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신] 편견을 벗어 던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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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편견을 벗어 던지고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설교 : 정형신 목사(뉴코리아교회)
저희 교회는 서울 김포공항이 있는 강서구 가양동에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만 천여 명의 탈북민 이웃들이 살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세 달 동안 정착 교육 과정을 마치고 각 지역으로 배정되는데, 보통 도시 외곽에 있는 임대 아파트로 갑니다. 그래서 특정 지역에 많은 인원들이 모여 살게 됩니다. 그렇게 지금 대한민국에는 3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한 땅의 문을 여실 때 이분들을 선하게 사용하실 텐데 여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시작된 탈북민 교회가 지난 20년 동안 전국에 90개가 넘게 개척이 되었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교회 개척입니다. 하나님께서 북한 사람들을 북한 밖으로 내보내셔서 먼저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문이 열릴 것을 대비해서 남한 땅에 임시로 세워진 북한 교회가 바로 탈북민 교회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뉴저지 한인 교회들과 우리 탈북민 교회들이 만나서 함께 동역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한 지역의 교회들이 같은 마음을 품고 이렇게 단계적으로 북한 선교를 준비해 나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뉴저지 한인교회가 참 좋은 선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과정에 뉴저지 쥬빌리와 NOVO North Korea, 통일소망선교회, 북한기독교총연합회가 역할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저희 교회는 올해부터 뉴저지 한성개혁교회와 동행을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송호민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안부 인사드립니다. 누군가는 심고 누군가는 물을 주고 누군가는 열매를 거두는 이 사역에 우리가 함께 동역하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들의 기도의 결과인 줄 믿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난 2011년에 탈북민 성도 3명이 모여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탈북민 성도들과 남한 성도들, 실향민 성도들, 조선족 성도들, 중국 한족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에 CCC라는 선교 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에 1년 나가 있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변에 나가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옷을 이렇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슴에 김일성 뱃지를 달고 오와 열을 맞춰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북한이 제 가슴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처음 섬긴 목사님이 북한에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가장 처음 섬긴 성도들도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가장 처음 섬긴 교회도 북한에서 오신 분들을 위해 세워진 교회였어요. 지금 저희 교회도 북한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시작된 교회입니다.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제 아내도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자매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딱 한 길로만 안내하셨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어요. 하나님! 앞으로 10년 후에 저를 북한으로 보내주세요. 그때가 2008년입니다.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제 기도를 안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서울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를 북한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주변으로 북한 사람들을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있는 그곳을 또 다른 북한으로 만드셨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자매와 한 가정을 이루고 북한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새로운 북한 땅에 들어가 살 것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북한 선교라고 생각하면 너무 멀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사람만 하면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가족의 일이 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한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북한 선교는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닌 거예요.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우리 형제들의 해방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과 북한 주민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북한 선교는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다음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10장 본문에는 위기를 만난 한 사람을 대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행동이 나옵니다. 흔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부르는데요.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오죠. 강도 만난 사람, 도와준 사람, 안 도와준 사람, 이 비유를 보면서 내가 바로 강도 만난 사람이다, 이렇게 적용해 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나를 안 도와준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북한 주민들을 강도 만난 사람에 비유하는데요. 강도 만난 사람들의 눈에는 북한을 품고 기도하는 성도는 좋은 성도가 되고 북한 선교 안 하는 교회는 잘못된 교회가 됩니다. 우리가 그런 눈으로 주변 상황을 판단할 때가 참 많지 않습니까? 내가 강도 만난 사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상대방은 갈등하게 됩니다. 도와줘야 되나? 그냥 모른 체 해야 되나?
여러분!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시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사람들입니다. 도와줄 것인가? 안 도와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나는 강도 만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적용해 버려도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라는 강도의 위협으로부터 언제나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강도 만난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의 위치에 있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바라볼 때 불쌍하고 처량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 눈빛이 얼마나 싫은지 우리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율법 교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에게 누가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 속에는 ‘유대인은 옳고 사마리아인은 틀리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관계 속에서 수백 년 동안 내려오는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북 이스라엘 지파의 후예들이지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북쪽은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이루게 되고 남쪽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남유다가 됩니다. 수백 년 후에 두 나라가 망하는데요.
남유다는 각 지파의 혈통을 유지하면서 내려오게 됩니다. 반면에 북이스라엘은 이방 민족들과 피가 섞여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 앞에서 순결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남유다 사람들이 신약의 유대인들이 됩니다. 이런 자부심이 있는 유대인들이 바로 옆에 사는 북 이스라엘의 후예들을 짐승 취급했던 거예요. 남유다의 혈통인 우리는 옳고 하나님을 배반한 너희는 틀리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집단 중심의 사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편견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것을 건드리신 거예요. 유대인이 옳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리아인이 옳은 것도 아니다.
특정 집단이 옳은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바로 그 사람이 옳다. 사회적인 편견을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셨습니다. 세리와 창녀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만난 복음은 편견이 없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품고 기도하다 보면 수많은 편견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북한 선교는 열매가 없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난 19년 동안 북한과 관련된 참 많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북한 선교의 현장에 있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회의감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나?’ 하는 실망감이 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북한을 품고 기도해온 분들이 정작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과 한국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참 이상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돈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교회들이 정작 북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운 탈북민 교회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참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까 이분들의 관심이 북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 땅에 있더라고요.
북한 땅을 변화시켜 달라고 수십 년을 기도했는데 북한 땅이 변해요? 안 변해요. 안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더라! 실족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북한이 핵을 쏘아 올리면 기도가 멈춰지는 것입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북한 선교의 관심이 자기도 모르게 북한 땅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선교의 열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 선교의 열매를 북한 땅이 아니라 북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많은 북한 선교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3만 명의 북한 사람들 중에 통계상으로 무려 1만 명의 탈북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전도사가 된 분들이 최소 200명입니다.
전국의 신학교에는 70여 명의 탈북민 신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통해 시작된 탈북민 교회가 전국에 90개가 넘게 개척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 기독교인 비율은 20%가 채 안 됩니다. 그런데 탈북민들의 기독교인 비율은 40%가 넘습니다. 2배 이상 높아요. 대한민국 국민 500명당 1명이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탈북민들은 150명당 1명이 목사 전도사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배 이상 높아요. 대한민국 전체 인구 천 명당 교회 한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탈북민교회는 전체 탈북민 인구 400명당 교회 한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2.5배 높습니다.
국내 탈북민들만 해서 이 정도이고 중국이나 러시아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까지 더하면 훨씬 더 많은 수치가 나옵니다.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학습 받아온 북한 주민들의 복음화 비율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기도와 수고의 열매인 것입니다. 1990년대 말에 하나님께서 북한 땅을 흔드셨지요. 우리는 그것을 고난의 행군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틈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북한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그때부터 북한 선교는 땅을 통한 선교가 아니라 사람을 통한 전도가 가능한 시대를 열어주셨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많은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압록강 두만강 주변에 중국 전파가 들어가기 때문에 중간에 브로커들이 들어가서 중국 핸드폰으로 한국의 가족들과 전화 연결을 합니다. 그리고 형편을 듣고 생활비를 보냅니다. 한 번은 잘 아는 분이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복음을 전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할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도와주시오! 하시오. 다른 이름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 이름 석 자만 기억하시오.' 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러더랍니다. '아이고! 걔는 또 누구라니?' 여러분 이해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누군지 교회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이지만 딸의 입을 통해서 한 번 두 번 복음이 들어가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전에 우리 교회 예배가 막 끝났는데 성도님 한 분께 중국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북한에 있는 언니인 거예요. 생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서 얼마를 모아서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언니! 내 한국에 와 보니까 그동안 우리가 학습 받은 거랑 다릅디다. 교회에 가니까 마음의 짐이 내려갑디다. 내 기도하고, 있으니까 곧 좋은 날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있으시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뭐라고 불러요? 전도라고 부릅니다. 가족의 입을 통해서 가족에게 전해지는 복음전도 그래서 탈북민 성도 한 사람이 복음 안에서 변화되면 북한 땅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만 명의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 통화하고 한국의 소식을 전한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북한의 가족을 4명씩만 잡아도 10만 명입니다. 친척들을 10명씩만 잡아도 100만 명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주민 100만 명이 통일이 되기 전까지 복음을 듣고 한국 소식을 듣고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탈북민 성도들입니다. 한국 교회가 해외 교회가 무엇을 한들 북한 주민 100만 명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북한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북한에서 나온 사람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 선교를 품고 기도할 때 북한 땅이 아니라 북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땅을 보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행하신 일을 보고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북한 사람들을 좀 만나보니까 어떤 것 같아요?'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요. '북한에서 태어난 분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한 가지 예로 2008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섬기던 탈북민 목사님이 미국 한인교회 집회를 다녀오셔서 저를 부르는 겁니다. 전도사님 다음 달에 부시가 한국에 온대!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 부시였습니다.
'부시가 한국에 올 때 부시를 우리 교회에 초대하자!'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부시 경호원들만 와도 우리 교회에 꽉 차겠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자고 하니까 해야지요. 초청장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바꾸는데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이 초청장을 어떻게 백악관에 보내면 될까요? 우체국에 부치면 갈까요? 그런데 우리 목사님이 미국에 있을 때 그 당시에 예정에도 없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부시 행정부 장애인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를 만나고 상원의원을 만나고 하원의원을 만나고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쓴 편지가 이분들을 통해서 실제로 백악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답장이 왔어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많은 일정들이 잡혀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더 화이트하우스, 워싱턴.
여러분! 미국 대통령을 초대하려고 초청장을 보낸 교회는 탈북민교회 밖에 없을 겁니다. 이것이 북한사람들의 가능성입니다. 상식이 뛰어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는 줄 아세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보냅니다. 그곳이 바로 선교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북한 사람들을 우상의 장벽을 뚫어내는 바울과 같은 전도자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바울과 같은 사람 열 명 백 명이 준비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열매에 대한 편견을 벗고 사람에 대한 편견을 벗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편견 없이 선을 행하는 네가 옳다. 오늘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너무 너희 삶에만 갇혀 있지 말아라! 너희가 너무 너희의 가정에만 갇혀 있지 말아라! 너희가 너무 너희의 교회에만 갇혀 있지 말아라! 눈을 들어서 주변을 좀 살펴봐라! 편견을 벗고 너희 생각의 지경을 넓혀라!' 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행복한 상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바로 오늘 북한 땅의 문을 열어주신다면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첫 번째 '어디로 갈 것인가?' 입니다. '북한 땅 어디에 교회를 세울 것인가?' 우리 주변에 북한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도 북한 어느 지역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딱 네 군데 이야기합니다. 평양, 개성, 금강산, 백두산... 다른 데는 모르는 거예요. 두 번째 '누가 갈 것인가?' 입니다. 북한은 정말 춥답니다. 제 아내가 북한 끝에서 살다가 왔는데요. 아내가 살던 지역은 한번 눈이 내리면 머리끝까지 눈이 쌓인다 그래요. 그곳에서 살 각오가 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갈 것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열쇠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곁에 와 있는 탈북민 이웃들입니다. 뉴저지 한인 교회들과 동행하는 탈북민 교회들입니다. 북한문이 열리면 저희는 일단 아내 고향집을 다시 찾아서 예배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30명 정도 팀을 짜서 같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날이 겨울이 아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올라가서 첫날부터 예배드리고 마을 청소하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 데려다가 먹이고 유치원 시작하고 그러려고 합니다. 이곳에서 자리가 잡히면 함경북도 선봉으로 옮겨가서 두 번째 십자가를 올리려고 합니다. 해방 전에 아내 증조할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 터를 다시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서 함경남도 함흥에 세 번째 십자가를 올리려고 합니다. 아내 고모부 가정이 예배하던 집터를 다시 찾으려고 해요. 아내와 여기까지 이야기가 됐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어디 지방에 가서 교회 개척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곁에 북한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로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과업을 함께 이루어낼 동역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뉴저지 한인교회 쥬빌리안 여러분! 우리가 함께 동역하면서 통일의 그날을 준비하십시다.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편집자 주 : 2025년 5월 7일(수) 오후 8시에 한성개혁교회(담임 송호민 목사)에서 있었던 제73차 뉴저지 쥬빌리 기도회에 보낸 영상 설교입니다.
김동욱 기자 ⓒ 복음뉴스(BogEu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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