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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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장 38절 말씀 묵상 [이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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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방문 후기(2)


눅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것이니라.”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충격은 제 자신이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 자신 나름대로 ‘신세대’라고 여겨왔던 관념이 송두리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탈화 되어 있는 한국에 적응하여 ‘한 달 살아남기’를 하려면 조그만한 것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은행에서 돈 찾기, 주유소에서 주유하기, 마켓에서 장보기 등, 평범한 일상이 쉽지 않았습니다.


ATM 머쉰에 등장하는 용어부터 이해해야 했습니다. 지하철, 버스, 카카오 택시 등을 이용하는 것도 새롭게 배워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셀폰에 e-Sim을 설치하고 로밍을 대신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특히 다른 폰에 연결하기 위해 hot-spot을 오픈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포기해야 했습니다. 일단 배우고 나면 편리한 시스템이지만 낯설은 시작은 반드시 거쳐야만 했습니다.


서울, 특히 강남은 ‘하이-앤드 소사이어티’(최고급 사회)로 미국, 유럽보다 화려해 보였습니다. 지방도 이에 못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가 발달되어 서로 경쟁적으로 투자하여 화려하게 변모하였습니다.


중소도시 어디를 가든 아파트 숲이 있고 고층 빌딩과 도시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대도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선진사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교회, 특히 서울 강남에 위치한 교회들도 이에 따라 매우 ‘하이-앤드’여서 방문자들에게는 오히려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련된 예배 진행, 잘 짜여진 순서, 영상을 활용한 설교 등, 모든 것이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동네교회’에 온 푸근함은 없었습니다. 마치 세계 첨단 시설의 ‘미래적 예배(?)‘를 드린 느낌이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아버지 집’에 ‘돌아온 탕자’의 느낌을 갖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세련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만에 방문한 한국은 포스트 모던의 트랜드를 모두 제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트랜드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은 국악의 판소리입니다. 특히 ‘이날치’라는 조선 후기의 판소리 명창입니다.


이날치의 본명은 이경숙이지만, 날쌔게 줄을 잘 탄다는 의미에서 날치라는 예명이 붙었습니다. 상민과 양반, 모두에게 사랑받은 서편제의 대표 소리꾼입니다.


얼굴도 목소리도 전해지진 않지만, 그가 새타령을 부르면 실제 새가 날아들었다는 말까지 전해집니다. 이런 조선 시대 이날치의 재기 넘치는 멋과 흥을 되살린 ‘이날치 밴드’가 얼마전 인기를 끌었습니다.


’조선의 힙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반복되는 가사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 홍대나 이태원의 클럽에서나 어울릴 법한 분위기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엉뚱하게도 판소리 ‘수궁가’의 한 장면입니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범 내려온다.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난 순간을 묘사한 노래입니다.


베이스 2명과 드럼 1명, 그리고 정통 국악을 전공한 소리꾼 4명의 조합으로, 국악도, 힙합도, 디스코도 아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오랜 가르침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이전의 틀을 고수하려는 사람과 이전의 것을 익혀서 현 대중들에게 맞추려는 사람들입니다. 판소리는 현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일부만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판소리는 조선 시대의 힙합과 같은 당시의 대중음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시대에 맞춰 이 대중음악의 틀도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대중이 알아주지 않으면 판소리는 이제 영원히 잊힌 음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저희들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들의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틀을 벗어야만 합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의 천국’이 아니라 ‘우리들의 천국’이 되기 위해 전하는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키고 바뀌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본질,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씀은 바로 본질과 형식(틀)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엇이 바뀌면 안 되고, 무엇은 바뀌어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옛 것을 지키기만 하려는 ‘꼰대 근성’에서 벗어나려면 이웃을, 대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확대되면 ‘이웃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긴 교훈입니다. 이번 고국 방문은 다시 한번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오 주여

이 시대에 맞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변화의 시대에 이웃을 알게 하소서

그 이웃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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