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설교
65d9ce0aad4cf30638b12814f6426a9b_1738541965_4572.jpg

 
 

[김순배]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작성자 정보

  • 복음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목: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본문: 마태복음 9장 1-13절

설교: 김순배 목사(하나님이꿈꾸는교회)


예수님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떠나달라는 가다라 지방 사람들의 요청에 폭풍을 잠재우고 건너왔던 갈릴리 바다를 건너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마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본 동네’는 예수님의 사역의 주 거점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가버나움을 말합니다.

가버나움은 당시 갈릴리 지방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오시기 전까지는 나사렛에서 거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중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들은 중풍병자의 친구들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침상에 누운 중풍 걸린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아갈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침상을 줄에 매달아 예수님 앞에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중풍병자의 질병이 그가 지은 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타락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중풍에 걸렸고 그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예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아시고 질병의 치유 뿐만 아니라 질병의 근본 원인까지도 모두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들의 열심적인 행동을 보지 않고 그들의 믿음 곧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능력이 있음을 믿는 믿음을 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란 중풍병자까지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의 마음 속 생각까지도 다 아십니다.

실로 구원의 은총은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유대인들은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이 1년간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도 아닌 목수의 아들 예수가 대속죄일도 아닌 날 죄 용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가 하나님의 고유 영역을 침해하였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오르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죄 사함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의 악한 생각을 책망하십니다.

(마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예수님은 이같이 담대하게 죄 사힘을 선포하는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 성실하게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의 말씀을 트집잡아 파멸시키려드는 서기관들에게 어찌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에게 죄 사함과 병 고침 중 어떤 것이 더 쉬운 지를 물으십니다.

(마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어렵지요.

죄 사함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지만 병 고치는 이적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자자들도 가능합니다.

그럴지라도 죄 사함은 그 자리에서 당장 확인할 수 없기에 당장 확인 가능한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보다 더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지 아니하고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한 이유를 당신의 신적 권능을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 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 대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 하심으로써 당신이 죄를 사하시는 권능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당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속죄는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의 제물이 되심으로써 속죄의 영원한 초석을 마련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으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이 알아 듣기 쉽게 “일어나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은 선지자 정도로 여겼습니다.

(마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중풍병자는 믿음을 통해 병 고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죄 사함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건장한 육체 뿐만 아니라 건강한 영혼도 얻게 된 것입니다.

영육 동시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병 고치는 능력 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세까지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심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 역사를 행사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를 보고 제자로 부르시고, 이에 세리 마태는 주저없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본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저자가 바로 이 마태입니다. 

마태는 후에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 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의 세관은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었습니다.

본봉왕 헤롯 안디바의 정치 자금의 원천이기도 했구요.

세리들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일부를 착복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매우 악랄하게 세금을 착취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이들을 매국노나 배신자로 여겼습니다.


마태 자신도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예수님을 주목했고,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직접 마태를 찾아가 그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자신과 같은 죄인을 찾아 오신 예수님께 감사했으며 감격했습니다.

그리하여 부르심에 즉각 순종했고 예수님과 일행들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마태는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대해서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게 했습니다.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유대인 사회에서 식사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확인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이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관점에서 가히 혁명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예수님께 직접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 사이를 이간하려고 했거나, 아니면 권능을 행하신 예수님께 직접 말할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 죄인들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불의를 도모하는 자들과 교제 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결코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고 벌주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함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의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병자들 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 당신은 죄인들을 구하려 오셨으며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당신의 임무라는 것입니다.

자칭 의인인 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함께 하실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통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냉소적으로 성경을 더 배우라고 하십니다.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한마디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착각을 지적하고 자만을 질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능통하다고 자만하면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동기를 무시 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게을리하고 오로지 외적인 의식과 형식에만 매달렸습니다.

모양새만 갖추면 종교적 임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행위를 설명할 목적으로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십니다.

(호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이 호세아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똑같이 종교의 핵심은 잊고 형식적인 의식에만 치중하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종교적인 의식만 중요시하는 외형적인 틀 안에만 있으면서 자신들이 의인인 양 목을 곧게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신 이 말씀은 제사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식보다 소외된 자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자비가 우선 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긍휼의 마음이나 실천없이 제의적인 규례에만 집중하는 것은 성경과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의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럴지라도 여기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죄인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칭 의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천국의 잔치에 초대하여 교제를 나누고 회개케 하여 구원을 주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는 죄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저런 변명들을 늘어 놓으면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지만, 정작 궁극적인 원인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그로 인해 육체적인 질병을 얻기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도 그랬고 세리 마태도 그랬습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을 비난했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며 그들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육체의 병을 고쳐 주셨고 또 제자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죄 문제로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받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중풍병자처럼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 걸으십시요!

마태처럼 말씀에 순종하여 즉각 따르십시요!


예수님은 단지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능력자가 아니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구원자 이십니다.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십시다.


하나님이꿈꾸는교회

Church of Godly Dreams

1323 Highway 34

Aberdeen, NJ 07747

732-688-0558

www.cgdreams.org

주일 예배: 오전 9시 30분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9 / 1 페이지
번호
제 목
이름

ⓒ 복음뉴스(BogEumNews.Com)

최신글 모음


새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