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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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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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텍사스 주의 폭우로 인해 무고한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희생의 소식을 매일 듣는다. 어린 소녀들이 기독교 여름 수양회에 참석했다가 그런 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전에 대학 시절 여름과 겨울 3박 4일 수양회에 참석해서 성경을 배웠던 추억이 있다.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뉴스에 보인다. 천사같이 해맑은 얼굴을 한 어린 소녀들이 희생당하여 이 소식을 아는 모든 사람들 마음을 울리고 있다.
텍사스뿐 아니라 뉴 멕시코, 칼리포니아에도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자연 재난의 심각성을 보고 듣는다. 이런 재난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들어야 할까? 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삶에 역사하며 불행한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다. 종종 인용하는 말씀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구절이다(엡 1: 11).
나는 사고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이 세상의 도처에 위험이 깔려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손이 돌보지 않으면, 이 생명은 언제든지 해를 받고 꺼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그 손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살려 한다. 감사하게도 이날까지 큰 사고를 겪지 않고 생명이 보존되어 살고 있다. 그런 삶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 여기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이 무고히 해를 받고 죽었던 일을 듣고, 실로암 망대 얘기를 하셨다. 그 사람들이 죄가 더 많아 해를 받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같이 망할 것이다는 말씀이다. 죄 속에 사는 사람은 항상 회개의 삶을 통해 해받는 삶을 피해 살수 있다는 것이다. 죄와 재난의 상관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우리 앞에 상존하는 재난의 실재 앞에 항상 우리 자신을 살피고 의로운 삶을 추구하며 살 것을 가르치셨다. 우리의 존재와 삶은 하나님의 섭리와 손 안에 있음을 믿고 살고 있다.
이런 말이 홍수 속에 생명을 잃어 버린 어린 소녀들과 생명을 달리한 사람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어린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많다고 홍수에 휩쓸려 갔을까? 죄로 말하자면 어른들이 더 많이 짓고 사는 것 아닌가? 그들은 하나님을 더 알고 믿기 위해 모인 자녀들 아닌가? 어떤 논리나 설명으로도 그들의 희생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귀여운 자녀들을 잃어 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상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을까? 수양회 간 것이 잘못 이었단 말인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재난을 경험한 사람이나 멀리서 보고 듣는 사람이나, 할 말이 쉽지 않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추하면서, 혹 우리 자신에게 회개할 죄가 없는지를 돌아볼뿐이다. 사고와 재난은 어디에나 깔려 있는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아, 조심하며, 보이지 않는 하늘의 손을 바라고 의지할뿐이다. 또 하나님의 뜻이면 언제든이 이 생명을 불러가실 것을 믿는다. 그때를 준비하며 살기 원할뿐이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갔다가 앞서간 생명들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안식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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