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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해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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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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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은 교회 역사 속에서 여러 논쟁을 낳은 책이다. 성경 속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일괄된 해석이 존재하지 않고, 해석자들에 따라 자기 주관적인 해석을 내놓기 마련이다. 이 책은 종말에 관한 내용을 취급할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현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증거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 전체 주석을 썼던 칼빈도 이 요한 계시록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
교회 역사 속에서 이 종말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통일된 것이 없다. 그래서 Richard Bauckam은 종말론은 가리켜 "imaginative picturing of the unimaginable"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여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In A Response to Jurgen Moltmann, "Eschatology in Bible & Theology).
요즘 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을 설명하면서 요한 계시록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요한 계시록은 저작 당시부터 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교회 역사 속에 있을 중요한 사건, 원리들을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묵시 문학에 속하기 때문에 그 표현 방법이 몹시 은유적이다. 즉,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숫자, 동물 등을 표현해서 은유적으롷 표현하기 때문에 그 참 뜻을 아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숫자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 당시는 교회가 핍박을 받는 세대였기 때문에 교회나 세상에 관해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교회에 대한 핍박이 가중되기 때문이었다. 묵시 문학은 그 해석이 쉽지 않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역사는 악의 존재로 인해 환난과 핍박이 없을 수 없으나, 끝까지 인내하는 자는 하늘의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귀를 가리켜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표현하심으로 악의 존재와 활돟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통치자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핍박과 환난의 때, 누가 역사를 주관하는가?는 중요한 질문이고, 모든 핍박과 환난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뜻 속에서 허락된 것임을 증거한다: 모든 재난이 하늘에서 쏟아진 것처럼.
인간의 역사는 곧, 교회의 역사이고, 교회의 역사 속에 환난과 핍박이 있는 이유 중에는, 악한 세력의 활동 탓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타락한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한 섭리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도 중요한 교훈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교회는 음란과 배도, 우상 숭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이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환난을 내리심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 속의 환난의 배후에는, 주님의 교회 속의 우상 숭배와, 교리적 이탈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을 섬겨야 할 교회가 물질과 권력을 숭배하는 일을 부인할 수 없다. 축복의 이름으로 물질을 추구하고, 권력자의 편에서 안일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한 현실이다. 십자가와 자기 부인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환영을 받고 있을까?
사실 기독교 복음의 핵심,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 자기 부인과 성령의 능력 안의 삶과 섬김은 모든 신자들에게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신자들은 내심 현실적인 축복과 성공을 추구하고 있고, 소위 교회 지도자들 마음 속에도 물질과 권력의 우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 정말 존경하고 따를 교회 지도자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세대를 살고 있다.
요한 계시록 속의 환난과 핍박은 먼저 교회를 정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역사 속에 교회가 가장 교회다운 모습을 한 때는 바로 핍박 속의 교회였다. 로마 황제 밑에 핍박을 받던 교회는 역사 속의 참 교회의 표상이었고, 오늘날 그 교회는 북한에 있는 지하 교회가 아닌가 싶다. 한국이나 이민 교회를 모범적인 교회로 말할 수 있을까? 무언가 석연찮다.
요한 계시록을 해석함에 주의해야 할 것은, 계시록 속의 사건이나 인물을 당대의 사건이나 인물과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그런 해석은 교회 역사 초기부터 있어 왔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시록이 기록된 초기 666이라는 존재는 로마 황제라고 해석했다가, 종교 개혁 시대에는 로마 교황이라고 해석하고, 20세기 들어와서는 히틀러, 스탈린이라고 해석하고, 또는 세계 정부라고 해석을 한다.
시대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옳은 해석일까? 올바른 해석은, 계시록 속의 사건이나 인물을 당대의 사건, 인물과 동일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각 시대 속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들이라는 해석이 타당할 것이다. 교회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외부적인 세력들보다 교회 안의 우상 숭배나 잘못된 교리가 아닌가를 돌아 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이 교회 밖의 세력들인가, 아니면, 교회 안의 우상 숭배, 성결을 저버린 세속 주의인가?
종말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쟁은 이스라앨의 회복에 관한 논쟁이 아닌가, 싶다. 이는 천년 왕국에 관한 주장과 함께 첨예한 논쟁이 되고 있다. 내가 믿는 것은 언젠가 예기치 않은 때에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새로운 나라로 볼러 들인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일회성으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는 주님 자신과 사도 바울이 가르친 교훈이다.
계시록은 교리에 관한 책이 아니다. 교회의 시작과 전개, 종말에 관한 예언의 책이다. 그 중심 메시지는 이 세상의 환난도 악도, 모두 우리 주님이 주관하시고, 주님을 소망하며 따르는 백성들을 주님이 지키시고, 재림의 날에 새 하늘, 새 땅으로 불러 들인다는 것이다. 계시록은 주님의 참 백성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영광에 대한 책이다. 그 내용을 일일히 현실과 연관시키는 것은 엉뚱한 해석이 될 것이다. 전체적인 틀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인내와 성결을 가르치는 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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