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장 1-12절 말씀 묵상 [김동권 목사]제목 : 새로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본문 : 출 3:1-12
우리가 사람의 이름을 부를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누구야..왜 불러. 그냥. 그냥 이라는 답변은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부탁 하기 위해서, 잘잘못을 지적 하기 위해서, 야단 치기 위해서, 위로 하기 위해서, 격려 하기 위해서,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부르지만 답변이 싱겁기는, 왜 그러는 데, 그만좀 불러, 바쁜데 왜 자꾸 부르고 난리야, 들어도 못들은체 자기 일에 분주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응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기분과 감정에 따라 반응의 속도나 응답이 지체 되거나 무 반응일 때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두 번의 이름이 반복되는 것은 그 만큼 다급 하다는 증거 이기도 합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도록 모세를 선택했을까?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성경에서 모세의 특성을 찾아 본다면 모세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왕궁에 있을 때에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숨깁니다. 그 다음 날에는 같은 히브리 사람들끼리 싸우고 있는 중에 모세는 범죄자에게 “어찌하여 네 동료를 치느냐” 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한 유대인을 다른 유대인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임이 드러납니다.모세가 주름잡은 이유중의 하나로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왜 하필이면 모세를 사용하실까?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본다면..
모세는 살인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용서하시고 다시 애굽으로 보냅니다. 모세 스스로는 자신의 과오가 탄로날까봐 하나님의 부르심을 꺼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과오를 용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맡기도록 부르시는 겁니다.
어느날 세미하게 들려오는 이름…
첫째, 허허 벌판인 광야에서 세미하게 들려지는 자기 이름, 모세
출 3;1, 4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요한 광야에서 들려지는 자기 이름.. 모세야 모세야..
광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장인 이드로와 아내 십보라의 목소리외에는 광야의 사나운 짐승들의 소리, 바람소리.. 그런데 어느날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이 들려 옵니다.
모세는 누구입니까?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 들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을 찾아 본다면 모세 입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쓰임받은 최초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사람을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언자라 함은 개인에게 길흉화복을 미리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된 예언자의 예 자는 한문으로 맡길 예 자를 씀니다. 언은 말씀을 의미 합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참된 예언자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공동체에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파란 만장한 삶을 40년 주기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왕궁 생활을 합니다. 편안함 속에서 삽니다. 살인으로 인해서 40년간의 미디안 광야에서 불편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40년간의 출애굽 하면서 광야 생활을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던 시기는 바로 미디안 광야였습니다. 광야의 40년 세월은 양떼들을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양 떼를 돌보는 모세지만 옛 생활을 그리워 하면서 얼렁뚱땅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복된 삶에 충실히 임하던 날에 어디선가 자기 이름이 들려 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즉각적으로 답변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계시의 말씀을 듣습니다. 동시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내가 애굽에서 못된 감독자들로 하여금 부르짖는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큰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출 3:8에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족속, 여부를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주 구체적인 지시를 내립니다
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야 야 새로운 일이 뭔지 알려 주십니다
모세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긴 했지만.. 애굽에 가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다섯 번에 걸쳐서 자꾸 변명을 하고 뺍니다.
첫번째 변명이 나는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나 같이 광야에서 양이나 치는 사람이 어찌 그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1절에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12절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
두번째 변명은 나는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당신은 누구세요..
출 3;13절에 ..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리요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러면서 좀더 자상하게 스스로 있는 자는 누구인고 하니.. 덧붙여서 말씀 합니다.
15절에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름을 통해서 기억나게 하시는 겁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임을 알게 하라고 덧붙여 설명해 해 주십니다.
세번째 변명은 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고 의심할 것입니다
출 4;1에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네게 능력을 주리라 고 하십니다.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두 가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지팡이를 뱀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과 손을 문둥병으로 만들고 다시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네번째 변명은 나는 재능이 부족합니다. 나는 형편없는 말이 어눌한 연설자입니다.
출 4;10에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말하기가 더디고 혀가 더딥니다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너를 돕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나요.. 출 4:10-12에 보면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저 가기만 하라 . 너는 잔말 말고 내가 너에게 할 말을 알려 줄꺼다. 그저 너는 나만 믿고 가면 돼…” 라고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변명이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어요
출 4;13에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의 마지막 변명은 굉장히 필사적입니다. “제발 나 말고 누구라도 보내소서 “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너를 쓰겠다 고 하십니다.
출 4;15에 ..내가 네 입과 그의 입과 함께 있어 두 사람에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은 노하시면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출 4:16에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모세는 다섯번이나 빼거나 도망치려고 애씀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크게 호통을 칩니다.
우리가 모세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뭔가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셨다면 변명을 그만 두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셨다면 결코 포기는 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안다면 변명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맡겨 준 일에 순종이 최고 입니다 .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출 3;16-17에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가서 전하라는 메세지와
출 3;18은 바로에게 가서 나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
여기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약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더 적합 할 것입니다.
둘째, 모세가 하나님께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
출 4:18절에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모세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새로운 일에 집중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할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우선 주변에 돕는 사람들이 넘쳐 납니다 .
장인 이드로의 즉각적인 협조를 봅니다. 출 4”18에 ..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또 누가 돕나요?모세의 형 이론입니다.
출 4:27에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모세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내가 누군가 시키니까 억지로 한다는 생각이 들면 집중력은 없습니다.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이득과 손해만 따질 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집중하기 시작할 때에 모세는 분명 다른 행동을 합니다. 결국 해내도록 합니다.
사명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는 모세를 보라
모세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와 공동체에 전달 합니다 . 그런데 특이한 현상을 보여 줍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인간의 자세 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왜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을까요?
왜 하나님은 말씀을 증거 하시지만 못 알아들을까요?몇 가지 이유가 성경에서 알려 줍니다.
하나, 인간의 완악함 입니다.
출 7:13에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완악함이라함은 굳어진 마음 입니다. 자기 생각속에 꽉 차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면 하나님이 어디 있어.. 무슨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그런 하나님이라면 증명해봐.. 하나님을 믿느니 석가모니를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완악함의 근본은 교만에 있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 입니다.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였다고 출애굽기에 8번이나 등장합니다.
둘,인간의 소망없는 상태입니다.
출 6:9에 상함 노역으로 인한 소망을 상실한 상태 입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더 이상 소망을 두지 않고 삽니다. 전혀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소생 할 가능성을 조금도 믿지 못하고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거대한 애굽이라는 나라 앞에 속수 무책이라 생각합니다
애굽의 손은 부강한 나라의 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강한 나라의 손에 붙잡혀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구출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애굽의 손 보다 크신 분입니다.
행 11:21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주의 손이 당시 세계 최강 국가의 손을 뒤집어 엎습니다.
마지막, 팬더믹이라는 시대에서 새로운 일을 위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
11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질문 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런 엄청난 일을 자신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생각합니다.
모세 스스로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2절에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학대 받고 고통 받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이 바로 애굽 입니다 .
하나님은 먼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다시 새롭게 해야 할 구역을 하나님이 줄로 재어 주셨습니다. 팬더믹으로 인해 신음하며 울부짖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그들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에 모세의 변명이 우리의 변명이 되곤 합니다.
하나님은 팬더믹 시대에 먼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줄로 재어 준 구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역으로 이동하는 결단력 있는 신앙이 필요 합니다 .
하나님의 부름은 가야할 곳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팬더믹 이후에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
애굽을 도망쳐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다시 부르시어 줄로 재어 준 구역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각자가 주님을 위한 모자이크가 되어야 합니다 .
새로운 일을 위한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매사에 사는 것이 아주 중요 합니다.
하나, 이름을 모른 채 사역을 맡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께서 주시는 최고의 역할임을 확신하는 겁니다.
둘, 부담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고귀한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어 일을 맡기실 때보면 굉장히 부담감을 갖습니다. 때론 갈등도 느끼곤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셋, 부름을 받은 자들이 주변을 영적으로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도록 이웃에게 가라
믿음의 거인들이 부름을 받고 보여준 삶은 이웃을 살리는 삶이었습니다. 세상은 묘사가 아니라 경험되어야 합니다.
셋, 지속성과 연속성 이 요구 됩니다.
부르심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속성이 필요 합니다. 지속성은 감정이 앞서면 지속성은 물 건너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지속성은 믿음입니다. 주님의 일을 함에서 있어서 지속성의 비결은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겁니다.
사울왕이 처음에는 다윗을 보고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나요?
삼상 16장에 보면 사울이 다윗을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라고 지칭 합니다. 느헤미야에 보면 느헤미야가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역할을 감당했다고 언급 합니다. 왕 이 신하에게 무기와 음식을 관리하게 했다는 것은 최고의 신뢰를 하고 있다는 증거 입니다. 사실 무기와 음식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건 엄청난 믿음입니다.
믿음이 깨지고 시기나 질투 같은 사악한 감정이 자신을 지배할 때에 구역은 불행의 장소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어 사용하신다는 확신은 내가 마음대로 하고 안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기분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완전히 붙잡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때나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행 11:21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초대 교회에 성령의 능력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동일하시며 그의 능력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변함없으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
10절에 그런즉 이제 오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리니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오라.. 역할은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미션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팬더믹 시대에 새로운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함 없이 즐거움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결코 변명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가 보여 주어야 할 태도는 오직 하나 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줄로 재어 준 구역, 21세기의 애굽과 같은 곳…고통, 아픔, 신음 하는 곳 입니다.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십자가를 지고 섬기는 곳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에 중요한 동사는 “지다 “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일에 십자가를 지고 살아 가는 제자가 되시길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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