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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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본문 : 창세기 11장 27-32절
설교 : 백의흠 목사 (엘림교회)
성경에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다니엘. 사도 바울,
나는 요셉이나 다니엘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좋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라고 말합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에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조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택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선택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잘나고 똑똑하고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죄 짓고 우상 숭배하고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똑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고 은혜입니다.
아브라함 편으로 보면 전적인 축복이죠.
자기가 잘나서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우리가 믿음이 좋고 다른 사람보다 더 선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잘 난 것이 없고, 믿음이 좋은 것도 없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고 축복입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넘어지고, 죄 짓고, 우리와 똑같은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형편없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힘을 얻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고 빗어 가시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잘 났냐? 못 났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잘 믿느냐? 못 믿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형편없지만 그런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창세기의 족장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입니다.
이들에 관한 내용이 창세기의 전체를 흐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시작부터 아브라함까지가 전부 11장에 걸쳐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생애는 14장이 나오고, 그의 아들 이삭은 두장, 야곱은 열 두장, 그리고 요셉은 열 세장입니다.
창세기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첫 기록은 오늘 본문 창세기 11장 끝부분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메소포타미아 땅으로 지금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페르시아만 근처에 있는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지역입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았습니다.
데라는 그 당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행 7:2-3)
그래서 아버지와 조카 롯의 식구와 자기 아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갈대아 우르를 떠나 중간인 하란이란 곳에 이르러 거기 거합니다.
거기서 아버지 데라가 죽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식구들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신 사건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 곳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는 곳이고, 그 곳 사람들은 우상을 다 섬겼습니다.
데라의 가족들도 그들과 똑같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 곳에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우상의 소굴 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죄의식 없이 살다가 하나님을 섬기는 곳으로.
오늘 우리 생애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사건을 만나느냐?가 나의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불교를 만났으면 나는 일평생 부처에게 절하다 죽어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는 부모님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를 만난 사건이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예수 만나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또 내가 예수님을 만난 것 때문에 내 자녀들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만났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 자손은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 되고 그의 후손뿐만 아니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네가 지금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너를 복되게 하리라”
아브라함은 그냥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살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냥 하란에 와서 지금까지 살던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하란은 우리 삶의 분수령입니다.
하란은 지리상 교차로입니다.
이 곳은 가나안 땅으로 갈 수도 있고 갈대아 우르로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무역의 교차 지점이기 때문에 번창한 도시이고 살기 좋은 환경입니다.
여기서 머무는 것은 안락한 삶과 평안 삶을 누리기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떠나면 다시 살던 갈대아 우르로 돌아 가던 지, 아니면 척박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합니다.
다시 돌아 가던지, 머물던지, 아니면 가나안으로 전진해야 하던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곳입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곳이면서도 중립지대 입니다.
그러나 중립지대가 신앙에서 가장 위험합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중립을 즐기며 그 곳에서 머물다가 결국에는 죽고 맙니다.
우리가 신앙의 중립에서 머묻 거리면 데라처럼 죽고 맙니다.
우리가 세상의 풍습에 묻혀 살다보면 나의 목표를 잃어 버립니다.
나의 안락함과 편함을 추구하다 보면 나의 신앙 생활에 힘을 잃습니다.
중간 지역에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그리스도인 답지 않게 세상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 갑니다.
한 발은 신앙으로, 한 발은 세상으로 집어 넣고 자기에게 유익한대로 왔다 갔다하며 살아갑니다.
늘 행하던 습관, 그것이 죄인 지 아닌 지도 모르고 그냥 습관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끊어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나의 몸에 익숙한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 어렵습니다.
이제는 그만 해야지 말하면서, 오늘 내일 미루다가 그만 주저 앉고 세월만 지나다가 죽고 맙니다.
양자 택일의 분기점인 하란에서 머물러 있던 아버지 데라가 죽고 맙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면서 오랜 세월을 잃어 버립니다.
그냥 결실도 없이 75세까지 낭비한 시간들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비로소 목표를 향해 전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 중에 하나가 도중 하차입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가다가 그 일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낙심되어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일입니다.
힘들다고 잠간 쉬어서 힘을 보충하고 가겠다고 생각하자만 잠간 쉰다는 것이 그냥 주저 앉아 버리고 영원히 쉬어 버립니다.
이제는 목표도 잃어 버리고 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기의 삶의 진로와 목표를 변경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데라의 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데라의 모습으로 살아 갑니다.
데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여 그것에서 평안히 살다가 죽습니다.
데라처럼 살다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 자존심, 주장,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엇긋나면 과감하게 벗어 버리시고 새로운 출발을 하세요.
우리의 과거의 나쁜 것들이 단절되지 않으면 새로운 미래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끝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끊어 버리고 비워 버려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편안한 삶을 즐겼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말없이 15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향해 참고 기다리십니다.
내가 깨닫고 죄악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로 가라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내가 잘못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크게 치시지 않으시고 돌아 오라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나를 행해 아직까지도 기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벼락을 내리시거나 죽이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때가 되시매 다시 기회를 주시고 깨우침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냥 참고 기다리신다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내가 내 마음대로 해도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내가 끝까지 깨닫지 못하면 나를 향해 사랑의 매를 치십니다.
그 매를 맞고 깨달으라고. 이 사랑의 매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데라가 온전히 순종을 했더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데라가 자식의 효도를 받으며 노년을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마치 야곱이 애곱에 가서 요셉의 효도를 받으며 노년을 보낸 것처럼.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은 데라를 불러 가시고 다시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또 다시 나에게 결단을 하라고 부르십니다.
“이제는 떠나라”
더 이상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매를 맞지 말고 이제는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을 향해 여기를 떠나라.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십니까?
네가 지금 살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그냥 놔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미국 올 때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미지의 세계.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자라오고 공부하고 생활하던, 내 나라 대한민국, 내 민족 한국 사람을 놔두고, 다른 나라, 다른 인종에게로 가는 것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그래도 미국은 선진국이고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고, 살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미국에서 아프리카로 살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겨우 정착하고 터를 잡았는데 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냥 연고도 없는 아프리카로 가라고 합니다.
지금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정보도 없고 교통도 나쁘고 위험한 지형과 위험한 사람들을 만날 지도 모르는 미지의 땅을 향해 앞날이 어떻게 될 지 알지도 못하고 정처없이 떠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령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해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도 이 말씀을 순종하면 네게 복을 주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되고 네 자손은 많아지고 복을 받을 것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죄된 것, 마음에 두지 말고 그냥 내가 지시하는대로 떠나라.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복된 것 같은 것, 행복한 것 같은 것, 그것이 사실은 네게 복이 아니 다 포기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
얼마나 어렵습니까?
얼마나 용기와 결단이 필요로 합니까?
얼마나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까?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배제된 세상이 지금까지 나에게 준 모든 특혜와 이익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주는 달콤함과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떼남에 있습니다.
새 출발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내가 갖고 있던 세상의 지식과 사고 방식, 그리고 가치관과 죄던 풍습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을 붙들고 있으면 절대로 새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세상 것에 도취되어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새 출발하는 것은 힘듭니다.
멋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모험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쩌면 개척과 전쟁의 싸움을 싸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손해보고, 힘든 일의 연속이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영광스러운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이 아무리 좋고 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면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잘 되는 길이고 복 받는 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복을 받기를 원하고,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가는 것이 결국에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받아서 무엇을 합니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누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 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복이 나에게서 흘러 나가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복이 이제는 내게 넘쳐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다보니 노년이 평안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갖습니다.
저의 아내가 미국 와서 너무 고생했습니다.
남편을 대신해서 오랜 세월 동안 위험한 지역에서 장사를 하면서 인종차별과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지금까지 지내 왔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생활 빨리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 많습니다.
미국 와서 돈 없는 서러움과 돈에 대한 압박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노년에는 돈 걱정없이 편안하게 아내와 함께 여행도 하고 선교지를 다니며 봉사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년에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노년이 좋은 환경에서 걱정없이 그 환경을 즐기며 살다가 천국을 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진짜 복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목사로 삼아 주셨습니다.
지금은 별로 결실도 없고 눈에 보이는 열매도 없습니다.
일종의 실패 같은 목회입니다.
어쩌다 한 명 전도하여 키워 놓으면 그 사람조차 떠나가고 실망 시킵니다.
한 사람조차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유익과 기분에 따라 변하는 신자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성을 쏟고 공을 들였다고 하였지만 결실이 없습니다.
실망도 되고 내가 애를써도 결실이 없다고 이제는 나나 편안하게 지내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노년에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먹을 것을 내가 준비하고 그동안 못한 여행을 하면서 기회가 되는 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자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 주셨기에 마지막에 좋은 여건이 나에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만을 즐기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주어진 좋은 여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남을 도우며 살아 가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마지막까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불태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저의 진정한 복입니다.
진정한 복은 편안함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복은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 이 복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제가 죽는 날 까지 이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자나 깨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
복음의 파숫군이 되어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일을 떠나야 합니다.
나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 나의 생각, 나의 주장, 나의 고집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매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여 있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에게 매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대로, 내 의지 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림 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시간이 고 축복의 시간임니다.
내가 좀 더 쉬고 가야지, 여기가 좋으니 좀더 머물러 있다가 가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 시간만큼 사탄에 매여 살게 됩니다.
믿음은 중간이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를 쳐서 말씀에 복종 시켜야 합니다.
내 힘으로 힘듭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심을 날마다 간구하면서 하나님께 매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가나안 땅에 갈 때까지 우리는 쉬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온갖 어려움과 싸움을 싸우며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노력하고 애써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마침내 가나안 땅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시고 이끄시고 항복시키시면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하시고 그와 그의 자손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순종함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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