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길] 나의 성벽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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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성벽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로
본문: 에베소서 4장 1–6절
설교: 양춘길 목사(필그림선교교회)
할렐루야. 여러분, 잘 오셨어요!
저는 우리가 매월 함께 모이는 러브 뉴저지 일일 부흥회를 참 사모합니다. 물론 때로는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여기 오면 참 좋아요. 뭐가 좋은지 아세요? 아무 순서도 안 맞고 예배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오늘은 순서를 맞았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다른 때보다 좀 경직된 마음을 가지고 참석을 했는데,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풀어주시고 마음에 큰 은혜와 감동을 주셨어요.
여러분, 찬양할 때 참 좋았죠? 특별히 오늘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요. 여러분도 좋으셨어요? 안 좋으셨어요?
제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마지막에 5월에 결혼할 한 커플을 위해 다 함께 축복하는 장면을 보는데, 앞에 앉으니까 다 보이잖아요. 형제는 그 감격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자매는 그게 보이는 거예요. ‘아, 저러다가 눈물이 언제 흐르나’ 싶을 만큼 너무 감격스러운 거죠. 그런데 잘 참아내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해서 제가 뒤돌아봤는데, 뒤에 앉아 있던 청년 자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예요. 아,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눈물도 대신 흘려주는구나.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가 연합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 전달됩니다. 사랑으로 연합할 때 우리의 냉랭한 마음이 따뜻함을 얻게 됩니다.
초연결 사회, 그러나 고립된 현대인
여러분,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소위 초연결 사회라고 말합니다. 여기 있지만 글로벌하게 모든 것이 이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연결 사회라고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고립된 사회가 되었다고요.
왜 그럴까요?
보이지는 않지만 갇혀 있는 현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투명한 유리 성벽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혹시 그런 느낌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내가 뭔가에 갇혀 있구나.
혹은 저 사람도 뭔가에 갇혀 있구나.
겉으로는 웃어요. 대화도 해요. SNS를 통해 화려한 일상을 사진 찍어 올리기도 해요. 그런데 정작 마음 깊은 곳에는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있고, 또 우리 스스로도 “누구도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하며 문을 닫아 걸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비교라는 이름의 성벽을 쌓고 있다고요.
실제로 비교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월감의 성벽을 쌓고, 어떤 사람은 열등감의 성벽을 쌓습니다. 우월감 때문에, 열등감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또 상처라는 이름의 방어벽이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상처를 받다 보니까 보호막을 치는 것이죠. 보이지는 않지만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게 유리벽 같은 성벽을 쌓아놓는 겁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불신의 성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현대인들, 특별히 많은 젊은이들이 쌓고 있는 성벽이 또 있습니다. 바로 필터라는 성벽입니다. SNS의 필터 말입니다. 숨는 것이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의 진짜 모습, 나의 약함, 나의 고민은 다 필터링해서 감추고, 편집된 모습, 화려한 모습만 내놓는 거예요. 이것을 편집된 자아라고 하죠.
그런데 이 성벽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실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아무도 내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투명한 유리벽 안에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상실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도 그렇고 그리스도인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나 중심이 되어서 내가 받는 은혜, 나의 축복, 조금 더 나아가면 우리 교회 제일주의, 우리 교회 부흥, 이런 울타리 안에 갇혀 버리면 교제가 끊어집니다. 오히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상대가 되어 버립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자유로웠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투명한 유리벽이 아니라 진짜 감옥의 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한없이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늘 우리 현대인들은 자유인처럼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 만든 성벽과 감옥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해, 특별히 우리 젊은이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이제 그 성벽을 허물고 나오라.”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에베소서 4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기서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개인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개인의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공동체로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고, 좋았고, 좋았다고 하시다가 마지막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등장합니다. 무엇입니까?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시고 공동체를 형성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르심이 관계로의 부르심이며 공동체로의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바울은 우리에게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면하면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공동체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것이 바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쌓아 올린 성벽을 허물고 서로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만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내 형제도, 내 이웃도, 우리 성도들도 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받으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아름다운 공동체, 성도의 공동체, 연합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를 벗어나고, 나 중심적인 사고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들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 여러분 나 중심적인 사고는 겸손 앞에서 무너집니다.
온유,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다른 점도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오래 참음, 그것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됨
그런데 이 공동체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연합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미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교회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됨을 파괴하려는 어둠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분열시키고, 멀어지게 만들고, 연합이 아니라 흩어지게 만드는 어둠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것을 대적하여 우리는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교회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개교회주의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모습은 연합이 아니라 경쟁으로 변질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웃 교회가 요즘 시험이 늘었대.” “어렵대.” “교인들이 흩어진대.” 그러면 같은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마음 아파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런데 겉으로는 “참 안 됐네, 기도해 드려야겠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러면 우리 교회에 몇 사람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는 거예요.
연합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겉으로 같이 모였다고 해서 연합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나 중심의 생각, 개교회주의를 내려놓고, 서로를 품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진짜 연합입니다.
일곱 가지 하나됨
바울은 왜 우리가 하나 됨을 지켜야 하는지를 4절부터 6절까지 아주 강하게 강조합니다. 일곱 가지 하나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몸도 하나입니다.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소망도 하나입니다.
주도 한 분이십니다.
믿음도 하나입니다.
세례도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같은 소망입니다. 우리가 주라고 부르는 분도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받은 믿음도 하나이고, 우리가 받은 세례도 하나이며, 우리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하나 됨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파괴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관계를 깨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격합니다.
동목회를 만들었던 이유
제가 1997년도에 캘리포니아에서 목회하다가 뉴저지에 와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필그림 교회를 개척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동목회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동목회가 뭔지 아세요? 동네 목사회입니다.
왜 이것을 만들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회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서 첫 담임목회를 할 때, 제 안에는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 교회가 어떻게 해서든 성장해야 한다. 빨리 급성장해서 내가 유능한 목사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여섯이었습니다. 목회가 뭔지도 잘 모르고, 그저 교회를 숫자적으로 부흥시키면 목회를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양적 성장을 위해 뛰었습니다. 실제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350명 모이던 교회가 몇 년 만에 700명, 800명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두 가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제 내면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교회가 성장하는데, 제 내면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으로 교회 성장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성장한 것 같지만 제 영혼은 메말라 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이웃 교회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새로 온 분들을 보니까 거의가 다 다른 교회에서 수평이동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내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은 주변의 다른 교회들이 약화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나는 목회자가 아니라 경쟁자처럼 살고 있었구나. 교회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주변 교회들은 약해지고, 우리는 영혼 구원이 아니라 서로 다른 교회 교인들을 데려오며 경쟁하고 있었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것을 왼쪽 주머니에 옮겨 넣은 것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뉴저지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제일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동목회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동네 목사들이 모이자, 함께 연합하자.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 보니, 러브 뉴저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연합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네 교회가 같이 모였는데, 지금은 30개가 넘는 교회가 러브 뉴저지로 모여 함께 연합하고 있고, 오늘 같은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러브 뉴저지는 단순한 모임이 아닙니다. 이 뉴저지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선교적 목적을 가지고 교회들이 연합하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의 간증
이 연합 안에서 참 아름다운 간증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성도들과 함께 일일부흥회를 돌아가며 하다 보니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형제교회다. 단순한 이웃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르심을 받은 형제교회다”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몇 년 후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러브 뉴저지에 와서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변하셨습니까?”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한인교회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비교의식이 생겼습니다. ‘어휴, 파킹장이 우리 교회보다 좋네.’ ‘아유, 건물 위치가 훨씬 낫네.’ ‘저 교회는 우리 교회와 비교가 안 되네.’ 그러면서 자꾸 비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릅니다. 이제는 운전하고 지나가면서도 그 교회를 축복하게 됩니다. 주님, 이 교회를 축복해 주십시오. 이 교회가 부흥하게 해 주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되어야 됩니다. 서로 부흥해야 됩니다. 왜요? 우리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연합의 비밀
여러분, 교회는 많이 모였다고 해서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벽돌이 잘 쌓여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세워져 가야 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되고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단지 눈에 보이는 교회 하나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교회들이 서로 연결되어, 뉴저지라는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지 안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들, 악한 영들을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싸워 이겨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합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세쿼이아 파크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레드우드 나무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3천 년, 4천 년 된 나무도 있고 높이는 100미터가 넘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큰 나무는 뿌리가 얼마나 깊을까? 그런데 의외로 그 뿌리는 2~3미터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나무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서 있을 수 있느냐?
비밀은 뿌리가 깊은 것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옆 나무의 뿌리와, 또 옆 나무의 뿌리와 서로 interlock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로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지탱해 주는 겁니다.
몇천 년을 강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각자 홀로 서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붙들어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것이 연합의 비밀입니다.
우리의 뿌리는 아래로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넓게 퍼져나가야 합니다. 교회들마다, 성도들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더 넓게 관계를 확장해 나가며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힘은 눈에 보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힘과 능력과 구원과 승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연합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전쟁을 싸워 이기게 만듭니다.
이제는 연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 교회가 개교회주의를 앞세울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가 위기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민교회는 더 그렇습니다. 더 이상 이민도 많지 않고, 유학생 수도 줄어들고, 우리 2세들은 영어권으로 가고, 또 영어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교회는 자기 존재를 위해서라도 연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홀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고, 연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나 됨을 굳게 지켜나갈 때 교회의 본질을 살려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저는 이 연합이 우리 청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대부분 작은 교회들입니다. 청년들이 많지 않습니다. 두세 사람, 너댓 명 모이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모여 50명, 60명이 되어 함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 될 줄 믿습니다.
맺는말
연합하게 하신 하나님,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이제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연합해 나아가는 러브 뉴저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를 구원과 영생으로 부르실 때 나 하나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 부르심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하나님, 러브 뉴저지를 통하여 예수 중심으로 연합된 이 아름다운 모습이 영적 전쟁을 힘 있게 싸워 이기는 원동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청년들이 연합할 때, 하나님 아버지, 아침 이슬 같은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연합하여 이 험한 세상, 자기 자신만을 앞세우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연합하고,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청년 연합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셔서 더욱더 사랑으로, 믿음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는 우리 러브 뉴저지와 청년연합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