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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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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 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야곱

본문: 창세기 49장 1-4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말을 언제 하겠습니까?

사람이 가장 진실된 말을 언제 하겠습니까?

죽을 때 합니다.

유언은 일생을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중요한 말, 가장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자녀들을 비록 막나니고 불효자라 하더라도 부모의 마지막 유언은 경청해서 듣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유언을 들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저의 부모님이 전혀 죽음을 예견하고 있지 않을 때 갑자기 돌아 가셔서 유언을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인생의 삶을 다 마치는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의 자녀들에게 무엇이라고 유언하겠습니까?

다윗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찌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 28:9)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야곱의 마지막 유언의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아들들을 다 불러다 놓고 한 사람씩 그 사람에 맞는 축복을 줍니다.

야곱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을 하는데 유언과 축복와 예언이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이 유언은 야곱이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하신 축복은 나중에 일어날 일로써 하나님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유언의 내용은 자기 시신을 애굽 땅에 묻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묻어 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2절,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 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이 말은 단순한 야곱의 말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말씀을 야곱을 통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들에게 하는 말이면서도 마치 제 삼자가 하는 말처럼 “야곱의 아들들아 모이라”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때에 특별히 하는 말은 마음을 다하여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는 그 말이 그 자식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합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안 듣고 잘 되는 자식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부모의 말을 정확하게 잘 듣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와 자녀들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서로 다르고 세대 차이가 나서 대화가 안된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모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데 자녀들은 이것을 잔소리만 듣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집 밖으로만 나가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공통 분모는 하나님이어야 하고 신앙이어야 하고 성경 말씀이어야 합니다.

가정의 뿌리가 하나님이고 정신적 지주도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경외하는 하나님이 곧 자녀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세대간 격차도 없어지고 문화적 격차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자녀에게 줄 유산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정, 믿음을 전승하는 가정, 믿음을 강조하는 유언을 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말아라”라고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가 자녀를 위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이 자녀들에게 한 유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은 르우벤에 대한 축복 기도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탁월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르우벤은 장자로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총기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능력이 있고 탁월하고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그를 가르켜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야곱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입니다. 야곱은 동생 라헬을 더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던 레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고 너무 기쁜 나머지 레아는 “보라 아들이라”고 외치면서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레아에게 르우벤의 존재는 자기 축복의 근거였고 구원의 기쁨 소식이었습니다.

아들의 탄생은 이제부터 남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랑의 소망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아 오던 나의 심정을 아셨다.

그래서 내 괴로움을 아시고 아들을 주셨다.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라헬보다 더 사랑하겠지”

라는 기대를 주었던 아들이 바로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은 축복된 존재입니다.

그는 성격도 좋은 사람입니다.

모든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에도 그를 살리기 위해서 요셉을 구덩이에 넣었다가 몰래 살려 줄 생각을 할만큼 정이 있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냐민을 애굽에 데리려 가려고 할 때에도 자기 자신의 아들들을 걸고 베냐민을 책임지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르우벤은 인간적으로도 좋은 자질을 갖고 장자로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 입니까?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꿇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여기에 “마는”이 문제입니다.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

“다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이것이 문제입니다,

“너는 다 좋은데 이것만은 안 좋아.”

그러면 앞에 있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뒤에 안 좋은 것 때문에 앞에 있는 것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처음보다 나중 것이 더 좋아야 합니다.

“너는 비록 못 생겼지만 공부도 잘하고 사람이 좋아”라고 해야지,

“너는 잘 생겼지만 싹아지가 없어 글러 먹었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르우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좋은 기질에도 불구하고 물의 꿇음과 같았기 대문에 탁월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기대와 축복속에 태어난 아들이 한가지 문제점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물의 꿇음 같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이 요동질을 하는 것입니다.

물이 꿇는 과정을 보세요.

안정성이 없는 불안정스러운 모습입니다.

냄비나 주전자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 놓았을 때 한번 꿇어 넘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흘러 내리다가 결국에는 그 안에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혼자 자기 기질을 다 드러내더니 모든 기회와 능력과 다른 사람의 신뢰를 다 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르우벤은 탁월했지만 물의 끓음 같은 그의 기질 때문에 탁월치 못했습니다.


탁월치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4절,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렵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했습니다.


창세기 35장에 이 기록이 자세히 나옵니다.

22절,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아버지의 아내 즉 자기의 계모를 범한 패륜아가 된 아들입니다.

세상에 자기 양어머니와 윤간하는 아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르우벤은 자기 아버지의 위신과 체통을 손상시키고 가문을 더럽혔습니다.

그는 자기의 정욕을 정복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침상을 범했기에 그의 정욕이 물을 꿇음 같아 탁월치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탁월함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물의 꿇는 것과 같은 정욕 앞에 굴복하여 자신의 인생을 망쳐 버렸습니다.

육적인 욕망의 포로가 되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장자이면서도 장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능력이고 아버지의 기력의 시작이고 힘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범죄는 장자의 명분을 그에게서 빼앗아 가고 그에게 있던 능력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능력도 특권도 죄는 다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죄는 그 사람이 현재 아무리 중요한 위치 있고 많은 특권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그 특권을 다 빼앗아 버립니다.

내가 지금 능력이 많고 가진 것이 많다고 할지라고 범죄는 나에게 있는 모든 축복과 능력을 빼앗아 버립니다.

범죄에서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라도 그 말을 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자신의 입술을 하나님의 성령 안에 맡겨서 냉정하게 말들을 잘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분을 내고 싶은 순간이고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순간을 성령님의 은혜 속게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범죄를 막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 능력 그대로 다 나타내고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세요.

범죄하지 마세요.

아무리 좋은 능력이 있더라도 범죄하면 그것이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를 없애지 않고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집에는 큰 그릇, 작은 그릇 다 있습니다.

모든 그릇을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없는 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입니까? 더러운 그릇입니다.

더러운 그릇은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 그릇을 깨끗이 씻지 않고는 결코 사용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죄를 멀리하고 절제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능력과 축복을 다 발휘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한번의 범죄로 모든 것을 잃어 버립니다.

르우벤은 이 한번의 실수로 아름다운 능력과 기회를 다 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계모와 간음하는 자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범죄로 인하여 이제부터 목숨만 부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끼어서 살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다시 장자의 권리도 행사할 수 없고 이스라엘 가정의 리더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냥 이스라엘 안에서 평범하게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오히려 르우벤 자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사람이 똑똑하면 더 범죄하기 쉽습니다.

좋은 머리를 가지고 남을 이롭게 하고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면 될텐데 그러지 못합니다.

사기도 머리 좋은 사람들이 치지, 머리 나쁜 사람은 남도 못 속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가만 있지 않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너무 똑똑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신앙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고 하고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넘어 집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자기에게만 만족하지 못합니다.

남의 신앙까지도 참견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 형편 없느니? 나쁘니?’ 따집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반드시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직성이 풀리고 대화도 자기 중심이 되어 주도권을 잡아 모든 사람의 관심의 대상으로 인기를 끌어야만 만족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교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르우벤에게 이 무서운 말씀을 축복으로 남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르우벤이나 그의 자손들에게 교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축복을 끝까지 누리고 싶다면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말고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그 자체로만 만족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시 리더십을 장악하려고 하고 다시 최고가 되려고 한다면 영원한 세계 밖으로 튕겨 나가고 말 것이다는 경고입니다.


실제로 르우벤 지파에서는 단 한명도 이스라엘 지도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말없이 충성하며 그냥 평범하게 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열심을 내고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초신자나 신앙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대로 순종하며 따라갑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고 신앙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꼭 자기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말썽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질을 신앙의 은사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질을 함부로 발휘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솥뚜껑으로 꽉 눌러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튕겨 나가고 맙니다.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 안 됩니다.

솥뚜껑으로 꽉 눌러서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오히려 소처럼 평범하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불행한 큰 아들 르우벤을 보세요.

그는 장자의 자격을 박탈 당했습니다.

단 한번의 범죄로 모든 것이 끝장나 버렸습니다.

범죄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열 두 아들의 장자가 한 순간의 욕정을 참지 못하여 그가 가진 모든 특권과 축복을 잃어 버립니다.

르우벤은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자제력과 훈련의 부족으로 모두 잃었습니다.


역대상 5장 1절에 “르우벤에게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하지 말라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의 장자권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 가 버렸습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장자권을 한 순간의 범죄로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르우벤에게도 안타깝지만 그의 후손의 입장에서도 안타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의 범죄가 이렇게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한번의 범죄로 모든 것이 끝장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축복을 다 빼앗아 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습니까?

열번 잘 해 주다가 한번 잘못 해 주면 그 한번 때문에 원수가 됩니다.

10년동안 좋은 관계를 맺다가도 단 한번의 틀어 진 것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붏히고 다시 마주 대하지 않습니다.

조상 한 사람의 잘못이 그렇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살아 가면서 매일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할지라도 결정적인 죄는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는 다 죄지만 자기의 삶과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죄는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레아가 맨 처음에 이 아들을 낳고 얼마나 좋았던지 “보라 아들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아들에게 얼마나 큰 기대와 희망을 두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아들은 어머니 가슴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실망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르우벤처럼 하나님의 큰 기대를 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운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자녀로 삼아 주시고 많은 축복을 주시면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님과 만나는 그 순간 많은 기대와 축복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그 축복들을 받으며 누리고 있습니까?

자주 흔들리고,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주 갈등과 방황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범죄 때문입니다.

죄는 나에게서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만족도 행복도 없습니다.

죄가 그렇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죄를 안 짓기 위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범죄로 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들을 다 받으시며 누리시기 바랍니다


세째로,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돌아 와야 합니다.

르우벤의 죄는 죽임을 당해야 마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33장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을 합니다.

그 때 르우벤을 제일 먼저 언급하면서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라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라고 말합니다 (6절)

이 말씀은 “르우벤이 비록 범죄했지만 르우벤 지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다 거두어 가지는 마십시오”라는 모세의 강렬한 열망과 축복의 기도가 내려집니다.

이 모세의 축복을 보세요.

죄는 우리에게서 특권과 능력을 빼앗아 갔지만 그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다시 돌아 올 때에 주님은 다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용서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르우벤은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이 아닙니다.

단 한번의 범죄로 우리가 영원히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번의 범죄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만 하면 다시 번성과 풍요와 능력의 삶을 향한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르우벤은 범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이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번의 범죄로 우리가 영원히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번성과 풍요와 능력을 누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보세요.

그리스도인이 범죄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구주로 믿었는데 범죄한다고 구원을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범죄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제를 단절시킵니다.

능력도 거두어 가고 축복도 거두어 갈 때가 있습니다.

한 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던 사람도 범죄하면 하나님 앞에 쓰임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면 됩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자백’이라는 말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서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내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범한 죄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범죄라고 했으면 죄입니다.

결코 세상적인 도덕적 수준에 의해 결정해서 안됩니다.

하나님만이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주님이 이것을 죄라고 했으면 “주님! 옳습니다.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인정하고 그 죄를 포기하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자백이고 이 자백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축복이 회복됩니다.

죄는 범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단 한번의 죄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범죄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 오시기 바랍니다.

죄를 회개만 하면 다시 하나님 앞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했지만 그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르우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형편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시간이 지나고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많이 받고, 신앙도 점점 더 좋아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날이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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