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심판
작성자 정보
- 김희건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개인이나 국가는 공의의 질서위에 세워진다 한다. 하나님 나라는 공의 위에 세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나라가 영원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공의가 무너지면, 개인이나 국가나 존재의 근거를 잃어 버리게 된다. 거짓과 불법으로 사는 사람이 자기 뜻을 이루면, 옆에서 보는 사람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시편 73편은 그런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마음 상했던 신자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 악인의 최후와 멸망을 보게 되었다. 세상에서 형통하며 부러움을 샀던 사람이 죽음과 동시에 멸망의 길로 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이 하나님의 백성이 깨달은 사실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 땅에서 형통하며 살았더라도 죽음 후에 영원한 심판과 형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불편한 마음을 씻어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 후의 심판도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지만, 이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악인이 심판받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고, 세상을 다스리는 분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정말 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그 악인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오래 참아 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정죄할 입장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유야무야의 마음으로 살 수 없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와 진실을 온 마음으로 좇아 살기 원한다. 그 사람이 참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런 우리에게 불법과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불법으로 흥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속에서 불이 날 수 있다. 특히 권력자의 오만과 불법은 큰 불을 일으킨다. 그런 현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수용해야 할까?
우리는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분명히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살아 있다. 그는 모든 것을 통촉하시고 갚으신다. 의인은 평강으로, 악인은 심판과 형벌로 갚으신다. 다만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1세기 고난과 핍박 속에서 하늘을 바라 보았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보좌를 보여 주셨고, 역사를 주관하시는(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어린 양 예수를 계시해 주셨다.
우리 신자들은 이 악한 시대에 하늘을 주목하고 거기 있는 보좌와 어린 양 예수를 바라 보아야 한다. 이 시간, 하나님이 주목하고 계시고, 통치하심을 믿고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오늘날처럼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때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만왕의 왕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고, 때가 되면 그 행위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의 장이라고 한다(Pannenberg). 인내와 믿음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의 사람된 표를 나나내야 한다고 본다. 때가 되면 알게 되는 일이 남아 있다. 공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