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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24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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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52)-결례(潔禮)와 헌신(獻身)


행21: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1970년대 중동에 건설 붐이 일던 시절, 많은 남편들이 해외 근로자로 나갔을 때, 어느 두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멀리 열사의 땅에서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보내주는 돈을 꼬박 꼬박 저축했습니다.


통장에는 돈이 점점 쌓여가고 어느덧 천만 원도 넘어갔습니다. 당시엔 꽤 많은 돈이었습니다. 남편들이 떠날 때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자고 약속했던지라, 두 자매는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으로 외로움을 이겨나가고 있었습니다.


가끔 통장에 늘어나는 잔고를 보면서 내 집 장만의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주부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는데 외롭지 않냐고 묻는 것입니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저 외로운 부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전화를 했노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끔 본, 댄스 교습소 선생이었습니다. 외로우시니 운동 겸 소일거리 겸 한번 놀러 나오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았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남편이 없는 외로움에 힘들었습니다. ‘설마 별일 있으려고 심심한데 구경이나 한번 가지 뭐‘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그 길로 그 주부는 매일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비에게 몸도 돈도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인은 전화를 받고 마음이 동했지만 돌아올 남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져먹고 요동치 않았습니다.


때로 외로움과 그리움에 울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왜 남들처럼 풍족치 못하여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신세 한탄도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작업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남편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남편을 생각하며 꾹 참고 아이들을 기르며 살았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두 집에는 중동에서 편지 한통씩이 날아왔습니다. 뜯어보니 남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이제 며칠 후면 귀국이요”


편지에는 비행기 도착 날짜와 시간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일 보고 싶으니 돈이 아무리 들어도 꼭 김포 공항에 나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두 부인은 둘 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 부인은 너무 기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숨겨 논 통장을 끄집어내어 보고 또 보고 울기도하고 웃기도하고 어서 그 날이 오길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루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이집 저집에 가서 자기 남편이 돌아온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부인은 그 날 밤부터 불안과 두려움 후회로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통장은 이미 벌써 비었고, 빚마저 수백만 원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죽을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그 날 한 부인은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고 김포공항에 나갔습니다. 핸드백에는 이미 수천만 원으로 늘어난 통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부인은 그날 자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정결하게 살지 못하면 마지막 날에 자살한 그 주부처럼 될 것이고, 정결하게 살면 기쁘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 자매가 힘들 때마다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남편 사진을 본 것처럼, 우리도 말씀 가운데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결례’입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정결한 신부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례는 ‘정결예식’으로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정결하게 되기 위한 의식을 뜻합니다. 우리 스스로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예식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하자, 야고보 사도가 이방인에 대한 치리로 결례를 행하고 머리를 깎는 것으로 ruling(판결)합니다. 결례를 헌신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결례에 ‘헌신’이 수반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헌신은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 (롬6:13)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으며 서원했던 것(행18:18)처럼 제자들에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헌신으로 가르칩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결례는 우리 삶에 가장 귀한 것이 주님이심을 재천명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주 인도 따라 날마다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 주여

우리 삶에도 늘 결례와 

헌신이 따르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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