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깃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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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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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교인 한 분이 투자 사기를 당해 속을 앓고 있었다. 적은 돈이 아니라 십만 불을 투자하고는 돌려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사기의 주역은 만하탄에 거하는 어느 장로라는 것이다. 이민 사회에서 장로라는 직분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기질을 하는데 필요한 직분이 아닌가, 싶다. 나도 노회 안에 잘아는 장로한테 투자 사기로 삼천 불을 떼이고 말도 못하고 지냈다.
이민 교회 안에는 왜 장로 직분을 그렇게 원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면 목사도, 장로도 신뢰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이민 사회의 실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교회가 버텨가는 것이 신기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목사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며 사는 사람을 보아 왔기에 이 직분을 별로 신뢰하지 못한다. 내게 불행한 경험일 수 있다.
신자,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것 아닌가? 근래 미국 사회에서 가짜 선지자, 가짜 사도에 대해서도 듣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특정되어 있다. 건강, 부요함, 치유를 약속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끌어 들여 자기 치부의 수단을 삼는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의 수단을 삼는 이들도 사깃군 부류에 속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진노로 붙타오를 것 같다.
병든 사람이 얼마나 그 병에서 놓임을 받기 원하는지, 나도 알고 있다. 내 동생은 살아 있었을 때, 소아마미에, 간질의 질환을 앓고 있었다. 갑자기 간질 증상이 와서 쓰러져 허우적 거리는 그 모습을 보는 혈육의 마음이 어떠한지 나는 알고 있다. 저주가 무엇인지, 그 말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주일, 교회 예배 중 차라리 동생을 데려가 달아고 기도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동생이 운명을 달리하고 있었다.
오늘날 불구자가 고침받고, 치명적인 병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는가? 성서적, 신학적 진리를 바로 아는 일이 필요하다. 사도 시대의 치유의 능력은 사라졌다. 치유의 은사는 사라졌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면, 기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치명적인 질환을 앞에 두고 우리는 기도한다. 그러나 낫고, 못낫고는 기도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좌우된다. 사람은 평소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무슨 용한 사람이 기도하면 낫는다는 믿음은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은 병자 자신의 몫이라고 한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으로 책임을 병자에게 돌리는 것이 치유 사깃군들의 변명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 몸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찌기 살다 떠나가신 송명희씨는 그런 면에서 살아있는 간증이라 할 수 있다. 뇌성마비 상태에서 찬양의 가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능력 안에서 감옥 생활을 능히 이겨나가고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을 엉뚱한 데 인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병든 몸이 치유받기릉 원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몸은 낫기를 바라면서, 그 속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물욕에 사로 잡혀 사는 것은 영적 병자, 영적 문둥병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 마음이 없이 육신이 건강을 바라는 것은 사깃군을 불러 들이는 마음인 것을 알아 경계해야 한다. 나라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사람들도 사깃군에 해당되고, 능력도 없이 덤비는 가짜 치유사들도 사깃군들이다. 바로 알고 경계하여, 피해를 겪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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