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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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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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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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넓고 아름다운 동산이 있다. 허드슨 강 건너 뉴욕 시가 보이고, 뉴욕으로 이어지는 와싱턴 다리가 눈 앞에 있다. 이곳을 찾아와 여사는 뛰고 나는 걷는다. 맑은 공기 속을 거니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예전 고교 시절 저녁 식사 후에 발만 발만 걸어 서울 근교 높은 공터를 찾아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는 별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의 별을 바라 보면서 사람도 우주 속에 자기 고유의 위치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함께 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의 반영이었을까?
성경에도 동산이 주요 장소로 등장한다. 에덴 동산은 인간 최초의 삶의 터전이었다. 기쁨의 동산에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존재가 되었고, 그후 인간은 평생 자기 중심적 사고의 종노릇하며 죄와 죽음의 존재로 살아야 했다. 사람이 갈등과 불행의 삶을 사는 이유는 바로 그 지긋 지긋한 자기 중심성에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삶의 모범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아들의 신분이나 성부의 뜻을 좇아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 드린 것이다. 구원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삶으로 시작하고 이루어진다. 사람은 평생 이런 삶을 배우지만 미완성으로 떠나간다. 오! 자기 중심성이여!
그 다음은 성부의 뜻을 받들어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신 사랑은 사람이 알수 없는 신비이다. 말로는 하지만 그 사랑과 희생의 깊이는 신비로 남는다. 어렴풋이 그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자녀로 삼아 돌보아 주신다. 또 그 아들 예수의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사람의 변화는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다. 사람이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이리가 양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자 예수는 십자가를 지기 전 마지막 밤시간 늘 찾던 겟세마네 동산을 찾아가 성부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잔을 피할 수 없을까요? 왜 그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었을까? 베드로도 당당히 십자가의 길을 갔다는데...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죽음은 다른 순교자들이 겪지 않은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것이었다. 인간의 좌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처럼 버림받아야 했다.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하나된 관계 속에 사시던 성자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버림받아야 했다. 그 고뇌가 바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였다. 신자들은 죽음의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간다.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은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믿지 않고 거역한 데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희생의 사랑을 거역한 대가이다. 사람들은 이런 심각한 내용을 모르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여전히 자기 중심적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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