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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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돌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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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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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속에 아픈 분이 있어 돌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관절에 이상이 있어 일어서지 못하는 누나를 옆에서 돌본 적이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 간호사로 살다 은퇴하고, 혼자 살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멀리 웨스트 버지이아 사는지라, 5시간을 운전해서 돌보다가 부득이 이웃 파키스탄 아주머니에게 맡기도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사람을 24시간 돌보아야 하고, 먹는 일, 씻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가정 속에 환자, 부모 또는 남편이나 아내를 돌보는 분들의 심정과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아프면, 그 사람만 아픈 것이 아니라, 가정의 누군가 그 짐을 함께 짊어지고, 수고와 희생으로 살게 된다.
나이들어 몸이 불편한 분을 돌보다 보면서 배우는 것이 있다. 사람이 아프면, 자기 생각을 주로 하고 돌보는 사람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보는 일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 질 수 있다. 이런 일은 몸이 아픈 경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어려운 일에 처하면, 자기 생각에 빠지고 옆에 사람들이 격는 어려움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돌보는 사람의 애환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몹시 생각이 깊은 사람, 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 입원해서 한 주간을 지내면서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밤과 낮으로 환자들이 간호사를 찾을 때, 간호사들은 쉽게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 사람을 밤낮으로 돌보는 사람의 어려움도 이해가 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옛날 고난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읽었던, The Night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차 대전 중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난을 쓴 소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끌려 가서, 눈이 오는 겨울 날 걸어서 이동을 하는 중에, 나이든 아버지가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면, 아들이 돌아가서 아버지는 부축해서 걸어가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잦으면서, 아들은 지쳐 버렸고, 이제 아버지가 "아들아" 불러도 응답하지 않고 홀로 앞으로 걸어갔다는 이야기다. 부모 자식간에도 몸이 힘들면, 돕지 못하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의 딱한 처지를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엘리 비젤이라는 유대인의 경험을 기록한 소설이기도 했다.
교인 중에는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몇년째 집에서 돌보는 분이 있다. 밤낮으로 어머니를 돌보는 그 분의 정성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일어서지 못하는 분을 돌보는 사람의 힘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 마음에 지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무수히 고쳐주신 배경에는 그 병자를 생각해서 고쳐주신 것이지만, 그 병자를 돌보면서 고생하는 가족들을 생각함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가정 속에 누군가 아픈 상태에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도 심리적으로 눌리고, 자칫 우울증에 빠지는 것 아닌가, 싶다.
오래 전 한국에 있었을 때, 온전치 못한 자녀를 둔 부모의 어두운 얼굴이 아직도 기억된다. 서울대를 나온 두 부모 얼굴에 항상 그늘이 졌었다. 그 마음이 언제 펴질 수 있을까? 나도 동생이 소아마비로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옆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이 아프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아프지 않을 때 몸을 잘 돌보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일뿐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틈만 나면 뛰고 운동을 한다. 걸을 수 있는 것이 큰 축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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