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수치심

작성자 정보

  • 김희건 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사람이 수치를 느낀다는 것은 아직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조상이 범죄 후에, 수치심을 느껴 자기 몸을 가릴 옷을 해 입었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수치심으로 인해 감히 나타나지 못하고 숨었다 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범죄하였지만, 아직 양심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아담이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내게 주신 저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대답했다. 자기 책임을 인식하고 고백하지 못하고, 자기 아내를 탓하는 그에게 타락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선악과를 먹었을 때는 자기 아내의 운명에 동참하려는 비장한 결심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선악과를 먹고 나서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양심은 타락 후에, 어둠과 빛을 구별할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양심이라는 것도 타락의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의 길로 쉽게 들어서는 것 같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선택의 기로에서 의와 진실을 좇기보다는 자기 이익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인간의 양심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인간의 철저한 타락을 주장하는 루터나 칼빈의 가르침을 좇는다. 인간의 의지는 죄에 종속되었다는 가르침이다.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고 그 인도하심을 받을 때는 양심을 따라 행하지만, 그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빛대신 어둠을 좇아가는 것을 믿는다. 양심도 성령의 도움 속에서 의와 진실을 따라가는 것이지, 스스로 빛을 좇아갈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믿는 사람들도, 자기 이익 앞에서 쉽게 의의 길을 저버리는 것을 보얐기 때문이다.
이민 교회는 치리가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교회에서 물의를 일으켜도 다른 교회에서 환영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억하기로 일곱 번 교회를 옮겨 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 교회에 오래 있지 못하는 패턴을 갖는다.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자기 실상이 드러나고, 그곳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어둠의 행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교회로 가면 환영을 받을 것이다. 물론 잠시겠지만...
오늘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한 남자가 과거 부인이 다니던 교회에, 새 장가를 들고 그 교회에 등록해서 다닌다고 한다. 과거 부인은 어떤 연유로 이혼을 했는지, 자초지종을 교회 안에서 얘기를 했고, 웬만한 교인들을 알고 있을 터인데, 그 교회에 새 장가간 남성께서 등록해서 다닌다는 것, 이해가 될까? 물론 그 과거 부인은 다른 교회에 다니나까 가능했을 것이다. 무슨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교회 목사님은 그런 분을 환영하고 등록을 받아드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내막 속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교회를 찾아가 등록한 분이나, 그런 사람을 받아 드리는 목사님이나, 오십보, 백보일 것 같다. 상식 안에서 생각할 수 없을까? 전 부인이 어떤 억울한 사연으로 그런 일을 겪었는지 교회는 알터인데 그런 사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개인이나 교회가 수치심을 모르는 것 아닌가, 안타까운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 복음뉴스(BogEumNews.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85 / 1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 복음뉴스(BogEumNews.Com)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