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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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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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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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신경의 고백 속에는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고백이 들어있다. 이런 신앙 고백은 우리 주 예수님은 믿는 고백, 성령을 믿는 고백과 나란히 있다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우리 주 예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고, 성령의 사역을 믿고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도의 고백도 중요하다는 뜻을 표현한다.
교회 생활,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성도의 고백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 성도의 교제는 성경, 기도, 예배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의 한 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란, 우리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에게 우리를 가까이 인도하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 기도,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체험하게 되는 것처럼, 성도의 교제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새벽 말씀을 준비하다가 살후 3: 6 말씀을 읽게 되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형제들에게서 떠나라." 이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고 하였다. 얼마나 심각한 말씀이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고 했을까?
교회 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성도의 고제의 중요성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성도의 교제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 나누는 교제이다.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목사들 중에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상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 성령을 모신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진실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고, 삶의 목적이 자기 성취나 만족에 있지 않고, 주님의 영광과 뜻을 구하며 산다. 우리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유혹과 성품에서 자유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마음으로 고백하고 사는 신자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신자들에게는 진실함이 있고, 겸손하게 살고자 한다.
그러나 교회 세계에는 가짜 신자들, 거짓 지도자들도 있어 사도 바울은 그들을 경계하고 떠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고"있다.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 수 없고," 의인이 죄인 중에 평강을 얻지 못한다. 함께 있더라도 결국을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사람 속을 지배하는 영(Spirit)가 다르면 결코 연합하거나 화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 신자와 불신자는 함께 연합하여 살지 못한다. 세상 끝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된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도 마음의 교제가 가능해 진다. 옛날 군대시절 군종 하사관 유하사라는 분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상병으로 군대 내 PX에서 그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마음이 통하고, 한 형제됨을 의식할 수 있었다. 군대라는 조금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그를 대할 때마다 평안함을 느꼈다.
성령을 모신 사람들에게는 서로를 바라보는 통랑함(transparence)이 있다. 솔직함, 진실함, 겸손함을 느낄 수 있다. 성령 없는 사람들은 자기 방어에 능숙하다. 자기를 들어내지 못하는 감추인 것들이 많다. 그러면서 자랑할 것만 내놓는다. 성령을 모신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높이며 살기 원한다. 성령 없는 사람들은 자기 만족과 성취가 삶의 목적이다. 그런 사람들과 교제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우리는 성령을 모신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에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 성도가 옆에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모두가 자기 유익, 자기 만족과 성취를 추구하는 경쟁 사회에서, 서로를 위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성령을 모신 사람들은 거짓과 악을 떠나 살기 원한다. 그러나 성령 없는 사람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쉽고, 마음으로 신뢰할 수 없다.
성도의 고백을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재 눈 앞에 있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믿을 뿐 아니라, 시간,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믿는다는 뜻이다. 이민 교회 속한 우리들은 한국의 교회와 교제를 이루고 살뿐 아니라, 과거 역사 속의 성도들과의 교제를 이루고 산다. 성경 속의 아브라함, 모세, 다윗, 베드로, 바울과, 교회 역사 속의 루터, 칼빈, 웨슬레, 무디, 로이드 존스, 한경직 목사님과도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교제를 나누게 된다. 그들은 우리 앞에 살아있는 존재로 나타난다.
사도 바울이 엄숙한 tone으로 명하는 말씀에 의하면, 성도의 교제 속에 사는 우리들은, 거짓 형제들을 떠나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명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과의 교제 속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고, 세움을 받지만, 거짓된 사람들 속에서는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고, 거짓된 사람들의 미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악한 세상에서는 선이 끼치는 영향보다, 악의 영향이 더 쉽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계 역사의 끝에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까닭은, 성도들을 거짓과 악의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하고 사는 우리들은 참 성도의 귀함을 알고, 성도의 교제를 힘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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