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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새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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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 시대의 도래

본문: 마태복음 9장 14 -17절

설교: 김순배 목사(하나님이꿈꾸는교회)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후 마태의 초정에 응하여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베푼 잔치에 참석하셔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본 바리새인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잔치에 참여하신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금식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은 지금은 당신이 가져온 하늘 나라의 생명을 누리며 기뻐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생베와 포도주 비유를 사용하셔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설명하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는지를 묻습니다.

마태는 요한의 제자들이 질문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누가는 바리새인들이 질문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뜻이 일치하여 함께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마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요한은 금식과 기도를 중심으로 한 철저한 금욕 생활을 했습니다.

(마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요한의 제자들도 스승인 요한을 따라서 금식 생활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함께 대속죄일, 제 1,2 성전이 파괴된 날을 애도하는 아빔월 9일 등등 거국적인 금식일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그리고 그외에 수시로 금식했습니다.

더구나 이때는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사생활을 비판한 것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었던 고로 슬퍼하며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의 선구자로 예수에게 세례까지 베푼 자신들의 스승 요한이 잡혀 감옥에 갇혔는데 왜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슬퍼하며 금식하지 않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신랑, 당신의 제자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해 답변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 곧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랑되신 예수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금식의 주인이 당신이심을 가르치십니다.

(마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구약 곳곳에서는 하나님을 신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호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호2: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호2: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호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사54: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54: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사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구약에서 혼인 잔치의 신랑은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당신이 혼인 잔치의 신랑임을 암시하십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를 ‘신랑’으로, 자신을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요 3: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 3: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 3: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요 3: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요 3: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

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 3: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

느니라(요 3: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요 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요 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자신들의 스승인 세례 요한의 말을 상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될 날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예수님 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은 결혼식 잔치에 초대받은 친구들이나 손님들입니다.

그렇다면 금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축하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금식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메시야적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통하여 당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종말의 날에 오실 신랑 곧 메시야이며 따라서 그 예언된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수행하는 사역의 특성을 생베 조각에 비유하셔서 언급하십니다.

(마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생베는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천으로 이것을 물에 빨면 줄어듭니다.

따라서 생베 조각을 기존의 낡은 옷에 대고 기울 경우, 세탁시 생베가 오그라들며 낡은 옷을 잡아 당겨 오히려 옷이 찟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옷감을 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생베 조각은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늘 나라 복음, 낡은 옷은 금식과 같은 옛 시대의 관습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유대교 교리는 금식과 금욕주의적 의식들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당신의 새 복음과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옛 종교인 유대교에 접붙일 경우 마치 낡은 옷처럼 새로운 복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당신이 수행하는 사역의 특성을 포도주에 비유하셔서 언급하십니다.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가죽 부대는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통째로 벗겨낸 후 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기워 만든 것으로 포도주와 같은 액체를 담아 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낡은 가죽 부대는 신축성이 없어 새 술을 담아 두면 새 술에서 생겨나는 발효력을 감당 하지 못하고 터져 버립니다.

그런 연유로 새 술을 담을 경우 반드시 새로 만든 가죽 부대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서 포도주를 수식하는 ‘새’는 네오스(Neos) 곧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부대’를 수식하는 ‘새’는 카이노스(Kainos) 곧 질적 본질적으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질적 으로 재창조된 것을 의미합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을 통해 확장하는 하늘 나라 복음이고, 낡은 가죽 부대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틀을 상징합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진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유대교에 담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지금 새로이 시작하고 있는 당신의 가르침, 복음은 형식과 전통의 종교인 유대교가 아닌 새로운 조직 속에 부어 넣어져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명력이 약한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에 생명력이 충만한 예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신의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새 언약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새 언약은 옛 언약에 대한 완성이자 그 최종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단지 율법을 조금 고치거나 기존의 종교에 몇 가지를 덧붙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 십니다. 

예수님은 새 시대를 여시는 분, 새 언약을 이루시는 분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성령의 시대를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의 비유를 통해 옛 종교의 형식과 전통 속에 하나님 나라의 새 생명을 담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이나 유대교 종교 체제로는 역동적인 새 시대를 담을 수 없습니다.

금식과 의식과 규례만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생명력 없는 형식적인 종교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로 부르셨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슬픔과 형식의 삶이 아니라 기쁨과 생명의 삶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우리 안에서 계속 자라나고 확장됩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이 메시야 당신의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것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신랑이 고난을 받아 땅에서 사라지는 것은 잔치의 의미가 퇴색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잔치를 즐기는 자들을 위해 신랑이 희생당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잔치의 즐거움을 누리는 제자들은 새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희생을 잊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원칙과 삶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율법주의 권위주의 근본주의 등을 버리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담아야 합니다. 

낡은 가죽 부대처럼 옛 습관과 형식에 매여 살아가지 말고,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역사에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지십시다.

그러기 위해 겸손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십시다.


하나님이꿈꾸는교회
Church of Godly Dreams

1323 Highway 34

Aberdeen, NJ 07747

732-688-0558

www.cgdreams.org

주일 예배: 오전 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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