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 5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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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61)-멜리데의 표적
행28: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얼마 전 소개했던 일화지만 다시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한 수행자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라마크리슈나’를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높아진 도력을 자랑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물위를 걸어 갠지스 강을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있던 라마크리슈나가 물었습니다. ”그래, 몇 년이나 수련을 했는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18년 만에 이루어냈습니다.”
스승은 다시 물었습니다. ”이보게, 갠지스 강을 건너는 데 뱃삯이 얼마인가?” ”18루피라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라마크리슈나가 수행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18년 동안이나 수행해서 겨우 18루피를 벌었네.”
이 제자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능력이 어떤 일을 행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랜 기도생활 끝에 물 위를 걸었다면 예수님이 칭찬을 해주셨을까?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원하셨던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찾아온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무슨 말씀일까? 주님은 사람들이 기적 자체보다 표적(기적의 본질)을 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기적과 표적의 차이는 행위와 존재(본질)의 차이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가 아니라 표적의 종교입니다.
한동안 미국 교계에 ‘쓰러지는 현상’과 ‘웃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좇았습니다. 아마 더 큰 기적이 있었다면 그것을 추구했을지 모릅니다.
기적을 본 이들은 무언가 ‘해서’ 그 기적에 응답하려 합니다.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드러내려 하는 것입니다.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행위로 자신을 드러내는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만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은 ‘행위’를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돼라’고 하십니다. ‘Do’가 아니라 ‘Become’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위는 존재가 변화되어 저절로 되어져 나오는 것이어야지 억지로 마음에 드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열매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맺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입니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적 자체가 아니라 표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막16:17). 표적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가 변화되어 따르는 것입니다.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 일행을 위해 원주민들이 불을 피웠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녹이려고 바울도 나무 한 묶음을 집어 불에 넣었습니다. 그때 그 묶음 속에 있던 독사가 그를 물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뱀을 떨쳐버리자 아무 상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멜리데 원주민들이 놀라 “그를 신이라”합니다. 바울이 ‘행위 쇼’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뱀을 떨쳐버린 것 뿐입니다. 아무 상함도 받지 않은 것은 그의 존재가 ‘하나님의 사도’로 변해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표적입니다. 일부러 뱀을 집은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11:40).
우리도 많은 간증이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들이 우리 삶 가운데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려고 해서 일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따른 표적들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행하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살면 우리가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욕심많던 자아가 사라지고 성령의 소욕이 저절로 울어납니다. 행하시는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표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담대한 ’표적의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 주여
우리 삶에도 표적이 따르게 하소서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믿고 따르며 순종하게 하소서
우리 안에 말씀이 세력을 얻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