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2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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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7대 자기선언!_개관
본문: 요 21:25
예수님은 본래 제2위 본체 하나님으로 절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는 태초 아담의 타락 직후부터 세워진 인간 구속의 법을 성취하고자 성육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속 사역을 다 이루시고 절대 유일의 그리스도, 즉 구주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입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이적들 가운데 특별히 일곱 표적을 선정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이 스스로 성자요 우리의 메시아이심을 함축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예수님의 7대 자기 선언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성자로서 가지신 절대 신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절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사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이런 절대 신성을 가진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 구주시니 우리의 구원도 절대 확실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구속 사역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서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세상의 죄와 사망, 그리고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모든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통으로부터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 땅에 살 동안에 빛과 진리 가운데 살며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여 모든 성도들을 부활케 하며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것 모두를 포함합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명하게 이해할 때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 위에서 더욱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먼저 “7대 자기 선언”을 개관하겠습니다, 이후 7주에 걸쳐 예수님의 “자기 선언”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사도 요한은 유대인으로서 숫자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의도를 ‘수비학’(數秘學, gematria)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숫자 상징코드는 알레고리칼(풍유적) 해석과 같은 영해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나친 자의적 해석은 삼가며 통전적 시각에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서기 90년에 기록할 때 ‘은폐기법’을 사용하여 모든 숫자(횟수)에 암호 상징을 이용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가 처한 삶의 자리가 암호 상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목숨이 위험한 박해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81년부터 96년까지 통치했던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잔인하게 탄압했습니다. 자신의 황제 신격화를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말기인 95년에 밧모섬에 귀향되어 쓰여진 요한계시록은 ‘노출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미 귀향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박해를 피해 숨길 아무 이유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가령 요한계시록은 숫자 7을 사용할 때 무려 60회(가령, 일곱 교회, 일곱 천사, 일곱 나팔 등)를 사용했습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은 ‘일곱 시’(요 4:52)를 제외하고는 직접 나타나지 않고 전부 은폐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숫자(횟수) 7을 알려면 요한복음의 내용을 일일이 세어보아야 했습니다.
2. 그런데 왜 7이란 숫자를 요한은 그토록 사용했을까요?
이는 “7”이란 숫자가 하나님의 숫자이자 모든 경우를 포괄하는 완전수이자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25절 본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7가지 만이 아니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공관복음에도 수없이 많은 행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지기수로 많아 그 기록을 담은 책들을 쌓기에 이 세상이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때문에 요한은 7대 표적만을 언급하여 모든 행적들을 대표케 했던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도 숫자 7을 사용하여 모두를 완벽하게 대표케 했습니다. 가령 빛, 선생(랍비), 구원(구주), 물, 신앙고백, 마지막 날, 증인, 문, 도마,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 여인들 등입니다.
3.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눌 7대 “자기 선언,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예수님의 "자기 선언"( Self declaration)이란 특별히 예수님이 자신의 성자로서의 본래의 지위, 그리고 자신과 택한 백성들과의 관계 및 자기 사명, 곧 메시야 직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계시하신 말씀들입니다. 곧 "나는 ~ 이다"라고 하신 말씀들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요한복음 1:1의 ‘로고스’ 개념만이 아니라 “내가 거한다”(14절)라는 표현, 그리고 독특한 말씀기법인 소위 “에고 에이미” 용법을 정형화(양식화)하여 사용했습니다. 이 용법은 출애굽기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또는 이사야에서 많이 나오는 “내가 그다”(사 41:4; 43:10,13), “나는 야웨다”(사 43:11; 45:5,6,18), “나는 하나님이다”(사 43:12; 45:22; 46:9)에서 유래합니다.
그런데 이 “에고 에이미의 일곱 비유적 용법”은 ‘성막(성전)의 일곱 주요 기구들과 놀랍게도 서로 상응합니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48) - 떡상(출 25:23-30).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 등잔대(출 25:31-40; 37:17-24).
③ “나는 양의 문이다”(10:7,9) - 성막문(출 27:13-16).
④ “나는 선한 목자다”(10:11,14) - 번제단(출 27:1-8).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 법궤(출 25:10-22).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 분향단(출 30:1-10).
⑦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5) - 물두멍(출 30:17-21)
왜 사도 요한은 이 같은 기법을 사용하였을까요?
요한은 “7대 자기 선언” 비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유대교의 물리적 성전을 대체하신 영적 성전임을 천명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 대제사장였던 아론을 대신한 새 언약의 대제사장임을 밝혔던 것입니다.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9:11-12).
동시에 4번째 선언 그 중심에 번제단을 놓고 자신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5).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이 같은 제사의 3가지 요소, 대제사장, 성전, 제물을 예수님이 영원히 모두 만족케 함을 보임으로써 유대교의 성전제사제도를 완성하신 메시아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단지 “좋으신 구주”란 사실만 단순히 알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7대 자기 선언을 통해 자신의 신성은 물론, “영원한 한(once for all) 제사”를 드림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 그리스도, 구세주임을 천명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하나님이자 구주란 사실은 이처럼 성경을 알면 알수록 더욱 더 놀랍고 확실한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배우심으로 우리의 구원주되신 예수님을 더욱 더 알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믿음이 성장되고 또한 성숙해져 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