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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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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

본문 : 창세기 27장 1-10절

설교 :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유한 양행의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장녀인 유재라 여사가 62세로 작고하면서 그와 그의 남편이 일평생 애써서 모근 주식과 부동안 등 2백여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유한 재단에 기증하였습니다.

그의 부친인 유일한 박사도 자신의 전재산을 자기 아들에게는 한푼도 물려 주지 않고 연세대와 유한 재단 보건 장학회에 기증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얼마 전에 우리나라 제벌 기업중에 하나인 진로 그룹에서 재산 상속권을 놓고 형제들끼리 싸움과 법벙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신문마다 제 1라운즈, 2라운드 하면서 형제들간의 좀 더 많은 재산을 갖기 위한 처절한 싸움의 과정을 보도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주위에서 재산과 상속문제를 놓고 형제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한심하고도 참 애석한 모습들입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27장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축복과 재산의 상속문제를 놓고 쌍둥이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한바탕의 대결을 벌입니다.

더구나 이 싸움에 부모들까지 끼어들어 사건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고 형제들간에 살인까지 저지르려고 하는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문제는 단순히 잘못된 축복과 재산권의 상속문제에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관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 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빼대 있는 믿음의 가문 출신들이비다.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아으로 양육받았고 신앙속에서 자라났고 가정도 신앙의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잘 이애하지 못했고 가장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비신앙적인 행동을 했ㅅ브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자기들의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챹은 잔꾀와 술구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오해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잘못 리우려고 하므로 그의 가정에 비극의 씨상이 씨작되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자신들도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삭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이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에게 축복을 하기 직정의 상황입니다. 

27장 1절 4절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


옛날 이스라엘 족장들에게는 그들이 죽기 직전에 자녀들에게 신앙적으로 축복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자녀들에게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볻하는 축복 기도를 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도 죽을 때에 자녀들을 불러 모아 놓고 축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세웠으면 얼마 좋을까요?

이삭이 마지막으로 자기의 맏아들 에서에게 축복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 축복이 장자의 권한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축복을 하는 것이라면 이 이삭의 축복은 누구에게 가야만 합니까?

에서가 아니라 야곱입니다.

에서는 이미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야곱이 아니라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더구나 이 두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큰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계승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삭이 그이 생의 마지막이 가가운 이 순간에 참으로 주의 뜻을 따르기를 웡했더라면 당연히 야곱에게 축복해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습니까?

27장 4절,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매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왜?  고기가 먹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자기가 죽기 전에 별미를 만들어 주면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동기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겨우 "고기가 먹고 싶어서"였습니다.

어쩌면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권한을 하는 에서의 그 모습이 아버지 이삭에세서 물려 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이 닮은 부전자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말씀 가운데 아주 인상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1절, "이삭이 나이 많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이삭은 육신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자 영의 눈도 덩달아 희미해 졌습니다.

이것에게 있어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보다 더 커다란 비극은 영의 눈도 같이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갓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보다는 자기 육신적인 욕구에 따라서 자식을 축복하려고 하는 이 영적인 눈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눈이 밝을 수 있다면 가정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이삭은 영적인 눈이 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에서의 모습이 오늘날 나의 모습은 아니십니까?

내가 세상일에 취해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다보니 나의 영적인 눈도 어두워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돈벌이에 푹 빠져 신앙의 길을 잃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세상의 쾌락과 편함에 육신의 눈이 멀어 영적인 소경으로 변해 버리지는 않으셨습니까?

육신의 소경오 불쌍하지만 영적인 소경은 더 불쌍하고 문제거리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배고플 때 자기에게 육신적인 욕구가 생길때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행동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는 얼마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지만 내 삶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나 아렵고 고통스러울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생각치 않고 내 육신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속에는 자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이삭이 오늘날 바로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제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늦게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33절, "이삭이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성경은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마터면 하나님의 뜻을 어길뻔했던 자기의 실수가 두려워서 그처럼 떨었습니다.

이삭이 이제야 비로소 두려움 가운데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대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거의 죄를 지를 뻔 하였던 잘못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은혜스럽게 역사하시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항하고 거절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 나갑니다.

내가 아무리 인간적인 모든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은 자기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거스리지 마시고 나에 개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내가 신앙 생활을 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항하면 매를 맞는 것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어머니 리브가와 그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입니다.

창세기 25장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겠다는 말을 어머니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그녀가 사랑하는 야곱이 이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아들 야곱과 공모하여 한가지 꾀를 써서 축복을 받아 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쓰이 야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그릇된 인간의 얄팍은 방법으로 이루여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인간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지를 못했습니다.

리브가는 아마도 자신이 하나님을 도와줘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가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 나기 못하시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인간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십니까?


저는 가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안하면 하나님도 아무 것도 못한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가령 어떤 사람에게 교역자나 부장이나 회장들이 같이 주님의 일을 하자고 권합니다.

그러면 보통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저 못해요, 아직 부족해서요!"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부족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주일 학교 교사를 열심히 하다가 한두 주일 빠지다가 나중에는 자꾸 빠집니다.

그래서 부장이 "빠지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권하면 뭘라고 말합니까?"

"저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능력도 없고요 바쁘기도 하고요"

그러나 사실은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안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부탁하고 한쪽에서는 튕기고.

마치 내가 있어야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고, 내가 있어야만 주일학교 교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천만예요.

하나님은 나 없어도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갑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안하고 차려 자세로 있어도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또 내가 설친다고 하나님의 일들이 잘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들은 하나님 스스로가 하나님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어 나갑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자세 가운데 하나는 목적이 결코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올바른 목적을 가졌으면 그것을 올바른 방법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목적이 올바르더라도 방법이 잘못되었으면 안 됩니다.

영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육신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은 사람의 방법으로 이루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하나님은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때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기다려야만 합니다.

기다리면 하나님이 가장 정확한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 주십니다.

리브가와 야곱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는 일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때와 방법을 더 좋아 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의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간사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12절에 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야곱이 왜 두려워 했습니까?

속이는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 했습니까?

야곱이 자기가 저지르는 일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가 발각되어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야곱의 보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니십니까?

나도 내가 죄를 짓는 것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이 노출되어 내가 받을 고통 때문에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범죄했다는 것 때문에 애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가 발각되고만 사실 때문에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역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는 사실 보다는 자신이 속이는 자로 보일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걱정하는 야곱에게 모든 책임을 자기 지겠노라고 안심시킨 후에 야곱과 함께 공모하여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자기 아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짓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18-20절,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


여러분! 

한가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 마련입니다.

죄는 죄를 낳고 맙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딱 한번만, 이번만 하고 안하겠다"고 말하지만 한번 죄를 짓게 되면 죄가 겉잡을 수 없이 내 생애속에 파고 듭니다.

여곱은 죄 위에 또 다른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의 형으로 가장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기의 속임수에다 하나님의 이름까지 끌어 들이는 죄까지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다"


우리는 자주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내 마음 내 뜻대로 모든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빙자합니다.

야곱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어머니 리브가와 아들 야곱이 함께 공모한 죄는 아들 모자에게 크나큰 비극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동생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문을 냅니다.

그래서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 리브가는 야곱을 재빨리 도망치게 합니다.

27장 43절-45절, "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

리브가는 야곱을 몇날 동안 하란의 자기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난을 보냈지만 사실은 몇날이 아니라 20년동안 피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아들 야곱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죽습니다.

생이별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리브가와 야곱은 지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20년동안 수많은 고생을 겪게 됩니다.

일평생 장막에 살기를 좋아했던 그가 자기의 적성과는 달리 일평생 양을 치며 들에서 살아야 하는 '들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도 받아가며 많은 애를 태우며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추구했기 때문에 야곱이 지불해야만 했던 뼈아픈 대가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속에서 이삭이나 리브가와 야곱 그들 중에 하나만 하나님 말씀 위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일들을 했다면 그들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둘 중에 하나만 만류했어도 가족의 비극을 막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가장 신앙 생활 잘 할 수 있는 비격 중에 하나가 내 주변에 얼마나 경건한 신앙인들이 나를 둘러 싸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과 같이 하면 내 삶이 자연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입술을 열때마다 찬양과 기도가 샘솟는 사람들과 같이 하면 내 삶도 자연히 기도와 찬송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해지고 넘어 질 때 신앙으로 격려하며 이끌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입니다.

내가 범죄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막아 주고 바른 길로 이끌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가 좋은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신앙이 연약할 때 나를 돌보아 주고 나를 격려해 줄 수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나의 주위에 얼마나 됩니까?

내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내 약점과 고통과 눈물을 짊어지고 나를 위해 같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마다 나에게 충고해 주고 나를 바른 길로 이끌수 있는 사람을 나는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문제를 털어 놓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형제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부위에 주님을 사랑하는 영성으로 가득찬 사람들로 둘러 쌓이기 바랍니다.

내 주위 입술을 열 때마다 찬송과 감사와 기도가 샘솟는 사람들과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장자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 버리고 축복을 빼앗긴 에서입니다.

에서는 아버지가 이미 모든 축복을 야곱에게 재 주었다는 말을 듣고 방성대곡합니다.

이 방성대곡은 자기의 잘못에 대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버지가 야곱에게 주어 버린 축복에 대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게 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결국 에서는 인생에서 실패했습니다.

에서는 내일보다는 오늘의 말씀에 짐착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장자로서 받을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보다는, 오늘 당장 내 배를 채워주는 팥죽 한 그릇의 만족에 급급했기 때문에 장자의 직분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틀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 버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 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육적인 것에 집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우선 순위를 두고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에서는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도 에서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적인 배만 채우려고 영적인 것에 무관심하고 있지은 않습니까?

세속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신앙적인 것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진 에서는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자로서의 위치와 책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와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위치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실패의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책임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

교회로서의 책임.

우리가 이 책임을 소홀이 여길 때 결국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끊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의 잘못이 우리의 잘못일 수 있습니다.

이삭 가문의 비극이 나의 비극일 수가 있습니다.

이삭 가정처럼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하면 나에게도 이삭 가정의 비극이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분에서 보듯이 그것은 많은 고통과 아픔을 요구합니다,.

많은 시간의 낭비를 결국 가져왔습니다.

내가 고통과 허송 세월을 보내기 전에 주님의 뜻을 먼저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추구한다면 얼마나 이것이 행복이겠습니까?

내가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주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간다면 이것이 얼마나 복된 삶이겠습니까?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오늘도 내 삶을 주장해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오늘도 내 생애를 주장하고 계시다는 사실 앞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삶을 간섭하신다는 사실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 삶속에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뜻만 추구하며 사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정당한 방법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우리 모두의 삶속에서 이루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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