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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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욱] 미가의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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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가의 제사장
본문 : 사사기 1814-20
설교 : 양경욱 목사(뉴저지총신대학교 교수)

 

할렐루야!사랑하는 학우 여러분들 그리고 존경하는 교수님들!지난 여름방학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의 건강한 얼굴을 뵈니 참 기쁘고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 동안에는 우리 학교와 총회에 관련된 두 분의 목사님들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분은 뉴욕총신대학 때부터 강의를 맡으신 우리 조정칠 목사님이시고, 또 한 분은 우리 총회에서 서기로 수고해 주셨던 이재성 목사님이십니다.

 

이 분들은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허락하여 주시고, 또한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정칠 목사님께서는 90이라는 장수를 하셨지만, 우리 이재성 목사님은 양년 63세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돌아가셔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남녀노소 빈부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죽는 것으로 끝나면 좋은데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로써 이 분을 나의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영벌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여러분들을 사명자로 부르시고 택하셔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지상 대명령인 복음 전파 사명을 잘 감당하겠다고 각오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때로는 물질만능주의나 다원주의 같은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소명감과 사명감이 약해지고, 희미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사기 18장에 나오는 미가의 제사장을 통하여서 소명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사기 시대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었던 시대로서 사람마다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했던 시대였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부재였고 백성들은 혼란 가운데 살았습니다. 바로 이때 등장한 인물이 미가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별된 레위인임에도 불구하고, 미가 집안의 개인 제사장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단 지파가 더 큰 자리를 약속하자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간 자였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제사장이었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아닌 삯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겼으며 말씀을 따라 산 것이 아니라 자리를 쫓아 살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리의 영광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신앙인들 그리고 신학생, 목회자들 가운데서 미가의 제사장 같은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잘못된 소명의식을 가졌는지 살펴보면서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소명을 붙들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그는 소명을 생계수단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사사기 17장을 보면 이 레위 청년은 유다 산지에서 거류할 곳을 찾다가 미가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성막 섬김의 자리를 떠나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먹고 살 곳을 찾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때 미가가 그에게 너는 내 아버지와 내 제사장이 되라 그러면 내가 은 10개와 옷 한 벌과 먹을 것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가의 집에 눌러앉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소명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먹고 사는 문제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사역지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내 생활이 보장되는가를 따진다면 이미 미가의 제사장과 같은 삯꾼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생활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소명자는 생계보다 소명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다면, 비록 광야 같은 자리일지라도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이고 사명의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는 소명을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미가는 레위 청년을 자기 집 제사장으로 삼으면서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것을 아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레위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말에 묵인하고 동조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신을 세워준 미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정과 보호가 아니라 사람의 인정과 보호 속에 안주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참된 소명은 사람의 인정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참된 소명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참된 소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많은 사역자들이 성도들의 눈치, 교회 내 여론, 당회의 분위기에 맞추어 사역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10절에서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명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말씀을 꼭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명자리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는 소명을 권력과 성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단 지파 사람들이 미가의 집으로 다시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가의 신상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때 제사장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그들에게 저항하지도 않고 그들의 잘못도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네가 한 사람의 집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이스라엘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그들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미가를 버리고 단 지파를 따라갑니다.

 

여러분 얼마나 비참한 장면입니까? 오늘날에도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더 큰 교회, 큰 목회, 더 좋은 보수, 더 화려한 자리만을 추구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보다 사람 앞에서의 성공을 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소명을 변질시키는 일입니다. 진정한 소명은 자리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또 자기의 이름이 알려지느냐 또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학우 여러분들!

 

미가의 제사장은 세 가지 잘못된 소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소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고, 소명을 사람의 인정에 의존했고, 소명을 권력과 성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혹시 나도 조건을 먼저 계산하며 소명을 따지고 있지는 않는가? 혹시 사람들의 인정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있지 않는가? 혹시 더 크고 좋은 자리만 바라보다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작은 사역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신선한 종을 찾고 계십니다.

크든 작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주신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참된 소명자의 길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느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한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자신의 소명의식을 담대히 선포합니다. 학우 여러분!이러한 바울의 소명의식으로 2025학년도 가을학기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과테말라 선교를 통해서 우리 이윤석 목사님께 굉장히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 이윤석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처남 되시는 분이 생사를 다투는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 상황 속에서, 선교의 사명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지 못하고 같이 비행기를 타고 저희들과 함께 과테말라로 가셔서 선교 사역을 다 마치셨습니다.

 

선교 기간 중에 처남께서 소천하셨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인내하시고 정말 충성되이 말씀을 전하면서 철저히 소명을 감당하시는 소명감을 보여주심에 저는 굉장히 감동받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소명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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