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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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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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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람은 동물과 달리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고 한다. 동물은 본능에 의해 산다고 한다.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강아지도 분별과 선택의 능력이 주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로 인해 자기 삶을 만들어 간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루 동안에도 많은 것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오늘 우리의 삶은 과거 우리가 선택한 결과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꼭 그런 것일까? 반문도 생긴다. 내가 선택한 것과 달리 더 좋은 것을 얻게 된 것은 하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내가 살기 이전에 나의 길이 하나님에 의해 정해졌다고도 한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 참 신비하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여기까지 살아올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는 선택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진로, 결혼 상대, 어디서 살 것인가? 많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선택의 조건들이 제한되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하루 하루 선택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선택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어떤 이상(Ideal),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지금도 선택해야 하는 질문이고, 그 선택이 나의 삶, 현재와 미래를 만들 것이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피조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만 그를 섬기는 삶"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극심한 목마름과 굶주림 속에서도 그 말씀을 해 주심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할 가치와 목적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 창조주 하나님,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섬기는 것이 가장 가치있고, 우리가 추구할 최상의 가치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원한다.
왜 그 목적과 가치가 그렇게 중요할까? 그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 피조물을 그렇게 귀하게 대우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 속에 살게 해 주시고, 장차 천국을 기업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그 사랑을 다 이해할 수없다. 자기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루 하루 우리를 주목하시고, 우리 말을 다 기억하시고, 우리 머리털을 다 세시는 하나님의 관심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생명을 주고 받는 관계로 우리를 불러 들이신다 말할 수 있다. 생명을 주고 받는 대상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법칙을 떠나 사는 것, 무가치한 삶을 사는것이 된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자유 의지를 "위험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런 삶은 기계적이나 억지가 아니고, 우리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망극한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그 사랑에 응답하여 우리 의지를 다해 그를 사랑하고 경배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 사랑의 명령은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선택하여 삶으로,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의 길이라 믿는다. 자유 의지는 자칫 잘못하면, 무가치하고 파멸의 길로 나아가지만, 그 사랑을 깨닫고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선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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