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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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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어가 익숙하다. 자기 이해 관계를 위해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교회도 이해관계 속에 재판을 청구하는 일이 종종 있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이 세상 법정으로 나가기 보다는 차라리 손해를 보라고 충고하였다. 믿는 사람, 하나님의 교회가 이해관계로 세상 법정에 호소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회들이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자기 이익을 위해 고소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목사는 자기 성적 비리가 드러나 목회자들의 추궁을 받으니까,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했다. 목회자들은 세상 법정에 나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그 비리 목사를 덮어 주고 끝냈다.
한국의 교회들도 목회자의 비리를 인해 법정 싸움이 종종 있는 것 같다. 학력 비리, 교회 돈을 함부로 쓰는 문제, 교회 소유권을 위해 싸우고 싸워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목회자 얘기도 들었다. 무슨 6. 25 전쟁을 치루는가? 누구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일까?
그렇게 얻은 그 자리가 그렇게 영광스러울까? 믿는 사람들의 마땅한 소행일까?
앞서 언급한 그 비리 목사는 툭하면 고소한다고 위협한다. 이래도 되는가? 믿는 사람들의 자존심은 어디 두고 세상 법정에 나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일까? 불신앙의 사람들 속에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법정 싸움을 싸우면서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땅을 두고 서로 다툴 때, 그곳에 거하는 이방인을이 보고 있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간 아브라함은 롯에게 기회를 주고 멀리 떠나갔다. 그 장면을 하늘에서 지켜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밟는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사람이 투쟁을 해서 얻은 땅보다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땅은 더 넓고 떳떳하다.
모든 다툼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탐심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자유하고 떳떳하고,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 살라고 하신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신다.
결국 삶의 방식의 문제이고, 무엇을 좇아 사는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살기 원한다. 쉽게 말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기 원한다. 이런 삶은 갑자기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그 뜻을 좇아사는 삶의 열매로 이루어 진다. 그렇게 사는 사람의 마음은 자유하고 평안하다. 탐심이 사람을 사납게 만들고 추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종의 이름을 가지고 거짓과 탐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을 어둡게 한다. 그런 사람들 마음에 평안이 있을까? 거짓말을 쉽게 하고, 만사를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을 나도 알고 있다. 밉기 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운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다투고 법정으로 나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여, 탐심에서 건져 주시고, 오직 주님의 뜻을 좇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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