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배] '더 나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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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나은 의’
본문: 마태복음 5장 13-20절
설교: 김순배 목사(하나님이꿈꾸는교회)
예수님의 산상 수훈이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모든 병과 약한 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갈릴리 지역 뿐만 아니라 데가볼리와 남쪽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무리들이 모여들자 언덕에 오르셔서 무리들과 제자들 앞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첫 가르침으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한 조건이자 천국 시민이 지켜야 할 규범인 팔복의 삶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를 사모하고, 긍휼을 베풀며,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게 하며, 당신을 위해 박해를 견디는 삶이 복 있는 삶인 것은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팔복을 따라 살아가는 자,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행실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소금과 빛에 비유하십니다.
너희는 소금과 빛이 되라고 명하지 않고 소금과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너희는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아닌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은 지금 무리들이 아닌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소금으로 비유하시며, 소금의 짠맛을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은 여러 용도로 쓰여지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짠 맛을 가지고 맛을 돋우는 것과 부패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다량의 불순물을 함유하게 되면 그 짠 맛을 잃어버리게 되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고 그 결과 밖에 버려집니다.
제자들의 정체가 소금이라는 것은 소금이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 유지되는 그 짠 맛으로 인해 세상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과 같이, 제자들도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세상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빛으로 비유하시며, 착한 행실의 실천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의 존재의 목적은 어둠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빛은 그 빛을 잃을 가능성은 없지만 어떤 물체에 가려져 비출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등불을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둡니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밝히 비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상은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에 근거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열방의 빛으로 표현했습니다.
열방을 비추는 사역은 여호와의 종이 수행하는 사명이므로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은 자들은 종의 정체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예수님은 흑암에 앉은 백성과 그늘에 앉은 자들의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이사야가 예언한 최고의 빛이십니다.
이 빛의 사명이 예수님에게서 제자들에게로 위임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빛이라고 하십니다.
에수님 안에서 제자들은 빛입니다.
빛과 소금은 제자들의 존재와 역할을 선언합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이 빛을 비추는 것은 구체적인 행동을 동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행동을 제자들의 ‘착한 행실’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름을 받는 순간부터 세상을 밝힐 뿐 아니라 세상에 노출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선한 행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반면 악한 행실은 아무리 몰래 숨어서 했다 해도 반드시 드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제자들의 착한 행실은 앞에 언급한 팔복과 17절에서 20절에 나오는 ‘더 나은 의’와 직결됩니다.
이제부터 산상 수훈의 본론입니다.
제자들의 신앙 윤리에 대한 예수님의 명료한 가르침이 상세히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달랐습니다.
전통적인 율법 교훈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우려를 자아냈고, 예수님을 가리켜 율법의 전통을 파괴 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예언을 무효화하거나 취소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선언하심으로 율법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의 오심이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취였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예언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온 것이니 당신이 오신 목적에 대해 오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며, 그것을 가능하게 할 메시아 시대가 도래 했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은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구원사적 차원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구원사를 완성하시는 메시아라는 점에서 율법은 그로 말미암아 완전해집니다.
율법은 구약 역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가 가져온 천국에서 완성됩니다.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메사아이신 에수님께서 오신다고 사라지거나 파괴되지 않습니다.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파괴하지 않고 완전하게 하시는 율법을 제자들에게 적용하십니다.
그 온전한 율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제자들도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 가운데서 이 율법을 일점일획도 파괴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경시하는 태도로 누군가를 가르쳐서도 안됩니다.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의를 두고 종교 지도자들과 제자들을 대조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생각했던 의는 무엇입니까?
율법주의가 낳은 ‘자기 의' 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제자들의 의는 문자적인 준수가 아닌 관계적 준수입니다.
율법적 준수가 아니라 믿음의 준수입니다.
의로움을 얻기 위한 준수가 아니라 의로움 안에서의 준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의와 전혀 다른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더 나은 의’로 말씀하십니다.
‘더 나은 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의', 곧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새 계명으로 선언된 의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자만이 확보할 수 있는 의입니다.
하늘 나라는 바로 그 ‘의’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하늘 나라에 들어와 있고, 그 나라에서 선포되는 새 계명을 삶의 원리로 듣습니다.
그 계명을 준수하며 사는 것이 그들의 소금과 빛 된 의로운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시는 새 계명에 대한 제자들의 신실한 태도를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산상 수훈은 단순한 도덕 강령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정체성의 선언입니다.
소금과 빛의 정체성은 반드시 삶의 모습, 곧 착한 행실로 나타납니다.
이 착한 행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열매입니다.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삶의 열매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삶의 근거로 종교 지도자들의 ‘자기 의’가 아닌 당신 안에서 주어지는 ‘더 나은 의’를 말씀하십니다.
이 의는 율법을 지켜 얻어내는 의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이미 주어진 의이며 그의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의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삶은 의로워지기 위해 애쓰는 삶이 아니라,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팔복의 삶, 소금과 빛의 삶, 착한 행실의 삶은 모두 이 더 나은 의에서 흘러 나오는 하나의 삶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며 살고 계신지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더 나은 의’에서 흘러 나온 착한 행실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끔 하면서 살고 계신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십시다.
하나님이꿈꾸는교회
Church of Godly Dreams
1323 Highway 34
Aberdeen, NJ 07747
732-688-0558
주일 예배: 오전 9시 3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