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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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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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1월 날씨 같지 않게 봄처럼 따뜻했습니다. 찾아보니 이런 날씨를 가리키는 말이 있더군요. ‘January Thaw’ (1월의 해동)이란 말인데 ‘인디언 썸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동북부 지역에서 1월 중순 경에 일시적으로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눈이 녹는 현상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1월입니다. 겨울의 한 가운데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현상을 ‘False Spring’ 이라고도 합니다. 봄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좋은 날씨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일시적인 온도 변화이지만 과거의 농부들은 많은 눈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이었습니다. 농부들은 ‘겨울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인을 받는 것이고, 겨우내 동안 움츠려 있다가 한번 기지개 펴며 숨 한번 몰아쉬는 것 같습니다. 비록 혹한 속에 단추 구멍 만한 ‘희망의 여지’ 일지라도, 기나긴 겨울을 버틸 수 있게 합니다. 또 찬바람이 다시 불어 올 것이 자명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소망의 증거가 되고도 남습니다. 왜냐하면 곧 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해졌다고 섣불리 얆은 옷으로 갈아입지 않겠지만 얇은 희망을 봤으니 꽁꽁 얼어 붙은 얼음을 보면서도 미소가 번집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봄은 반드시 오니까요.
여태 조용하고 안전했던 우리 동네에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바퀴없이 차체만 덩그라니 플라스틱 상자 위에 놓인 육중한 SUV를 발견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다음날 알게된 사실은 그 차가 이웃집 ‘조이’ 엄마 차 였고, 화요일 새벽에 절도범들이 바퀴 4개를 몽땅 훔쳐 간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나가는 조이 엄마를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위로의 말을 건냈습니다. 조이 엄마는 인사도 잘하고 이웃들과도 잘 지내는 백인 여성인데 이 일로 무척 상심해 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조이 엄마는 며칠 전에도 길에서 넘어져 손을 다치기 까지 했다면서 연초부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면서 울상을 지었습니다.
고난의 정중앙에 있으면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반복되는 어려움은 뫼비우스의 띠 처럼 무한 반복될 것 같아 우리의 의지를 주저 앉힐 기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숨을 쉴 수 있게 합니다. 여전히 혹한의 겨울 같더라도 소망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어려움이 무서운 이유는 구원 이전의 나 만 믿고 살았던 ‘나’라는 감옥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과 우월감이 무한 반복되는 ‘나’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갇히는 상황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원할 것 같은 절망의 띠를 끊는 능력이 있습니다. 혹한의 칼바람으로 소망 없이 움츠러들었던 누구라도, 소망의 불을 피워 고개 들어 움직이게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고난의 구덩이 속에 있는 자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사다리입니다. 한번 고개만 들면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기만 하면 여전히 한 겨울 추위 같은 고난이라도 언젠가 불어올 은혜의 훈풍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어 지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고난의 추위 속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은혜의 봄을 소망하며 견딜 힘을 얻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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