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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흠] 축복의 열매를 맺는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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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의 열매를 맺는 요셉

본문: 창세기 49장 22-26절

설교: 백의흠 목사(엘림교회)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많이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사랑과 축복일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며 잘 사용하는 말입니다.

축복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축복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과 축복은 밀첩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축복을 참 좋아 합니다.

‘복’이라는 단어를 아주 잘 사용합니다.

옛날에는 장농에도 ‘복’이라는 새겨 놓았고 숟가락에도 ‘복’이라는 단어를 써 놓았습니다.


한국의 순복음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순복음 교회가 성장할 때 ‘복’에 대하여 강조했습니다.

‘삼박자 축복’, 혹은 ‘오중 축복’을 강조하여 예수 믿으면 영육이 잘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할 때에도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사실 예수 믿으면 영육이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가장 큰 축복이 영혼이 구원을 받고 이 땅에서 살면서 육신적인 축복도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 축복은 누구나에게나 관심사입니다.

저도 영육간에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죠?


오늘 성경 본문은 야곱이 죽기 전에 그의 열 두아들들에게 축복 기도 하면서 특별히 요셉에게 축복한 내용입니다.

요셉의 축복은 다른 아들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아들이었죠? 하나님을 잘 섬겼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온 세계와 자기 식구를 구원했습니다.

요셉은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더 많은 축복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가 받은 축복은 한 마디로 말하면 으뜸되는 축복, 뛰어난 사람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요셉이 받은 축복들을 살펴 보면서 요셉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축복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요셉의 축복은 구원의 열매의 축복이다.

24절,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끝 부분에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이 말은 요셉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자,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메시야는 요셉의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십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은 구원의 축복이 아니라 구원에서 나오는 많은 열매들, 즉 구원에 연결되는 많은 축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요셉의 후손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든지, 사회에 유익을 끼치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나오겠다는 말입니다.

실지로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가운데 항상 유다와 더불어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간 여호수아도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후손입니다.

이들은 구원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더 풍성하게 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머리가 뛰어났고 지도력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26절을 보세요.

“네 아비의 축복이 네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사회에서 으뜸이 되는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축복들이 많습니다만 이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의 축복 아닙니까?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하는 내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아 천국 가는 것, 이것만큼 큰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구원받은 것을 알고 나서 너무 감격하고 기뻐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았다고 다 목사가 되면 누가 평신도 역할을 하고 누가 사회속에서 세상을 변화 시키며 살아 갑니까?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 올바른 정치가 되고 기업인이 되고 학자도 되고 장군도 되고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갈 올바른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앙은 끝없이 회복시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고 사회에 기여하게 하고 모든 것을 제대로 쓰게 만듭니다.

이것이 요셉의 후손들이 받은 구원의 열매의 축복입니다.


지금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씨앗과 같습니다.

기도로 심은 씨앗은 열매를 맺습니다. 심은 것이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생애에 미래가 있고,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의 생애에 미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를 둔 자녀에게도 역경과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심은 씨앗은 시련 중에도 남아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심어야 할 가장 소중한 씨앗이 있다면 기도이고 심어야 할 나무가 있다면 기도의 나무입니다.

야곱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눈물로 기도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씨앗은 요셉을 통해서 축복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계속해서 22절을 보세요.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의 받은 축복은 가뭄에도 바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샘 곁에 무성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열매의 근원은 바로 샘입니다.

이 샘이 요셉으로 하여금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의 능력을 지키는 비밀은 바로 샘이었습니다.


여기 미국 동부는 강수량이 풍부하여 나무가 우거지고 잘 자랍니다.

그러나 서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을 지나는데 거기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습니다.

조그만 나무들이 군데 군데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막 가운데 어느 곳에는 수십 그루의 나무들이 모여 있습니다.

관광 안내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거기에 물샘이 있어서 거기에만 나무들이 우거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물샘은 중요합니다.

나무의 운명은 어디에 심기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어느 토양에, 어떤 물이 있느냐? 어디에 심겼느냐?에 따라 열매를 맺는 것이 다릅니다.

나무의 뿌리를 내릴 때 땅에 따라 나무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좋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면 좋은 열매를 맺지만 나쁜 토양에 내리면 말라 죽습니다.

나무는 토양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스승은 학생을, 학생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양은 목자를, 목자는 양을 잘 만나야 합니다.

훌륭한 설교자에는 훌륭한 청중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청중은 훌륭한 설교자를 만들어 냅니다.

좋은 목회자는 좋은 성도를 만들어 내고 좋은 성도는 좋은 목회자를 만들어 냅니다.

요셉은 좋은 나무였는데 그는 샘물이 있는 좋은 토양에 심겨져서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요셉이 평생을 통해서 누렸던 그의 마음속에 샘솟고 있던 영감의 원천이 바로 이 샘이었습니다

요셉이 평생을 통해 누렸던 그의 마음속에 샘솟고 있던 영감의 원천이 바로 이 샘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불려 갔을 때도 하나님이 대답해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었던 요셉의 삶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샘에서 늘 생명력을 공급 받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축복은 모두 일시적입니다.

비가 올 때는 온 세상이 온통 물이 풍부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아무 걱정 없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오면 전부 말라 죽고 살아 남는 것은 샘 곁에 심긴 나무 뿐입니다.

이 나무처럼 되는 것이 요셉의 축복입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하나님께 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지켜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이런 샘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삶이 하나님의 샘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공급받고 계십니까?

샘물이 아니라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뿌리는 하나님께 심겨져야 합니다.

뿌리가 하나님께 심기운 사람이 축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 믿는 삶은 특별하고 으뜸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요셉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담을 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담을 넘었다는 것은 국경을 넘었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을 넘어서 애굽까지 미쳤다는 말입니다.

나 혼자, 내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열매가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축복을 나누는 인생이 요셉의 인생이었습니다.

요셉은 타의에 의해 애굽으로 끌려 갔지만 오히려 그 땅에서 축복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축복된 존재로 살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에서도 요셉은 여전히 축복이었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셉 그대는 이 나라의 축복이요”

요셉은 그의 발걸음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축복을 나누었습니다.

담을 넘는 가지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평생 자신과 가족들만 챙기다가 인생이 끝납니다.

기도할 때도 이웃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고상한 비이기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이웃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축복은 나눕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인생 열매는 “나는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요셉의 축복은 시련 속에서도 힘있게 번창하는 사람이 되는 축복입니다.

23절,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활 쏘는 자’는 이 세상의 힘쎈 자들을 의미합니다.

활쏘는 자가 계속해서 그를 학대하며 쏘았습니다.

그를 군박했습니다.

여기서 ‘군박’했다는 말은 ‘미워 했다’, 그리고 ‘적대감을 가지고 공격했다’는 말입니다.

그를 육체적으로 공격했고 적개심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를 신체적으로 공격했고 정서적으로 공격했고 영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괴롭혔고 보디발의 아내가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인간의 싸움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그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활 쏘는 자가 요셉을 학대했고 그를 쏘고 군박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요셉은 거기에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4절,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이것이 요셉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적들이 아무리 온다고 해도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활은 힘이 있습니다.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으로 그를 붙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가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입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힘으로 싸웠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자의 손이 그와 함께 했습니다.

전능자가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는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는 못 싸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실 때에만 비로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성입니다.

요셉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요셉을 세우신 하나님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이 형통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요셉을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 속에 그 능력이 있습니다.

인생의 시련의 순간에 붙잡아야 할 손은 사람의 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입니다.

왕을 세우기고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세요.

가난한 자를 폐허에서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 노예를 들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세요.

인생의 시련의 순간에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아래서 형통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힘이 좀 부족하고 부유하지 못하고 남만큼 잘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나 혼자서 험난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의 반석 같으신 목자께서 함께 하십니다.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석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으뜸되는 삶, 섬공하는 삶, 탁월한 삶을 사는 힘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보더 훨씬 더 셉니다.

사탄은 능력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전능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분은 하나님 홀로 한 뿐이십니다.

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가 우리보다 능력많은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지혜롭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우리보다 아는 것도 더 많습니다.

귀신은 많은 것을 알지마 결코 전지한 존재은 아닙니다.

하나님만 홀로 전지합니다.

그러므로 전지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하나님의 도움심을 힘입을 때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힘이 아주 강해졌습니다.

요셉이 강해진 후에는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살릴 만큼 강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축복은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망하기 딱 알맞습니다.

매일 밤을 새워 공부하고 연구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예배 드리느냐고 시간을 보내고 거기에도 성경 읽고 기도하느냐고 시간이 없습니다.

장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야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면 만사 형통이 아니라 만사 불통입니다.

주일날 5시간 여섯시간만 장사해도 평일 10시간 장사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데 주일날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됩니까?

망하기 딱 알맞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이익을 얼마 남기지 못하고 손해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려니까 너무 힘듭니다.

교회 부흥도 안되고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능력없는 목사로 낙인만 찍히고여기저기서 업신여기고 우습게 봅니다.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본궤도에 올라서고 나면 그 때부터는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한번 중심을 잡으면 그 때부터는 우리를 상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라고 나를 인정해 지고 결국에는 내 앞에 몰려오고 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의 전능자의 손이 나를 도와 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목자가 도와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장하면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교만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는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는 데서 성공하는 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실패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크게 성공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물으십니다.

내 힘, 내 노력으로, 세상적인 방법으로의 성공은 결코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심을 통해 어려움이 있다하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번창해 지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끝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25절,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야곱은 요셉의 축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축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야곱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누군가 그와 함께 하면서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야곱에게는 항상 그와 함께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그를 도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분은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아시고 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좋은 일을 할 때나 나쁜 일을 할 때나 늘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없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은혜 충만할 때도 복 주시고 그렇지 못할 때도 주시고 거짓말 할 때도 복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거래하지 않습니다.

복 주시기로 하셨으면 나의 태도와 아무 상관없이 복 주십니다.

그 분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을 배반하고 방황할 때에도 나를 사랑하시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죄 짓고 내 마음대로 다닐 때에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없이 마른 땅에서 생수가 솟고 바위가 터져 샘물이 흘러 나오게 하십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하늘의 복과 땅의 원천의 복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능가하는 축복이 위를 기다린다

“위로 하늘의 복”은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신령한 축복을 받으면 세상의 축복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신령한 복안에는 감추인 엄청난 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축복이 있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언제든지 나아갈 있는 기도의 축복도 있습니다.


이 신령한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땅의 기름진 복도 함께 받습니다.

“아래로 원천의 복”은 샘이 마르지 않는 복을 가리킵니다.

땅의 축복은 특별히 자녀들의 축복을 말합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은 잉태하는 복을 말합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이보다 더 놀라운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녀들이 속 썩이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 주는 것보다 더 놀라운 축복은 없습니다.

자녀는 미래의 씨앗과 같습니다.

자녀를 잘 키우면 부모의 노후가 아름답습니다.

야곱의 생의 마지막에 누린 축복이 바로 아들 요셉을 통해 누린 축복입니다.

자녀를 잘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원천의 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샘의 축복이 마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이 조금 잘 된다고 해서 득세하는 줄 아고 잘난체 하며 교만하면 얼마 못가서 그 샘이 바닥이 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성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은혜에서 나오지 않고 내 머리나 재주에서 나온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고갈될 때가 옵니다.

나의 성공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돌보시고 이삭을 돌보시고 야곱을 돌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선조 대대로 미치신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나에게도 머물러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축복인 동시에 우리의 기도이며 우리의 믿음입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는 그 날까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베풀었던 축복 기도를 우리도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베푸어야 합니다.

축복기도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을 좋아 합니다.

축복 기도를 받고 자라는 자녀는 형통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축복을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축복의 근원이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고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흘러 보내는 것은 더욱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고 축복을 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돈이 들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습니다.

다만 믿음이 필요합니다.

축복 기도의 능력을 믿고 나의 자녀들에게도 복을 빌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빌어 주세요.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이 되세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축복의 통로가 된 나의 생애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삶도 하나님의 도움심과 축복을 간증하며 사세요.

우리의 입술이 항상 축복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누구보다 축복을 받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이 항상 원망으로 가득하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삶이 축복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요셉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어 구원의 열매의 축복을 맺고 고난 가운데서도 힘있게 번창하는 끝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림교회

Penn Elim Presbyterian Church

703 Pen Ambler Rd.

Ambler, PA 19002

215-939-8470

주일 예배: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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