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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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관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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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날(Mother’s Day)입니다. 어머니날은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Mother’s Friendship Day)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앤 마리 자비스(Ann Maria Reeves Jarvis)가 남북전쟁 이후, 전쟁으로 분열된 남군과 북군 출신 가족들 사이의 화해와 치유를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입니다. 앤 마리는 남북전쟁 당시, 편견 없이 양측 군인을 간호하며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또한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여성들을 조직해 ‘어머니의 날 작업 클럽’(Mother’s Day Work Clubs)을 세우고, 가난한 지역의 위생을 개선하고 어린이 건강을 돌보며, 장티푸스와 콜레라와 같은 감염병 예방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1868년, 이 단체를 중심으로 앤 마리는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개최합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 프런티타운(Pruntytown)의 법원에서 열린 이 행사는 남군과 북군 출신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도와 찬송으로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다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함께 식사를 나누고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부르며 감동적인 화해의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앤 마리 자비스의 딸, 안나 자비스(Anna Jarvis)는 어머니의 화해와 치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08년 어머니날 행사를 공식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이 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1914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5월 둘째 주 주일을 ‘국가의 어머니날’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날은 카드, 선물, 꽃 등 상업화된 형태로 바뀌게 되었고, 이를 안타까워한 안나 자비스는 카네이션을 판매하던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으로 갈라졌던 나라를 치유하고 화해하려던 어머니들의 모임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기리는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불효자입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저는 유학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병실을 나섰지만, 한국을 떠난 지 한 달 반쯤 뒤, 저는 결국 어머니의 묘 앞에서 통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육남매의 맏딸이셨고, 시댁에서는 육남매의 맏며느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다섯 남매의 어머니이십니다. 배움은 짧으셨지만 언제나 유쾌한 웃음과 당당함을 지니셨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불사르며 헌신하셨습니다. 삼촌들까지 업어 키우시고 장가까지 보내주신 분입니다. 우리 집에서 어머니는 가족의 중심, 허브와 같은 존재셨습니다. 어느 명절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던 중 작은아버지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만큼 화목하고 끈끈한 집안은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화목함은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예수님께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교회의 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은 기초와 뼈대를 놓으시고, 우리를 통해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과 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기도의 헌신, 봉사의 헌신, 물질의 헌신, 화해와 회복을 위한 헌신으로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도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행복한 교회로 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성도님들이 기꺼이 그 손과 발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 화합하고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는 분들—그분들이 바로 어머니와 같은 분들입니다. 어머니와 같이 사랑과 수고로 함께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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