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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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건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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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미국에 와서 이런 저런 경험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것 몇 가지를 돌아 본다. 프린스턴 신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고 기다리는 중 마침 동서 가정이 한국에서 LA로 이주해왔다.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비행기로 LA 북쪽 Palm Dale이란 곳을 찾아갔다. 며칠 있었는데 버지니아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데려온 치와와가 우리가 떠난 후에 전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왔다. 치와와는 그동안 먹지 못해서 뼈만 남아 있었다. 이 강아지는 인간 IQ로 130은 넘는다고 생각했다. 영약하기가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의 넓은 대륙을 6일에 걸쳐 자고 먹고 운전했던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다시 미국 대륙을 여행해서 더 둘러보고 현지를 체험해보고 싶다. 최근 동창 세 가정이 한달 일정으로 뉴저지에서 서쪽 끝을 다녀 왔다. 몹시 즐거운 추억이었다고 한다. 미국 체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1월말 프린스턴에서 입학허가가 나왔다고 해서 불이나케 뉴저지로 돌아와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공부만 하고 지내는 것이 몹시 무료하게 여겨질 때 인근 교회에서 담임 목사 청빙이 와서 선뜻 수락했다. 그래서 공부와 목회를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다. 그때 낛시의 취미를 발견하고는 시간만 있으면 기숙사 옆 canal에서 메기 낛시를 하다가, 한 시간 운전해서 대서양 쪽으로 가서 광어 낛시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한 주일에 두번 정도 갔다 오면 마음이 뚤리는 듯 시원함을 느꼈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새벽 기도, 공부, 낛시 참 정신없이 보냈던 시절이었다.
나이아 가라 폭포를 구경하는 것은 미국 생활하는 한국 인들에게는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절을 맞아 프린스턴에서 그곳을 차로 운전해서 찾아갔다. 그런데 정작 기억되는 것은 폭포가 아니라, 폭포를 향해 가는 지방 도로 양편에 피어있던 들꽃들이었다. 노랑색 파랑색 들꽃들을 보면서 긴 시간 운전했던 기억이 아름답게 추억된다. 나는 이름 모르는 꽃들에 더 감동을 받는 것 같다.
미국 들어온지 이제 34년이 지났다. 이민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시작했다가 그 일도 이제 은퇴로 손을 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몇몇 분들과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예전 일을 계속하고 있다. 마음 조리며 공부했던 열매로 지금까지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보람되고 감사하게 여겨진다. 매일 새벽 말씀을 준비해서 제자들과 옛 교인들에게 보내는 것도 보람 중의 하나이다. 성실한 옛 교인이 여전히 교회 싸이트를 관리해 주고 있다. 잊을 수 없는 헌신적인 교인이었다.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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