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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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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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학기 강의 제목이 기독론이다. 그래서 기독론과 관련된 책을 사 보는데 ,Daniel Akin 교수가 쓴 Christology: The Study of Christ 이다. 저자는 North Carolina 소재 남침례교 신학대학의 President이시다. 옛날 서울의 신대원 때 들었던 조직 신학 강의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무료하고 흥미가 없어, 창가에 앉아 창밖의 아차산만 바라 보며 시간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그 강사는 신학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강의 속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신학이 살아 있는 학문으로 증거되기 위해서는 신학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와 찬양의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신학을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증거한다는 것 자체가 신학의 의미를 잃어 버린 것이라 생각된다. 신학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그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 찬양, 경배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도 억지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창세기의 첫 장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의 이야기이다. 단순히 창조의 이야기를 서슐한 것이 아니다. 신약의 복음서와 서신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아니다, 한 문장, 한문장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능력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마음이 들어 있는 기록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마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무엇을 위함일까?
Akin의 기독론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 분은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현대 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감격으로 읽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분의 글 속에는 그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단순히 이론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할 수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아무 감격없이 증거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기 집 강아지를 얘기할 때도 신이 나서 얘기하지 않는가?
신대원 시절 창가에 무료하게 앉아 있었던 사람이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나는 오를 수 없는 태산앞에 서 있는 느낌을 갖는다. 내 지식으로, 경험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수 십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왔지만, 항상 내 앞에서는 신비한 분이시다. 지식으로 경험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이시며 인간인 분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나같은 죄인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이 저주의 십자가에 달린 그 사건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이 가하는 모든 수욕을 조용히 참으시고 기도하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말로 설명하지만,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함이 옳은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빛 안에서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온 마음으로 경배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로 주고 받는 것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우리가 배우는 목적은 지식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그를 마땅히 경배하고 섬김을 위해서임을 아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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