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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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 개미지옥 같은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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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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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군 군사기지가 있는 아랍 주변국에 미사일로 응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또 다른 무고한 생명이 희생될 것이 걱정입니다. 모든 뉴스가 이란 전쟁으로 도배되고 있는 가운데, 난데없이 쿠르드족 수천 명이 이란으로 들어가 지상전을 준비한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쿠르드족은 자신의 나라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애달픈 역사를 지닌 민족입니다. 쿠르드족의 속담에 “쿠르드족의 유일한 친구는 산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산악 지역에서 유랑민족으로 살아온 애환을 잘 표현한 말인 듯합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쿠르드족의 독립을 약속하고도 이용만 한 뒤 토사구팽한 전례가 여러 차례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참전하여 바라는 바를 이룰지, 아니면 또다시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수백 년 동안 나라를 세워 보겠다고 남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이용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에도 나라를 세우려는 소망을 품는 그들이 애잔합니다.


        전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전 9:4-5). 남들이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만한 것들이 많아도 살아 있지 않으면 동네 똥개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소망은 산 사람의 전유물입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소망할 수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에 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망의 반대는 절망일 것입니다. 소망이 끊어졌든, 소망이 끊어졌다고 믿든, 마음판에서 소망의 흔적이 지워진 사람의 마음 상태가 바로 절망일 것입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에서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은 죄”라고 말합니다. 또한 죄 가운데 있는 상태는 그 하나하나가 새로운 죄로 이어진다고 밝힙니다. 그러므로 절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죄의 개미지옥 같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이 소망 없이 사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요 진리요 길이십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소망이심을 믿는 것은 지하철 전도자의 피켓에 쓰인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문구를 가볍게 뛰어넘는 차원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은 천하에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소망을 거는 사람에게 세상을 호령하는 그 어떤 것이 부러울 수 있겠습니까.


        몇 주 전 설교 중에 성경 읽기를 권면하면서 “성경 전체 통독이 어려우면 로마서 읽기라도 여러 번 하라”고 제안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성도님 한 분이 그 말에 감동을 받으셨는지 그렇게 해 보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 성도님의 결심대로 로마서 읽기를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을 절대적으로 지지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걸고 결심을 실행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줍니다. 말씀 읽는 일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산 소망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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