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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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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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는 교황과 미국 대통령 사이에 심상찮은 논쟁이 시작되어 장관, 국회 의원들이 가세하여 뜨거운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언론 매체에서도 이 주제를 취급하고 매일 보도함으로 우리들도 보고 듣는 바이다. 이런 논쟁은 일찌기 한국에서도 있었고, 지금도 중요한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교회는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고, 정치는 교회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종교 개혁 시대 이후, 두 개의 다른 전통이 전래되고 있다. 독일 군주의 도움으로 종교 개혁을 성사시켰던 루터는 그 유명한 "두 왕국 사상"을 전파하였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영적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고, 새상 정치를 통해 국가의 외적 질서와 평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에 근거해서 교회는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는 교회에 간섭하지 않는 전통을 갖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히틀러 시대에도 정치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다른 손이라고 믿고 교회는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전통 속에서 본회퍼같은 선지자적인 목사가 나타나서 독일과 유럽을 파탄으로 이끌고 가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한 일이 있다. 미친 버스 운전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그 상황속의 심각한 질문이었다.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른 많은 승객들이 해를 입게 될 때, 그 운전사(정치 지도자)를 방관할 수 있는가? 물었고, 제거가 답이라고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는 20세기 순교자로 칭함을 받는다.
반면 거의 같은 시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펼쳤던 칼빈에 의하면 만일 정치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백성들을 오도하고 잘못 통치하면,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와 교회의 구분없이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권자이기 때문에 펼친 사상이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대체로 교회는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정치와 교회는 별개의 세계라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 성향의 교회가 그런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독재 정부 시대 진보적 신학을 가르쳤던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독재에 항거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들은 후세 민주화의 선구자들로 알려져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의 비리를 인해 그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다. 자기 동생의 부인 헤로디아를 취해 사는 헤롯 왕을 책망한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세례 요한은 투옥되었고,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그렇다고 그의 행적을 잘못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언어 도단이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중 가장 큰 자라라 하셨다.
예수님도 그 당시 왕 헤롯을 "여우"라고 불렀다. 왕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몹시 책망하였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단순히 종교 세계의 지도자일뿐 아니라, 유대 백성들의 삶에도 관여하여, 잘못한 백성들을 책별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삶 속에서 정치와 종교 또는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못하면, 신자, 불신자를 떠나 모든 백성들이 고통을 겪고, 교회가 잘못 지도하면, 교인뿐 아니라 세상 속에서 책망을 받는다. 정치와 종교는 한 나라 백성들에게 모두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쪽을 떠나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교회와 정치가 분리되었다면, 어떻게 정치 지도자가 교회 강단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권력 앞에 몹시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정치 권력에 대해 바른 말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라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교회 지도자들도 책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옛날 카톨릭 김수환 추기경같은 무게있는 지도자를 찾아 볼 수 없다. 권위는 청렴함에서 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물질과 권력을 탐하는 교회 지도자들에는 무슨 권위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처럼 철통 독재 정치를 하는 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라면, 신자, 불신자를 떠나 바른 정치를 위해 기도할뿐 아니라, 잘못된 정치에 대해 성경적 관점에서 비판, 또는 책망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정치로 인해 신자, 불신자들이 모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듣기 싫어도 바른 소래를 해 주어야, 백성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책망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책망에서 자유해야 할 것이다.
신앙의 세계든 정치 세계든, 모두 양심과 상식을 따르는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바른 말을 하고 그 말이 권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과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돈에 오염되어 꿀먹은 벙어리가 된 것 아닌가, 안타까운 현실을 듣게 된다. 보이지 않는 돈의 영향으로 미국 정치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날 교회 세계를 보면서, 정말 존경하고 따를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 묻게 된다. 물론 소리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귀한 종들이 있다. 할렐루야! 그러나 유명하다는 사람들 중에 존경할 사람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오늘날 소위 많은 하나님의 종들의 관심은 어디 있을까? 그저 교인들 늘리고, 성공했다는 평판을 듣기 원하는가? 아니면, 광야의 외치는 외로운 소리처럼, 바른 소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살기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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