에 우물 하나 파요
본문 : 삼상 1:12-18, 마 19:16-22
사람은 누구나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은 축복을 받았지만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바로 부자 청년과 한나 입니다.
두 사람은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민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영생에 대해서 고민이 있습니다.또 한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고민 입니다.
고민은 해결이 될때까지 삶을 힘들게 합니다. 애간장을 태웁니다. 불면을 갖고 옵니다. 불안감에 휘둘려 삽니다. 사람들은 종종 하루라도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합니다.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삽니다.
부자청년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설명합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주님께 질문 합니다. 우선 이 사람은 선한 일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있습니다. 부자청년의 의도적인 질문은 은근히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기를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을 보면서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 자랑은 주님 앞에서도 끊이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랑하러 주님께 왔던 부자 청년은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이고 심히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또 한사람은 한나 입니다. 한나는 갑절의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닫고 계셨습니다.
한나의 입장에서는 멸시와 조롱 섞인 말을 참아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습니다. 그녀는 돌아와 전과는 다른 삶을 추구 합니다. 잘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내면의 상태를 보여 줍니다. 흔히 지금 내 심정이 이렇다 라고 얼굴에 다 쓰여져 있다는 말도 합니다.
두 사람의 각기 다른 반응을 보면서 왜 이런 반응들이 나올까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각기 다른 반응의 밑 바탕은 하나님을 향한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 입니다
마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이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
두 구절 속에서 영적 방향을 제공해 줍니다. 이 두 사람에 주어진 말씀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말씀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길이 있습니다.말씀은 능력이기도 합니다. 말씀은 나침반 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면 삶의 변화를 반드시 경험 합니다.
부자 청년은 실질적으로 영생을 갈망하면서 질문한 게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모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교만함속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고 말씀을 하시니까.. 청년이 어느 계명이니까.. 예수님께서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청년은 답변을 합니다. 마 19:20에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내가 이 모든 것을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못마땅하다는 듯이 주님께 신경질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겸손하고 자신을 낮출줄 아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계명을 지켰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태도 속에서는 의구심만 자아낼 뿐입니다.
예수님은 차분하게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 합니다. 마 19:21 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다른 복음서에는 주님은 강도 만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청년에게 질문을 합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 ?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라고 답변합니다.주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청년은 처음에 질문하러 왔을때는 상당히 당당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쳐 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교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22절에 보니까 “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감이라”예수님은 그 젊은이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부자 청년은 근심할까요? 자기의 소유를 나눠줄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죄가 몸 전체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것을 버리고 주님의 가치를 실천할 때에 가능합니다.
자기가 움켜 잡고 있는 것을 내려 놓지 못합니다. 영생을 위한 최선의 길이 뭔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실천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을 힘들게 할 뿐 입니다.
반면에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사장 엘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듣습니다. 삼상 1;17에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하락하기는 원하노라 하니” 엘리의 말 한마디에 인생 방향이 바꿔 집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원래 한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삼상 1:7에 보면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 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여기 울고 먹지 아니하니.. 허구헌날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격분한 상태 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니까 빼빼 말라 있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에 한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확연하게 차이를 낼까요!
부자 청년은 스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습니다. 여전히 자기 안에 세워 놓은 기준과 가치가 주님의 말씀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청년의 이후의 삶은 내면속에서 갈등을 느끼지만 결코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 채 살아갈 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마귀에게 질질 끌려 다닐 뿐입니다.
왜 부자 청년은 믿음을 따라 살기가 힘들까요?
자기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회개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자기 것에 집착할 뿐입니다. 나의 생각을 내려 놓고 실천해야 하는 데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벌어진다는 것은 그 만큼 죄악 속에서 산다는 의미 입니다. 자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 자아를 드러내려고 하는 부자청년의 의도가 말씀 앞에서 부숴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나는 어떤 변화를 보여 주고 있나요?
믿음이 생기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의심 보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는 내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합니다.
한나는 기도하고 난 후에 얼굴에 수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나에게 지금 달라진 것은 하나도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씀을 듣고 내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못 이루실 것이 없음을 확신 합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이런 확신이 없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요?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난 한나는 분명하게 처신 합니다. 스스로 질문을 바꿉니다. 그래 나에게도 이런 일이 분명히 일어날 수 있지 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내려 놓음이 즐거울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 됩니다.
가장 많은 걸림돌이 바로 내 생각입니다.
가장 많은 방해군이 바로 의심입니다. 내 것을 팔아 나눠주면 나는 거지 되는 것 아냐 하는 의식입니다.
두 사람을 보면서 감춰진 의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부정적인 반응과 긍정적인 반응이 확연하게 달라짐을 봅니다. 순수한 의도는 강한 확신을 갖고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믿음은 자신의 삶의 모습을 바꿔 놓습니다.
믿음 없는 자의 얼굴은 근심 덩어리로 삽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환경에 억눌려 살기 보다는 말씀으로 환경을 극복하며 삽니다.
듣기 싫어 하는 사람과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
부자 청년은 속으로 듣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심한 갈등을 겪습니다. 심한 근심을 하였다는 말은 그 만큼 복잡한 갈등 속에서 여전히 자아가 자기를 이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심하다는 것은 그 만큼 예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부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 자기를 굽힐줄 모르는 생각은 십자가의 길을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한나는 들었습니다.믿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한나에게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진리는 걱정이 답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100% 신뢰하는 것 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얼굴 표정으로 가름해 줍니다.
한나는 수색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분명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기도했다고 환경이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나가 보여준 태도는 분명 합니다. 확신과 신뢰 입니다 .
들음은 내면을 청소해 줍니다. 우리 안에 버려야 할 쓰레기들을 버리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 합니다.
우리는 받은 것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삽니다. 주님은 늘 말씀 하십니다. 듣고 순종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자기 고집 속에서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살아 가느냐 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께 점점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 합니다. 자기 욕심과 탐욕입니다.
성경에서 근심이라는 단어는 분리되다 라는 의미 입니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사이에서 내 생각을 잊지 못하는 꼴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라면 그런 인생은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얼마나 죄악도 인생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둘째, 근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게 하지만 근심을 버린 사람은 하나님의 기다림 속에서 살아 갑니다 .
부자 청년은 근심한채 되돌아 갔습니다. 근심은 내면적으로 많은 갈등을 가져다 줍니다. 부자 청년은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 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가난한 자에게 나눌 때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한나의 삶은 행복하기만 합니다. 지금 당장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면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삶이 활기찹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한나가 보여준 수색이 없는 상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결정을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입니다. 결과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습니다. 얼굴에 수색이 없었던 기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한나는 그 이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성경은 말합니다. 삼상 1:19에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 이전에는 경배하러 갈 때마다 적수이던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심장을 뛰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신뢰 입니다. 이젠 내가 아이를 낳고 못 낳고 에 대한 결정권이 없습니다. 이젠 하나님께 다 드렸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면 감사히 받는다.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는 지혜로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늘 말씀 하십니다. 지금 자신의 얼굴에 수색이 가득한 채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 보다는 사람들의 쑥덕 거림이나 열등감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문을 막으시고 때를 기다리게 하실 수 도 있습니다.
질문을 바꿔 보십시오. 왜 하필 나 입니까?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시간을 주십니까? 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의도적으로 막은 문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기다림은 즐거울 것입니다 .
시편 기자의 말씀처럼 너의 짐을 맡기라 .. 그가 이루시고.. 우리는 얼마든지 여호와 앞에서 잠잠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말입니다.
마지막, 고통은 내 몸에 있는 어떤 것이 문제가 있다거나 반드시 점검해야 해야 하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내 삶에 고통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고통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 안에 어떤 부분이 썩고 있는지, 병들고 있는지 몰라요. 고통을 느끼면서 낌새를 차립니다. 그리고 대처방안을 갖게 합니다
부자 청년에게 있어서 고통은 나의 영생의 길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많은 소유로 자기 입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자비의 삶을 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삶의 환경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자청년에게 있어서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무시해 버립니다. 부자청년은 가서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을 거부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나의 삶의 부족한 부분을 회복케 합니다. 나의 모자란 부분을 바꾸게 합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내가 얼마나 육적인 삶에 치중해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병든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영적 진단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한나 입장에서 고통은 육적인 생각에 치중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한나가 보여주는 해결점은 영에 대한 집중입니다. 영은 흔히 그리움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엘리가 너의 기도를 허락한지라.. 그리움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 즉, 내 힘으로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입니다.
이전에는 쉽게 격분하고 분노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격분 보다는 차분함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변화 됩니다. 기도 할때도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안함 속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 줍니다.
들음.. 굉장히 소중한 시간입니다.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서 나를 보는 겁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내 속에 더러운 것들이 꼭꼭 숨어 있지는 않는지.. 보고 버리는 겁니다.
들음이 게을러질 때에 내 속에는 더러운 쓰러기들이 축적 될 뿐 입니다. 들음으로 내 삶은 더욱더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들음으로 놓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
쉴새없이 툭툭 튀어 나오는 고민거리들이 숨이 콱콲 막히게 합니다. 빠른 해결이 필요하지만 때론 믿음이 없어 흐느적 거리며 질질 끌려 다닐때가 많습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짐을 진채 영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 합니다.
이런 고민들이 신앙을 좀먹게 합니다. 우리를 근심과 염려로 몰아 갑니다. 기도밖에 길이 없음을 알면서도 막상 눈에 보이는 긴급한 고민거리들이 차분하게 기도하려는 마음을 뭉개 버립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이 혹시 부자청년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주님의 영적 지시에 혹시 심히 근심하여 주님께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은지요!
부자청년이 바울처럼 산다면..
바울은 자기 의와 자기 자랑에 온통 파묻혀 살았던 인물 입니다.
그런 바울이 주님을 만난 이후에 이렇게 변했습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의 뒷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한나처럼 하나님이 문을 닫아 놓으셨는데 자기 스스로 뭔가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는 않았는지요?
이 시대의 한나든 부자 청년이든 하나님은 여전히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신앙의 상태를 부자 청년 마인드에서 한나의 마인드로 전환하라.
시편 기자는 34:4에 내가 여호와께 구하며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라고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근심할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을 근심의 올가미에 가두지 말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부자청년의 생각을 갖고 살고 있나요..온통 근심 속에서 살뿐 입니다.
한나의 영적 태도가 나의 습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고, 의심만 가득차 있나요..
오늘 이렇게 기도합시다. 날 씻으소서 나의 악한 생각을 그리스도의 깨끗한 피로 씻겨 주옵소서 .
하나님이여. 나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 나의 욕심많은 나의 영혼을 만져 주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이 한 낮에 우물가에 와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 하십니다. 요 4:13-14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물을 마시는 자는 생명력이 넘쳐 납니다. 분별력이 넘쳐 납니다.
주님께서 청년에게 너도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엘리가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내 안에 우물이 없어 심히 근심하며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 내 안에 우물을 하나 팝시다.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는 샘을 통해서 내면을 풍성케 합시다. 내 안에 우물을 파서 주님이 주시는 명령으로 세상 속에서 삽시다. 우리 안에 파 놓은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샘은 복음 안경을 쓰고 보게 할 것입니다. 여전히 심히 근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수색이 없이 살 것인가 지금 결단이 필요 한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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