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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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3장 12-16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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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내가 친히 가리라!

본문: 출 33:12-16


대부분의 조직이나 기관에서 근무할 때 어떤 사람은 업무 지향적task-oriented이고 다른 사람은 관계 지향적relation-oriented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함께 일을 수행하며 높은 성과를 올리는 데는 장기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업무 형태가 보다 바람직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극명한 대조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혼은 하나님을 바랍니다. desire 반면에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Seek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 신앙과 삶이 혼에서 머뭅니다. 그렇다고 혼 또는 정신이 하나님을 바람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 신앙인은 이성적인 혼의 바람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심령에 임재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을 찾는 것은seek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soul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pants for you

2 내 영혼soul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thirsts for God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 42:1-2).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경우, 즉 문제 해결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많은 능력과 역사의 응답을 경험해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전혀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에서 어떤 경우들에 해당될까요?


1.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손을 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하되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즉 행사works만 구했습니다. 홍해 앞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먹을 것이 없을 때 고기를, 마실 것이 없을 때 마실 것을... 저들은 자기들의 필요와 처지를 따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만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구한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들이 구하는 것을 광야 40년 동안 모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약속의 땅에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을 근심케 합니다. 또는 하나님을 분노케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합니다.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아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히 3:7-11). 이것이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삶의 치명적 해독입니다.


나아가 그들의 영은 죽어 갔습니다. 영혼이 파리해졌습니다.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15 So He gave them their request, But sent a wasting disease among them. (시 106:13-15).


우리 모두 하나님께 구하되 문제 해결을 먼저 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친밀히 알지 못해 영혼이 파리하여져 결국 죽게 되지 않으시길 축원합니다.


2. 반면에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문 12-15절입니다.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데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And He said, "My presence shall go [with you,] and I will give you rest." 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Then he said to Him, "If Thy presence does not go [with us,] do not lead us up from here.


이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사건 이후입니다. 이 금송아지 사건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에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 하지만, 하나님 자신은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까 그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출 33:3).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가지 않으면 자신도 안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오늘 본문대로 친히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를 편케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사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지 않는 그 어떤 부나 능력이나 성공이나 안락, 사역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같이 가지 않으려면 더 이상 올려 보내지 말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한 분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모세는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평상시 늘 하나님과 친밀히 대면하며 교제했었습니다 (출 33:9-11).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을 구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세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가 되는 생활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도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 얼굴을 찾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존재의 모든 목적이 되도록 주님을 찾고 친밀히 교제함에 먼저 힘쓰시길 축원합니다.


3. 다윗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았습니다

시 27:4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seek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다윗에게 한 가지 목적은 주님을 찾는 것이며,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며, 주님의 임재 가운데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라 자손도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며 임재 가운데 살기를 간구했습니다 (시 84:1-10).


그러면 오늘날 누가 하나님께 진실로 은총입은 자이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천하 만민과 구별된 증표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행하심(가심)”입니다. God goes with us

본문 16절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구할 때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입니다. 소위 말하면 여호수아처럼 회막에서 사는 것입니다(출 33:11 후반).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삼상 3:3).


이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으로 전환하시길 축원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리로 나아 가십시다. 자신의 현실적 위치나 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필요한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이나 기도 제목이 응답됨이 가장 중요하고 먼저가 아닙니다. 사역의 성공이 최우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 즉 능력이 나타남이 최선이 아닙니다. 손을 구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구하는 것은 얻을 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은 영혼이 파리해져 영원한 안식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얼마나 함께 있기를 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얼굴, 임재를 구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빚어 가시고 다루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함을 열어 주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진정한 신앙의 삶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문제와 기도의 응답, 사역도 덩달아 해결됩니다. 우리 모두 오늘부터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그분의 얼굴과 심장, 머리와 팔, 다리와 손 등등 하나님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신앙의 축복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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