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30-35절 말씀 묵상 [민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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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떡을 구하라!_자기선언1
본문: 요 6:30-35
여러분은 어떠한 양식을 구하십니까? 그리고 그 양식을 어떻게 얻으십니까? 나아가 그 양식을 통해 무엇을 얻으십니까?
1)우리는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먹고 살아갈 일용할 육의 양식을 구합니다. 이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양식을 구입합니다. 즉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양식을 얻는 것이지요.
2)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인간이 구하는 일반 양식을 자신의 시간과 노력으로 구하지 않아도 구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더하여 주시는 사건들이 구약에 기록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좋으시죠?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으세요?
엘리야를 떡 한 조각으로 먼저 공궤한 사르밧 과부는 가뭄 중에도 밀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왕상 17:8-16).
여호와를 평생 경외한 생도의 과부에게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풍성한 기름을 채워주어 생활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왕하 4:1-7).
신약에도 그렇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6:33). 주의 일꾼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고전 9:9-10).
3)나아가 사람이 도무지 일해서도 얻을 수 없는 열악한 사막의 환경에서도 먹고 마시고 입을 수 있음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의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2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사막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광야에서 식탁을 내랴? 조롱하던 바로를 하나님은 무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10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날인 15일에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도록 하셨습니다. 앞에 가로 막힌 홍해를 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한달 후 신광야에 도착했을 때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메추라기로 고기를 먹이시고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그로부터 39년 11개월 동안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공급하셨습니다. 드디어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치며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다음날 무교병과 가나안땅의 곡식을 볶아 먹으니 만나가 그쳤습니다. 시편은 만나가 하늘의 양식으로 비같이 하늘에서 내렸다고 언급했습니다.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시 78:24).
본문 31절에서도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벳새다 평원에서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적을 행한 사건이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그냥 ‘떡 다섯’이 아닌 더 가난한 이들이 먹는 ‘보리떡 다섯 개’와 ‘큰 물고기’(익투스)가 아닌 작아서 그냥 버리는 ‘작은 물고기’(옵사리온’(ὀψάριον)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육의 양식은 어떻게 구하여 얻든, 즉 자신의 힘으로 얻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든, 육체의 건강이나 수명, 곧 목숨을 연장해 줄 뿐입니다. 결국은 모두 다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영적 건강이나 죽음 등 우리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육적, 또는 물리적 수준의 양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나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하늘에서 내린 떡이었지만, 참 떡이 아님을 지적하셨습니다. 다만 참다운 양식의 모형과 그림자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참 떡”은 모세가 주었던 만나와 같은 일반적인 육체적 욕구를 채워 주는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종류의 떡, 진정한 의미에서 영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떡을 시사합니다. 이 영적 양식은 영혼을 구원할 것이요 이 양식이 몸에 들어가 동화되면 영원한 축복과 생명의 실재를 알게 될 것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의 성소 오른편에는 떡상과 그 위에 12개의 떡이 6개씩 2줄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 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습니다. 영적 양식의 모형이었습니다 (레 24:5-8). 아니나 다를까 주님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떡”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게 생명을 준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33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자 예수님의 이 놀라운 말씀을 듣는 자들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희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비꼬며 경멸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30절). 그런데 저희들이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25절의 “랍비”(선생님)에서 “주”로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34절 전반 “저희가 가로되 주여...”
그들은 예수님이 언급하시는 참떡이 자신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급박하게 간절히 예수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본문 34절 후반 “...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이는 사마리아 여인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원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요 4:15).
그러자 예수님은 마침내 자신이 생명의 떡임을 선언하십니다.
본문 35절 전반 “예수께서 사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참고 6:48, 51).
이 장엄한 자기 선언은 무리를 극도로 놀라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의미에 있어서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곧 그 자체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살아 있는 떡입니다. 또한 생명수와 같이 타인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와 같습니다(6:51 전반),
특히 이 예수님의 ‘자기 선언’ 서술부는 정관사를 수반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그' 떡" I am the bread of life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부와 서술부는 동일시되고 있으며, 서로 교환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또한 "그 생명의 떡은 곧 나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곧 그 만이 "생명의 그 떡"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어디에도 그 떡은 없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권면합니다. “내게 오라!” 본문 35절 “... 내게 오는 자는” 이것이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심령의 첫 번째 행동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결코 영적으로 배고프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35절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강한 이중부정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이어서 권면합니다. “나를 믿으라!” 본문 35절 “나를 믿는 자는”
이것이 우리가 두 번째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신뢰의 계속적인 관계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심령이 목마르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본문 35절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주시는 생명의 떡, 생명의양식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먹지 못하는, 그러나 결코 주리지 않는 영적 생명의 떡을 먹습니다. 영적 생명수를 마시고 삽니다 (요 6:47-51).
이제 설교 시작 질문과 대비해서 물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양식을 구해야 할까요? 그 양식을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양식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될까요?
우리 모두 이 세상의 떡이 아닌 생명의 떡을 구하십시다. 그를 위해 예수님께 나아 가십시다. 그리하여 영원히 배부르십시다.
우리 모두 생명의 양식을 구하십시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십시다. 그리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마십시다.
우리 모두 우리 영혼이 영원히 만족함을 얻는 풍성한 영적 생명 양식과 생명수를 먹고 마시게 되길 축원합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 썩는 양식을 위해서만 일하지 마십시다. 영생의 양식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시다. 주님은 강력히 명령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