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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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민]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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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려놓음

본문 : 창세기 13장 1-13절

설교 : 송호민 목사(한성개혁교회 담임)


창세기 11–13장(데라–아브라함–롯),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는 자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 34주년을 맞이한 주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옆에 계신 한 분 한 분이 교회입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을 한번 바라보실까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여러분은 참 귀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You are so special.


옆 사람에게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이 당신을 언약의 축복의 통로로 삼아주셨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 고 고제철 목사님께서 20년 목양하시던 그 길을 이어, 한국에서 이곳에 와서 14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한성개혁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동행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어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믿음 안에서 소망 가운데 서로 사랑하며 승리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원로목사님께서 생전에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편해야 돼. 편한 마음을 유지해야 돼.”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다 내려놓으면 편해집니다.

자꾸 올려놓으니까 힘든 겁니다. 어려운 겁니다. 내려놓으면 편한데, 자꾸 올려놓으니 떨어질까 불안한 겁니다.


명예, 돈, 사람의 인정… 우리는 자꾸 쌓습니다.

마치 바벨탑을 쌓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내 안에 나를 높이려는 자존심을 쌓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려 합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병듭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인데, 오래 믿었는데, 심지어 목사인데—마음은 점점 굳어져 갑니다. 단단해져 갑니다. 뭡니까? 심령경화증입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 됩니다. Almost Christian, 거의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종교생활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인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I’m nothing. God is my everything.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in the presence of God—“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이 겸손, 이 낮아짐, 한마디로 내려놓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롭고 행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참된 샬롬, 참된 쉼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데라는 ‘가나안’을 향했지만, 하란에서 멈추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나오고, 조카 롯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입니다.


창세기 11장 27절을 보십시오.

“데라는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롯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28절을 보니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먼저 죽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쪽 지역입니다. 여호수아 24장을 보면 데라는 강 저편에서 우상을 섬기던 집안이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섬기던 가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31절을 보십시오.

데라가 아브라함과 손자 롯,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떠납니다.

가나안까지는 약 1100마일, 엄청 먼 길입니다. 중간 지점이 어디입니까? 하란입니다. 오늘날 터키 남동부 지역. 데라는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합니다.


결국 32절,

데라는 205세에 하란에서 죽습니다.

가나안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출발은 했지만, 중간에서 멈춘 인생이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간다


그 후 12장 1절, 하나님이 누구를 부르십니까?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고 12장 4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여러분,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고, 자기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남방, 곧 네게브로 옮겨가며 약속의 땅을 둘러봅니다. 그때는 유목 생활입니다. 텐트를 치고, 철거하고, 또 이동합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갑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3. 그런데 ‘기근’이 오자, 아브라함이 방심한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12장 10절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여러분, 약속의 땅에 왔는데 기근이 있습니다. 현실이 척박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주어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아브라함이 스스로 판단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말씀을 좇지 않습니다. 환경을 보고, 두려움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아브라함은 두려워서 거짓말을 합니다. 아내를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아브라함을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천국의 사냥개”처럼 끝까지 쫓아오셔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는 깨닫고 아브라함을 내보냅니다. 그런데 그냥 내보내지 않습니다. 양과 염소와 많은 재물까지 주어 보냅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13장 1절,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이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이제 다시 올라옵니다.

어디로 갑니까? 베델과 아이 사이, 예전에 장막을 쳤던 자리, 예배하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여기서 깨닫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내려갔다가,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놓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셨다.’

그는 회개하며 결단합니다.

“이제는 내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맡기겠습니다.”


4. 소유가 많아지자 다툼이 생기고, 아브라함은 “네가 먼저 택하라”고 한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깁니다. 13장 5–7절,

아브라함도 소유가 많고, 롯도 소유가 많습니다. 종들도 많고 가축도 많습니다.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결국 목자들끼리 다툼이 납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무엇이라 합니까? 8절,

“우리는 한 친족이라… 서로 다투지 말자.”


여러분, 보통은 누가 먼저 나서야 합니까? 조카 롯이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은 이제 내려놓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자존심을 쌓았습니다. “내가 살 길을 내가 만들겠다.”

그러나 애굽에서 깨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 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먼저 택하지 않습니다.

“롯아, 네가 먼저 택해라.”

아브라함은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견대로 택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맡길 줄 압니다.


5.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택하고, 아브라함은 약속을 붙든다


그런데 10절,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니 소알까지 물이 넉넉합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여러분, 여기 “애굽 땅과 같더라”가 나옵니다.

롯은 애굽이 어떤 곳인지 압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내려갔었습니다. 풍족함이 무엇인지 봤습니다. 그러나 그 풍족함이 하나님과 끊어진 자리에서는 복이 아니라는 것도 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여전히 자기 눈에 좋은 대로 갑니다.

그리고 13절,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여러분, 롯은 원래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작은아버지(삼촌), 우리는 함께 있겠습니다. 종들을 화해시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함께 예배하겠습니다.”

그런데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으로 갑니다.


결과는 우리가 압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심판받습니다.

롯이 잘나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중보, “의인 열 명이라도 있으면”이라는 간구를 하나님이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6.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신다


여러분, 오늘 핵심 구절을 보십시오. 14절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할렐루야.

아브라함이 마음을 비우고,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긴 자리에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12장 10절에는 아브라함이 자기 뜻으로 애굽에 내려갈 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타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 한번 가봐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깨닫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이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 내 뜻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내 소견대로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15절, 16절, 17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롯은 기껏해야 소돔 도시 하나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내가 다 주겠다.”


하나님은 좁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에게 맡기는 자에게, 내려놓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크고 넓고 깊게 역사하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 준비하시는 하나님—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내 생각으로 신앙생활 하지 마십시오.

“내가 30년 믿었는데, 내가 목사인데, 이 정도는 내가 한다”—아닙니다.


*Here and now*,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무릎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You are everything.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7. ‘사탕 실험’— 내 손으로 쥐는 것과, “전도사님이 주세요”의 차이


제가 유치부 전도사 할 때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탕을 바구니에 가득 담아 문 앞에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오는데,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사탕만 보고, 전도사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집어 주머니에 넣습니다. “더 가져가.” 했더니 주머니가 꽉 찹니다. 그래도 더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사탕보다 저를 보고 옵니다.

“전도사님!” 하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웃으며 달려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합니다. “사탕 가져가.”

그러자 그 아이가 말합니다.

“전도사님이 주세요.”


여러분, 제 손이 아이 손보다 큽니다.

저는 뒤에 비닐봉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주세요” 했기에, 훨씬 더 풍성히 담아 줍니다.


앞에서 자기 손으로 집어간 아이가 다시 옵니다.

“왜 저는 이것밖에 안 줘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네가 결정한 거야.”


여러분,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믿음은 내 손으로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세요’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믿음의 사람은 결정해야 할 때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무릎 꿇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잖아요.”


크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매일 내려놓아야 합니다.

매일 십자가 앞에 자신을 못 박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러분 앞에 있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주님의 능하신 손 앞에 내가 무릎 꿇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여 붙들어 주옵소서.”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한성개혁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Sola Gratia.*

하나님이 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앞으로도 끝까지 책임져 주옵소서.”


맺는말: 내려놓음이 믿음이고, 맡김이 축복의 통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려놓음이 무엇입니까?

내 자존심 내려놓고,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단 한 발짝도 가지 않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영적인 자존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여러분,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고백합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내가 높임 받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오직 주님만 높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능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 각자의 삶을 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풍요하심과 위대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목도하고 간증하고 찬송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지난 34년에 걸쳐 한성개혁교회를 도우시고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영원토록 이 교회의 주인 되어 주시고, 주의 뜻과 말씀을 좇아 신실하게 살게 하시며,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편집자 주 : 뉴저지 한성개혁교회 설립 34주년 기념 주일이었던 2026년 3월 1일 주일 예배에서 송호민 목사님이 전한 말씀입니다.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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